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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홍부터 태양승까지]인민의 훌륭한 아들-류영준

[흑룡강신문] | 발행시간: 2021.05.25일 10:07
  중국공산당 창건100주년

  올해는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100년간 파란만장한 세월을 거치고 힘겹게 한세기를 걸어오면서 만리강산 곳곳에 빛나는 붉은 발자취를 남겼다.

  항일련군의 전쟁의 불길이 타올라서부터 황무지를 개간하기에 이르고, 대국의 중점 사업 추진에서 북쪽 전선으로 향하면서 백년간 "붉은 발자취"는 천년동안 깊이 잠들어 있던 흑토지를 깨웠다.

  흑룡강텔레비전방송 뉴스프로그램 위챗공중계정은 대형 특별프로 "동방홍에서 태양승까지"--클라우드에서 만나는 흑룡강성 100대 "붉은 발자취"를 선보여 3갈래의 발자취를 따라 시공간을 넘어 잘 알려지지 않은 파란만장한 "붉은 력사"를 되새겨본다.

  흑룡강과 우쑤리강이 합치는 '화하동극' 흑할자섬에서 매일 첫갈래의 햇빛이 이곳으로부터 조국의 대지를 밝게 비추기 시작한다. 줄곧 동쪽을 향해 '전진의 방향을 가리키는 동방의 아침해'를 따라 '팔녀투강'의 장렬한 순국을 되새겨보고 현대화농업의 새로운 성과를 견증하며 석탄도시 전환의 도시진척을 탐구하고 집과 나라를 지키는 동극초수를 방문하는 과정을 거쳐 홍색흔적을 추구하고 룡강의 그제날과 오늘날의 거대한 변화를 알아본다.

   제63역 류영준공원



  류영준공원, 즉 류영준렬사릉원은 가목사시 우의로 542번지에 위치해 있다. 1967년에 건설되였으며 부지면적이 3.42만평방미터에 달한다.



  류영준, 1945년 4월 8일, 길림성 장춘시 교외에서 태여났다. 1962년, 중국인민해방군에 참가했고 흑룡강성 가목사시에 주둔한 제23군67사단200련대 중포련에서 전사로 지냈다. 입대 후 그는 늘 뢰봉을 본보기로 하여 자신을 엄히 요구하였으며 중대와 인민대중을 위해 자발적으로 좋은 일을 하면서 기꺼이 무명영웅으로 지냈다.

  류영준은 부대 주둔지 린근 소학교 '교외 보도원'으로 지내면서 어린이들에게 늘 혁명전통을 들려주었을 뿐만 아니라 보조금을 아껴 학교에 도서를 구입해 주기도 했다.



  그는 남을 잘 도와주고 아낌없이 헌신했다. 중대에서 그는 '아마추어 수리원'으로 되여 파손된 중대의 책상과 걸상, 창문을 주동적으로 수리했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그는 '로동휴양원'으로 되여 중환자들을 도와 물을 길어오고 밥을 전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의료일군을 도와 바닥를 쓸고 타구를 씻기도 했다. 출장 도중 그는 '의무근무원'으로 되여 로인과 어린이를 도와주고 어려움에 봉착한 사람들을 도와주려고 애를 쓰는 등 출장 내내 좋은 일을 많이 했다.



  1966년 3월 15일, 그가 소속된 포병중대가 가목사시 교외에서 훈련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 한 포차를 끌던 말이 차량의 기적소리에 놀라 인파를 향해 돌진하는 위험천만한 상황이 발생했다. 포차 마부로 있던 류영준이 어깨로 놀란 말을 억세게 밀었고 그 말은 류영준의 힘에 의해 도로 옆의 작은 길로 방향을 틀어 내달렸다. 그런데 이때 포차 정면에서 멀지 않은 곳에 어린이 6명이 서 있었는데 갑작스레 미친듯이 달려오는 말의 모습에 놀라서 어쩔줄을 몰라했으며 생명마저 위협을 받는 위험한 상황이 나타났다. 이때 류영준은 개인의 안위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밧줄을 팔에 힘껏 동여맨 후 몸을 뒤로 젖히고 젖먹던 힘까지 다해 당겨 말의 앞발이 하늘로 솟아오르게 했다. 이어 그는 두 발로 말의 뒷다리를 힘껏 내리 차 말이 넘어뜨렸다. 마침내 어린이 6명이 모두 위험에서 벗어났지만 그는 뒤엎어진 차밑에 깔리게 되였다. 부상을 너무 심하게 입은 탓에 긴급구조를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영용하게 목숨을 잃었다. 이때 그의 나이는 고작 21살이였다.



류영준이 구한 어린이 6명

  류영준이 희생된 후 그가 소속된 부대 당위는 그를 중국공산당 당원으로 추인하고 1등공 1차를 추서했다. 1966년 7월 14일, 중국인민해방군 총정치부는 그를 따라배울 데 관한 통지를 발부했다. 1966년 7월 28일, '인민일보'는 '인민의 훌륭한 아들'을 제목으로 한 사설을 발표하고 전국 인민들이 류영준을 따라배울 것을 호소함으로써 전국 범위내에서 류영준을 따라배우는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이로써 류영준은 뢰봉, 왕걸, 구양해를 이어 또 한 분의 위대한 전사로 되였다.



  1967년, 가목사시인민정부는 영웅 희생지에서 류영준공원과 류영준기념관을 건설했다. 가목사시민정국은 류영준공원과 기념관에 대해 수차례 계획개조와 건설을 진행하였으며 류영준렬사묘를 새롭게 개조건설함과 아울러 공원 중앙에 류영준이 놀란 말을 용감하게 가로막는 높이 5.45미터의 대형 동조각상을 건설했다.



  모주석은 "한 사람의 능력에는 강약의 차이가 있다. 그러나 전심전의로 인민을 위해 봉사하는 정신만 있다면 고상한 사람이고 순수한 사람이며 도덕이 있는 사람이고 저속한 취미에서 벗어난 사람이며 인민에 유익한 사람이다."고 말했다. 류영준이 바로 이런 사람이다. 비록 그의 일생이 짧지만 그가 전심전의로 인민을 위해 봉사하는 품격과 위급한 상황에서 사심없이 용감하게 헌신하는 정신은 세상에 길이 전해질 것이다. 2009년, 류영준은 새중국 설립 이후 중국을 감동시킨 인물에 선정되였다.



  /동북망 조선어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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