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이자 앱 | | 모바일버전
뉴스 > 문화/생활 > 문화생활일반
  • 작게
  • 원본
  • 크게

[수기]올랴할머니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24.01.16일 11:26
갑진년 룡해의 문턱을 넘어서서 인생의 지평선을 물끄러미 바라보노라니 30년 전 로씨야에서 장사를 하던 시절 사기를 당해 알거지로 나앉고 도무지 어찌할 바를 모르고 방황하던 나를 혜성 같이 나타나 구해준 로씨야 올랴할머니가 떠오른다.

1993년 3월, 로씨야 극동지구와 강 하나를 사이둔 흑룡강 동녕현 정부기관에 출근하던 나는 결연히 ‘하해'의 길에 올랐다. 당시 중로 변경무역이 붐을 이루면서 많은 중국 장사군들이 로씨야 우쑤리스크에 몰려들어 철물, 복장, 소상품 등 장사를 했다. 나이가 젊고 장사에 경험이 없다보니 남들이 하는 대로 철물장사를 시작했다가 열흘도 안되는 사이에 나는 로씨야 사기군의 얼림 수에 넘어가 18만원의 거금을 사기 당하고 하루 사이에 거지신세가 되고 말았다.

장사를 계속하자니 손에 쥔 것이 없었고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안해한테 전화했더니 빚받이군들이 내가 중국으로 건너가면 김치움에 가두려고 하니 죽어도 건너오지 말라고 한다. 살길이 막힌 나는 앞이 캄캄해났다. 어느날 우쑤리스크 중국시장 한쪽 구석에 쭈크리고 앉아 애꿎은 담배만 태우고 있는데 품에 먹거리를 사들고 지나가던 고려인 할머니가 머리가 더부룩하고 입술이 하얗게 말라든 나의 몰골을 찬찬히 훑어보더니 “남들은 돈을 버느라고 야단법석인데 왜 이렇게 앉아만 있소? ”라고 묻는 것이였다. 내가 우쑤리스크로 금방 건너왔을 때 이 할머니가 세집을 소개해준 인연이 있었기에 나는 할머니에게 인사를 올리면서 “아닙니다. 그저 심심해서...”라고 실토정을 하지 않고 얼버무렸다.

알거지가 된 나의 옷차림을 보고 짐작이 갔던지 할머니는 “우리 집으로 가기요.”라고 말씀하시면서 무작정 나의 손을 잡았다. 택시를 잡아타고 뻐스역 부근 메드르위치 3동 아빠트에 자리잡은 할머니 집에 도착한 후 할머니는 뜨끈뜨끈한 토장국에다 이밥과 김치를 챙겨주면서 “배고프겠는데 먼저 식사를 하오.”라고 말씀하시였다. 식사를 하면서 할머니는 나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조선 함경북도 시골에서 태여난 할머니는 성이 최씨이며 1930년대 연변을 거쳐 이곳으로 이주왔던 것이다.

올랴할머니는 “우리는 동족이요. 어려울 때 서로 도와주어야지.”라고 말씀하시면서 나호드까에 자기 둘째딸 마리나가 장사하고 있으니 중국 장사군들이 적은 그곳으로 가보라고 알려주었다. 나는 눈물이 나도록 고마웠다. 이틀 후 나는 올랴할머니와 함께 나호드까에 가서 마리나를 만났다. 나는 과일채소 도매가게를 열고 중국에서 들어오는 채소와 과일을 여러 시장과 식품상점에 도매하는 계약을 맺었다. 운이 좋게도 장사는 시작하자마자 호황을 이루어 나는 평균 3일에 한번씩 중국의 과일과 채소를 실어들이고 마리나는 일군을 모집하여 물건을 파는 한편 작은 트럭으로 물건을 식품상점에 배달하는 형식으로 판로를 넓혀갔다.

나와 마리나가 장사하느라고 아침식사도 제때에 못하는 것을 발견하고 올랴할머니는 70세를 바라보는 나이에 나호드까에 오시여 때시걱을 끓여주고 나의 어지러운 빨래까지 빨아주었다. 그러던 중 생각지도 못하던 일이 발생했다. 1999년 설대목이였다. 나와 마리나가 아침 일찍부터 창고로 나가 물건을 파는데 갑자기 들이닥친 경찰들이 무작정 나의 려권을 검사하더니 외국인 장사 허가증이 없다는 리유로 나를 경찰서로 련행하려고 했다.

