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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탄탄대로에서] 제7집 간난신고의 탐색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19.11.25일 09:40
기록편 《우리는 탄탄대로에서》 제7집 간난신고의 탐색

1955년 11월 1일, 모택동은 북경을 떠나 여러 지역에 내려가 고찰을 했다. 천진, 덕주, 제남 등 16개 도시를 거치며 모택동은 가는 곳마다에서 현지 주요 책임자들과 담화를 하고 생산건설 정황을 조사했다.

외지 고찰을 끝내고 북경에 돌아온 모택동은 선후로 국무원 35개 부문의 사업회보를 청취하고 제2차 5개년 계획에 관한 국가계획위원회의 회보를 청취했는데 모두 43일 걸렸다.



1956년 4월 25일과 5월 2일, 모택동은 중앙정치국 확대회의와 최고 국무회의에서 〈10대 관계를 론함〉이란 연설을 발표, 쏘련을 거울로 삼아 우리의 경험을 총화하여 중국의 국정에 부합되는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한갈래 길을 탐색해야 하며 모든 적극적인 요소를 동원시켜 우리 나라를 강대한 사회주의국가로 건설해야 한다고 제기했다.

〈10대 관계를 론함〉이란 연설의 발표는 사회주의건설의 길에 대한 우리 당의 탐색이 초보적이고 비교적 계통적인 사고 방향을 형성하기 시작했음을 표징한다. 그 후로 모택동 자신도 1956년에 10대 관계를 제기할 때부터 중국에 부합되는 자신의 로선을 찾기 시작했다고 인정했다.

탐색은 여러 방면에서 펼쳐졌다.



1956년 1월, 중공중앙은 북경에서 지식분자 문제에 관련한 회의를 소집했다. 회의 마지막 날 모택동은 회의에 참석하여 전체 당원들은 노력하여 과학지식을 배우고 당외 지식분자들과 일치단결하여 세계과학의 선진수준을 재빨리 따라잡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번 회의는 ‘봄 우뢰’마냥 지식계를 들썽하게 했다. 사회주의건설에 투신하는 지식분자들의 적극성이 끓어올랐고 ‘현대화 과학에로의 진군’의 열조가 재빨리 일어났다.



1956년 4월, 모택동은 중앙정치국 확대회의에서 예술문제에서의 ‘백화제방’과 학술문제에서의 ‘백가쟁명’은 과학을 발전시키고 문예를 번영시키는 우리 나라의 방침으로 되여야 한다고 제기했다.

1957년 3월 12일, 모택동은 전국선전사업회의 연설에서 이 방침에 대해 더 한층 계통적으로 론술, 동시에 “백화제방, 백가쟁명, 이는 잠시적인 방침이 아닌 기본적이고 장기적인 하나의 방침이다”라고 분명하게 선포했다.




1956년 9월 15일 오후, 중국공산당 제8차 전국대표대회가 금방 락성된 전국정협 강당에서 성대하게 펼쳐졌다. 개막식에서 모택동이 개막사를 했다.



“동지들, 중국공산당 제8차 전국대표대회가 지금 개막되였습니다. 이번 대회의 임무는 7차 대회이래의 경험을 총화하고 전당을 단결시키고 국내외 일체 단결할 수 있는 력량들을 단결시켜 위대한 사회주의 중국을 건설하기 위해 분투하는 것입니다.”

3000자가 안되는 개막사는 32번의 박수를 받았다. 이 박수소리는 중국공산당의 단결, 자신과 사업의 번창을 보여주고 있다.

1957년 2월 27일, 중남해 회인당에서 펼쳐진 최고국무회의에서 모택동은 〈인민 내부모순을 정확하게 처리할데 관한 문제〉의 연설을 발표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제기했다. 사회주의사회에는 적과 우리 사이, 인민 내부라는 이 두가지 근본적으로 성질이 다른 모순이 존재한다. 이미 전국적으로 집권지위에 있는 당으로 말하면 민주적인 것과 설복교육의 방법으로 인민 내부에 대량 존재하는 모순들을 처리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이는 중국공산당이 사회주의건설의 길을 탐색하면서 거둔 하나의 중요한 리론성과이다.

