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기자: [ 김청수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106굽이 온정령길따라 만물상으로
다음날 우리는 《만물상》(万物相)을 향해 이동하였다. 그곳은 만가지 경치가 있는 곳이라 하여 《만물상》으로 이름지어졌다고 한다.
뻐스가 산자락을 치달아오르기 시작하는데 아무리 산길이기로서니 오불꼬불 산허리를 감도는 그 길은 빙글빙글 어지럼증이 날 지경이였다. 하지만 뻐스는 요술이라도 부리듯 용케도 돌아치면서 산중턱에 닿았다. 그 령길이 바로 106굽이 《온정령길》이란다.
안내원의 소개에 따르면 이 길 또한 전설을 실은 유서깊은 령길이였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침략자들은 이 령에 길을 빼려고 백성들을 동원하였지만 산세가 가파롭고 험준하여 10년이 넘도록 길을 닦아내지 못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항미원조전쟁 당시 이 온정령너머에서 미제와의 가장 치렬한 전투인 《상감령전투》가 벌어졌다. 류혈전이 한창일 때 조선인민들은 무기와 식량을 수송하기 위해 길닦이에 나서서 두달만에 이 106굽이 령길을 닦아내고 전선지원을 하였던것이다. 이렇게 상감령고지는 지켜졌고 상감령전설은 오늘 또 조선땅을 밟고선 중국인관광객들에게 전해지고있는것이였다.
그길 그 방향을 따라 가는 거기에는 또 《라선교중학교》도 있다고 한다. 우리 일행중에는 중국인민지원군전사 라선교동지가 겨울 강에서 놀던 조선의 어린이를 구원한 사적을 아는 이들이 많았다. 자신의 몸을 던져 물에 빠진 조선의 어린이를 구원하고 자신은 영영 이 땅의 이슬로 사라져간 아름다운 영웅이야기는 새삼스럽게 우리들의 가슴을 적셔주었다.
무수한 전설과 이야기를 품고 푸른 청산으로 말이 없는 만물상을 향해 우리의 행길은 이어져갔다. 이 굽이굽이 산길을 달리려면 일반 뻐스는 어림도 없단다. 하여 차도 따로, 운전기사도 따로 지정되여있었다. 운전기사는 안전하고도 신속하게 우리일행을 싣고 요리조리 뻐스몸체를 빼돌리며80여개 굽이를 에돌아 3선암(三鲜岩)에 당도하였다. 삼선암은 만물상의 입구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그곳에서는 만물상의 절반지역의 대체적 경관은 구경할수 있다고 한다. 차에서 내려 가파로운 산길을 톺아올라가노라니 안개가 피여오르기 시작하는 만물상의 경치는 그야말로 선경이였다.
거의 90도 경사도를 가진 산바위길을 톺아 삼선암봉우리에 올라서니 눈앞에 펼쳐진 황홀경에 그만 신선이 된 기분이였다. 무아지경이라는 말뜻을 그제야 알것 같았다. 그야말로 요술봉을 휘여잡고 구름타고 선경을 굽어보는 손오공이 부럽지 않았다.
우리가 마주하고 향한 그곳으로 계속 올라가면 천선대(天鲜台)라고 한다.그곳에는 하늘이 내린 또 다른 선경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 3박4일 일행에게는 시간일정이 딸려 천선대쪽을 바라만 보고 다시 평양으로 향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