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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어학회 항일투사 33인] 국어사전 편찬 일등공신 한징

[온바오] | 발행시간: 2013.07.01일 21:20
한글학회 연구위원, 박용규(朴龍圭)



▲ 한징 한징(韓澄, 1887∼1944) 선생은 1887년 2월 24일 서울 남부 죽동에서 탄생하였다. 한징의 호는 효창(曉蒼)이다. 1893년에서 1921년까지 한학과 국학을 전공하였다. 그 결과 사서삼경에 정통하였다.

아울러 우리 말글 연구에도 집중하기 시작하였다. 1922년부터 1935년까지 <시대일보>·<중외일보>·<조선중앙일보> 등에서 기자로 활동하면서 일제의 강압정치를 비판하였다. 1923년 민족종교인 대종교에 입교했다.

1929년에서 1932년까지 이윤재(李允宰) 등과 함께 조선어사전의 편찬위원으로 활동하였고, 1931년 조선어학회가 조직된 뒤 회원으로 가입하였다. 이후 조선어학회가 추진한 표준어의 제정과 우리말사전의 편찬에 헌신하였다. 즉 1935년에 조선어 표준어사정위원회에서 사정위원으로, 1936년에서 1942년 9월까지 조선어대사전 편찬의 전임위원으로 활약하였다.

한편 한징은 문세영이 단독으로 조선어사전을 만들 때, 사전 원고의 교정을 책임지고 마무리하여 주었다. 조선어학회에서 사전 편찬의 전임위원으로 활동하던 이윤재도 문세영의 사전 편찬에 크게 기여하였다. 이윤재는 문세영 사전의 체계에서부터 교정에 이르기까지 세심하게 지도하여 주었다. 이렇게 한징과 이윤재의 도움을 받아, 문세영은 최초로 제대로 된 우리말 사전인 <조선어사전>(1938)을 발간하였다.

조선어학회가 추진하던 조선어대사전 편찬 시기에 한징은 동지들에게 “말과 글은 민족정신의 가장 중요한 소산인 동시에 민족정신이 거기에 깃들이는 둥주리다. 민족 문화의 창조 계승 발전은 그 말과 글의 의지에 있다.”라고 말하였다.



일제 말기 조선어학회 사무실에서 사전편찬원들끼리 일제가 기념을 못하게 한 한글날 행사를 몰래 하면서, 그는 “원고를 속히 마치도록 합시다. 그래서 큰 사전을 하루 빨리 활자화하여 얼론 세상에 퍼뜨리어야지, 까딱했다가는 모든 일이 수포로 돌아갈 우려가 있어. 왜놈들 하는 짓이 날로 수상해”라고 기운차게 말하였다.


▲ 한징 선생의 딸 한백영 여사 일제가 일으킨 조선어학회사건에 연루되어 1942년 10월 1일에 체포되어 함남 홍원경찰서에 구금되었다.

당시 아버지 한징의 체포를 목격한 딸 한백영(현재 86세) 여사는 지난 5월 26일 “일제 형사들이 집에 불쑥 들어와 아버지의 서재에 있던 안중근 의사에 대한 책을 꺼내 가져갔습니다. 아버지도 오전 9시경에 끌고 갔습니다. 아버지가 홍원경찰서에 구금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옷도 보내 주었습니다. 오빠 한무영과 내가 함흥감옥에 면회를 갔었는데, 왜놈들이 면회도 시켜주지 않았어요. 나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도움을 못 받고 자랐어요.”라고 필자에게 말씀하여 주었다.

1943년 9월 13일 함흥감옥에 이감되었다. 투옥 중 일제로부터 물고문과 날마다 난타를 당하여 1944년 2월 22일 고문 후유증으로 옥사하였다.

한징은 일제 형사에게 "조선 사람으로서 조선말을 쓰고, 조선말을 사랑하는 데에 무슨 죄가 있느냐?"고 항의하다가 순국하였다. 그의 나이 58세였다. 한징의 처가 함흥감옥을 찾아가 남편의 유골을 가져와 과천에 안장하였다.

뒷날 조선어학회 간사장이었던 이극로는 "한징 선생은 조선어사전 편찬사업에 종시 일관 관계해 사전편찬에는 누구보다도 그의 공로가 크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한 선생 역시 조선어학회 사건에 관계돼 함경남도 홍원경찰서에 구검되었다가 다시 함흥으로 옮기어 1944년 2월 22일 함흥 형무소에서 옥사하시었다"(이극로, 「이미 세상을 떠난 조선어학자들」, <경향신문>, 1946. 10. 9)라고 높게 평가하였다.

해방 뒤 한글날을 맞이하여 조선어학회의 동지 이중화는 한징에 대해 "한징 씨는 그 집안이 4백여년 서울에 근거를 가진 집이니만큼 정확한 발음을 압니다. 발음과 한자말 주석에 공적이 큽니다. 이 사람 역시 빈한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의 부모에 대한 효성은 유명한 이야기로 참으로 모범적인 인물이었지요."(「존귀한 희생자」, <자유신문>, 1945. 10. 9)라고 회고하였다.

1962년, 대한민국 정부는 그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묘소는 대전 국립 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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