1957년 4월 27일, 중앙은 〈정풍운동에 관한 지시〉를 발표했다. 전당적으로 한차례 ‘정풍운동’을 전개하여 관료주의, 종파주의와 주관주의를 반대하여 당의 작풍이 개진되였다.

사흘 뒤, 모택동은 민주당파 책임자들을 요청하여 좌담, 공산당의 진솔한 태도를 밝히면서 민주인사들이 공산당을 도와 정풍을 진행하는 것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모택동은 사회주의혁명과 사회주의건설에 유리하게 하기 위하여 정풍을 통해 집중도 있고 민주도 있으며 규률도 있고 자유도 있으며 또한 통일된 의지도 있고 개개인들이 마음이 후련하고 생기활발한 그런 정치국면을 조성되기를 희망한다고 제기했다.



‘정풍운동’ 과정에 극소수 자산계급 우파분자들이 기회를 타서 당과 신생한 사회주의제도에 진공을 발동하였다. 그들에 대한 반격은 필요했으나 형세를 과도로 심각하게 평가한 결과 반우파 투쟁이 심각하게 확대되여 불행한 후과를 조성했다.

비록 그 때 정치적으로 ‘좌’적 편향이 나타나기 시작했으나 그래도 경제건설은 8차 당대회의 방침을 관철하였다. 당과 인민들은 일심협력하고 열성껏 일하여 1957년 제1차 5개년 계획지표가 모두 대폭 초과 완성하였다.

1958년 10월, 모택동은 또 한번 남행의 려정에 올랐다. 그는 도중에 곳곳에 들려 당지 간부들을 찾아 담화하고 정황을 알아보았다. 한 방면으로 그는 ‘대약진’과 인민공사가 이룩한 성과에 대해 기뻐하면서도 다른 한 방면으로는 열기가 하늘을 찌르는 이 운동이 온도를 낮춰야겠다고 감지했다. 그 뒤 중앙에서는 정주에서 두차례 회의를 소집하고 ‘좌’적 착오를 시정했다.

경제건설의 법칙을 탐색하기 위해 모택동은 여러차례 각급 지도간부들에게 정치경제학을 탐독할 것을 제창했다. 모택동자신은 항주에서 독서소조를 조직하고 1959년말부터 두달간의 시간을 들여 쏘련의 《정치경제학교과서》를 통독했다. 류소기, 주은래 등도 학습소조를 조직했다. 모택동은 독서과정에 가치규률은 하나의 위대한 학교라면서 이를 사회주의건설을 위해 봉사하게끔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1960년 1월, 중공중앙은 상해에서 정치국 확대회의를 소집했다. 회의 마지막 날 모택동은 〈10년 총화〉라는 문장을 썼다. 이는 새 중국 창립 10년간의 탐색 려정에 대한 모택동의 초보적인 총화인바 우리는 사회주의 혁명과 건설에서 아직 아주 큰 맹목성이 있으며 아직도 인식하지 못한 필연적인 왕국이 있지만 이에 대해 우리는 아직 깊이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승인했다. 그러면서 이를 조사하고 연구하고 그중에서 법칙을 찾아내여 사회주의 혁명과 건설을 위해 봉사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961년 1월, 당중앙은 북경에서 8기 9중 전원회의를 소집했다. 모택동은 전당은 《조사연구의 기풍을 크게 일으켜야 한다》고 호소하고 ‘실사구의 해’를 펼치기로 했다.

1962년 1월, 중공중앙은 중앙사업회의를 소집했다. 이번 회의는 현급까지 확대하여 총 7000명이 참가하여 ‘7천명대회’로 불린다. 회의에서 대표들은 마음껏 이야기하며 시대의 병페에 일침을 가하고 교훈을 총화했다.

이해로부터 ‘조절, 공고, 충실, 제고’란 8자 방침에 따라 국민경제는 전면 조절시기에 진입, 점차 저곡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1964년말부터 1965년초까지 제3기 전국인대 1차 회의가 북경에서 소집되였다. 회의에서는 처음으로 우리 나라를 현대농업, 현대공업, 현대국방과 현대과학기술을 갖춘 사회주의강국으로 건설해야 한다는 목표를 완정하고 분명하게 제기하고 두가지 단계로 나누어 현대화를 실현한다는 전략적 구상을 확정하여 꾸준히 분투하도록 전국 여러 민족 인민들을 결집시키는 웅위로운 청사진과 정신적 동력으로 되였다.

