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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걸 왜 매장 직원에게 물어보나요

[기타] | 발행시간: 2013.05.12일 04:03

한 선배에게 우스갯소리를 들었다. 자신의 어머니는 기분이 울적하거나 몸이 찌뿌드드할 때면 “얘야, 병원 가자”라며 백화점으로 향한다는 얘기였다. 쾌적한 환경, 빛나는 신상품들을 떠올려보니 이해가 됐다. 나 역시 내 마음의 고향은 백화점이라 할 만큼 그곳에 가면 기분이 나른해지면서 에너지가 샘솟는 ‘치유 현상’을 경험하곤 했다. 아마도 많은 여자가 꼭 살 것이 없어도 비슷한 이유로 백화점을 향하고, 윈도 쇼핑을 하는 것이리라.

한데 요즘 그런 ‘백화점 힐링’을 누리기가 사뭇 켕긴다. ‘감정 노동’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면서다. 감정 노동이란 실제 자신이 느끼는 감정과는 무관하게 직무를 행해야 하는 노동을 뜻하는 말. 고객을 직접 상대해야 하기에 슬퍼도 웃어야 하고, 화가 나도 참아야 하는 이들이 감정 노동자로 분류된다. 얼마 전 대기업 상무가 기내에서 벌인 비상식적 행동이 도마에 오르면서 이들의 애환과 고충이 집중 조명되고 있다.

백화점 판매 직원 역시 대표적인 감정 노동자임에 분명하다. 반쯤 쓴 화장품을 가져와 트러블이 생긴다며 환불을 요구하거나, 다짜고짜 반말부터 하는 고객들을 웃는 얼굴로 상대해야 하는 게 바로 그들이다. 설마 누가 그럴까 싶었는데, 얼마 전 직접 목격도 했다. 한 화장품 코너에서였다. 손님은 이미 뜯어 쓴 흔적이 있는 아이라이너를 가져와 색상을 잘못 골랐다며 바꿔달라고 큰 소리를 냈다. “죄송합니다만 안 됩니다”라고 거듭 말하는 직원은 손님이 포기하고 떠나자 길게 한숨을 쉬다가 나를 맞았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말이다.

감정 노동은 일정한 선을 넘는 데서 시작된다. 쇼핑도 그렇다. 서로가 물건을 파는 사람-사는 사람이라는 관계를 확실히 하면 될 것을, 뭔가 그 이상을 기대하면서 사달이 난다. ‘진상’ 고객들에게 쇼핑의 목적은 자신에게 가장 어울리는 옷과 구두를 고르는 그 자체가 아닌 듯싶다. 돈의 힘을 빌려 내적 분노를 터뜨릴 기회를 잡으려는 심술이랄까. 판매원을 화를 받아주는 사람으로, 백화점을 스트레스 푸는 ‘병원’으로 생각해서 말이다.

사람들의 흔한 쇼핑 습관 중에도 판매원-고객의 관계를 헷갈리는 경우가 있다. ‘감정 노동’까진 아니어도 ‘감정 소모’ 대상이다. 자주 가는 옷 매장 직원이 속내를 털어놨다. “화나는 일은 아닌데 난감한 경우가 많죠. 가령 2~3벌을 찍어놓고 어느 게 가장 예쁘냐고 재차 물어볼 때요. 각각의 장단점을 말씀드리면 자꾸 하나를 찍어보라 하죠. 사실 제게 결정권을 준다기보다 자기 속마음과 일치하기를 기대하며 맞혀보라는 거잖아요.”

‘예쁘냐’는 의미에는 가격이 적당한지, 체형에 잘 맞는지, 너무 유행을 타지 않는지 등 다중적 의미가 포함돼 있다는 걸 사는 이도, 파는 이도 모두 알고 있으니 더 속이 탄단다. “예산이 가장 중요한데 그걸 어느 정도로 생각하느냐 물으면 무시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으니 편하게 묻지 못해요.”

손님 입장에서 질문은 나름 내 쇼핑에 동참해 달라는 신호일 수도 있겠지만 냉정히 따지자면 수신자가 틀렸다. 지극히 사무적인, 더구나 처음 만난 관계로부터 친구나 연인에게 물어야 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독심술을 요구하는 경우가 이뿐이랴. 누구는 직원이 너무 착 달라붙는다고 불평하는가 하면, 누구는 손님을 방치한다고 투덜댄다. 이는 사실 정답이 없는 문제다. 나조차 기분에 따라, 시간적 여유에 따라, 제품 인지도에 따라 그야말로 원하는 서비스가 그때그때 달랐으니 말이다. 그걸 인정하면서도 내 마음을 콕 짚어내지 못하는 그들을 답답해 하고 또 서운해 한다.

서비스가 부가가치인 백화점에서 고객이 이 정도도 요구할 수 없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본디 쇼핑의 매력(혹은 목적)은 많은 물건 중에 딱 내게 맞는 것을 골라내는 재미다. 내 경우 직접 입어보고 싶어서, 실물이 궁금해서 백화점을 향한다. 그러니 불친절한 태도만 아니라면 판매원에게서 가장 기대하는 바는 립서비스나 공감보다 소재나 기능을 알려주는 정보다.

‘착한 소비’란 말이 여기저기서 쓰인다. 착취당하는 노동자들에게 이익이 돌아가도록 만든 공정무역 제품이 늘어나고, 환경을 생각해 만든 유기농 브랜드가 트렌드로 부각된다. 이제는 직접 만난 판매자의 감정을 배려하는 것도 착한 소비의 실행 방법이 되지 않을까.

글 이도은 기자dangdol@joongang.co.kr 사진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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