구쏘련이 해체된 후 원 국영기업들이 파산해 모두 문을 닫고 사회치안이 어지럽다보니 경찰들이 중국사람들한테서 돈을 후려내는 일들이 종종 발생했다. 내가 경찰서에 끌려가면 언제 풀려나올지 모르고 설 대목 장사가 엉망이 되고 만다. 바로 이 위기일발의 시각에 올랴할머니는 자기 딸에게 눈짓하더니 마리나가 나의 앞에 나서면서 “이 사람은 내 남편이니 건드리지 말아요!”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에누리 없이 밀어붙이는 마리나의 거동에 말문이 막힌 경찰들은 나와 마리나를 번갈아보더니 더는 트집을 잡지 못하고 물러갔다.

빚더미에서 허우적거리던 나는 올랴할머니와 마리나의 덕분으로 두 어깨를 누르던 빚을 갚아버리고 치부의 길에 들어서게 되였다. 그후 나는 또 나호드까에다 과수농장을 꾸리고 연변에서 사과묘목을 실어다가 나호드까에 심었더니 몇년 후 크지 않으나 새콤달달한 사과들이 열리기 시작했다. 나는 직접 수확한 과일을 시장에 가지고 나가 팔아서 다시 한번 튼튼히 자리매김을 하게 되였다.

그때로부터 어언 30년 세월이 흘러 내 나이도 고희문턱을 넘어섰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 지금에 와서도 이국 타향에서 내가 제일 힘들고 어려웠을 때 혈육 같은 사랑으로 나에게 은혜를 베푼 로씨야의 올랴할머니를 떠올리느라면 나는 그 고마움에 감개가 무량해난다. 

/리삼민

뉴스조회 이용자 (연령)비율 표시 값 회원 정보를 정확하게 입력해 주시면 통계에 도움이 됩니다.

남성 50%
10대 0%
20대 50%
30대 0%
40대 0%
50대 0%
60대 0%
70대 0%
여성 50%
10대 0%
20대 0%
30대 50%
40대 0%
50대 0%
60대 0%
70대 0%

네티즌 의견

첫 의견을 남겨주세요. 0 / 300 자

- 관련 태그 기사

관심 많은 뉴스

관심 필요 뉴스

4월 29일, 기자가 중국철도할빈국그룹유한회사(이하 '할빈철도'로 략칭)에서 입수한데 따르면 '5.1' 련휴 철도 운수기한은 4월 29일부터 5월 6일까지 도합 8일이다. 할빈철도는 이사이 연 301만명의 려객을 수송하고 일평균 37만 6000명의 려객을 수송해 동기대비 3.2%
1/3
모이자114

추천 많은 뉴스

댓글 많은 뉴스

1/3
“여친 바람 2번 겪어” 이진호 전여친과 헤어진 이유

“여친 바람 2번 겪어” 이진호 전여친과 헤어진 이유

코미디언겸 방송인 이진호(나남뉴스) 코미디언겸 방송인 이진호(38)가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전 여자친구와 헤어졌던 일화를 털어놨다. 이진호는 지난 4월 30일(화) 방송된 예능 프로그램 ‘신발 벗고 돌싱포맨’에 게스트로 출연했다. 특히 이진호는 이날 방송에서

“죽을 병에 걸렸나 생각했다” 비비 공황장애 고백

“죽을 병에 걸렸나 생각했다” 비비 공황장애 고백

비비(나남뉴스) 배우겸 가수로 활동하고 있는 비비(25)가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공황장애를 겪고 있다고 고백했다. 비비는 지난 4월 29일(월) 공개된 유튜브 채널 ‘짠한형 신동엽’에 게스트로 출연해 공황장애 사실을 털어놨다. 이 자리에서 비비는 “공황장애가 몇 번

모이자 소개|모이자 모바일|운영원칙|개인정보 보호정책|모이자 연혁|광고안내|제휴안내|제휴사 소개
기사송고: news@moyiza.kr
Copyright © Moyiza.kr 2000~2024 All Rights Reserved.
모이자 모바일
광고 차단 기능 끄기
광고 차단 기능을 사용하면 모이자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모이자를 정상적으로 이용하려면 광고 차단 기능을 꺼 두세요.
광고 차단 해지방법을 참조하시거나 서비스 센터에 글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