1965년말에 이르러 국민경제를 조절하는 임무가 전면 완수되고 공농업생산총액도 력사의 최고 수준을 초과했다.

이 과정에서 제국주의국가들의 장기적인 적대, 봉쇄와 고립 그리고 중쏘 관계의 악화로 쏘련이 실시한 거대한 압력으로 생긴 준엄한 외부환경은 당이 국내 정치형세를 과학적으로 판단하고 당과 국가의 중심임무와 방침정책을 확정하는 데 거대한 영향을 일으켰다.

집권한 무산계급정당의 령수로서 모택동은 신흥 사회주의사회의 현실생활에서 나타난 문제들을 끊임없이 관찰하고 사고하면서 어렵게 구축한 당과 인민 정권의 공고화를 지극히 관심하였으며 자본주의의 복벽의 위험에 고도로 경각성을 높였으며 당과 정부에서 나타난 부패현상과 특권, 관료주의 등 현상을 제거하기 위해 끊임없는 탐색과 끈질긴 투쟁을 했다.

그러나 ‘좌’적 착오가 리론과 실천에서 루적되고 발전하면서 끝내는 ‘문화대혁명’이라는 10년간 련속된 동란을 초래하여 당, 국가와 여러 민족 인민들로 하여금 새 중국 창립이래 시간이 가장 길고 범위가 가장 넓으며 손실이 가장 큰 좌절을 겪게 했다. 당은 끝내는 자신의 힘에 의거해 ‘문화대혁명’을 끝냈다. 력사가 증명하다 싶이 중국공산당은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착오를 시정할 능력이 있으며 당과 사회주의제도는 강대한 생명력이 있는 것이다.



‘문화대혁명’중에서 우리 나라 국민경제는 거대한 손실을 입었지만 여전히 진전을 가져왔다. 량식 생산이 비교적 안정하게 성장하고 공업, 교통, 기본건설과 과학기술 방면에서 일련의 중요한 성과를 이룩했다. 당과 인민은 여러가지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중국 력사의 발전을 추동했다.

1976년 7월 28일 3시 42분, 하북성 당산시에 7.8급의 강진이 발생하여 24만명이 조난하였고 16만명이 중상을 입었으며 백년의 공업도시는 순식간에 평지로 변해버렸다. 이는 새 중국 창립이래 전국적으로 가장 큰 재난으로 당산 인민들의 생명과 재산에 거대한 손실을 조성했다. 당중앙의 견강한 지도와 전국 광범한 군민들의 지지 방조하에 당산 인민들은 완강한 박투정신으로 지진재해구조와 복구재건에 뛰여들었고 중화민족의 분투사에 한편의 눈물겨운 영웅시편을 써놓았다.

모택동동지를 주요 대표로 하는 중국공산당인들은 전당, 전국 여러 민족 인민들을 단결하여 이끌면서 반제반봉건의 임무를 완수하고 중화인민공화국을 창립했으며 사회주의 기본제도를 확립하고 사회주의건설의 기초적인 성과를 이룩했다. 또한 우리에게 중국특색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길을 탐색하는 데 경험을 루적하고 조건을 제공해주었으며 우리 당과 인민 사업의 승리적 발전을 위해, 중화민족이 시대의 발전조류를 따라가는 데 근본적인 전제를 창조해주었고 견실한 리론과 실천의 토대를 닦아놓았다.



습근평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위대한 력사적 공헌의 의의는 중화민족 유사이래 가장 광범하고 심각한 사회변혁을 완성하고 당대 중국의 모든 발전진보를 위해 근본적인 정치전제와 제도기반을 닦아놓았으며 중국의 발전부강과 중국인민의 생활부유를 위해 견실한 토대를 닦아놓았고 중화민족이 끊임없는 쇠락에서 근본적으로 운명을 돌려세우고 계속하여 번영부강에로 나아가도록 위대한 비약을 실현한 것입니다.”

중국공산당, 중국인민, 중화민족을 위해 불후의 공훈을 세운 모택동 등 로일대 혁명가들은 영원히 당과 국가의 력사기념비에 아로새겨질 것이다.

/CCTV방송, 편역: 길림신문 최승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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