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이 12일 김한길 대표의 유감 표명과 홍익표 원내대변인의 사퇴로 청와대와 새누리당 요구에 신속히 대응한 것은 어렵사리 진척시킨 국가정보원 댓글 의혹 사건 국정조사와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열람 합의 등을 자칫 ‘귀태(鬼胎) 파문’으로 날릴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김관영 수석대변인도 김 대표의 유감 메시지를 대독한 뒤 기자들과 만나 “김 대표는 새누리당이 ‘귀태 발언’을 빌미 삼아 국회를 파행으로 몰아간 데 아쉬움이 있지만, 현 시점에선 국정원 국정조사특위 활동이 더 중요하며 하루라도 지연돼선 안 된다는 생각이 강하다”며 “신속한 조치를 취하자는 판단을 내렸다”고 말했다.
이런 기류는 김 대표 의중이 강하게 반영됐다. 당 지도부는 오전만 해도 “귀태 발언과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열람은 별개의 문제”라며 “국정원 국정조사 물타기를 중단하라”고 역공을 폈다. 또 14일까지 여론 추이를 지켜보자는 의견도 많았다. 그러나 당 대표 판단에 따라 오후 늦게 긴급회의를 열어 이같이 결정했다.
신속 결정에는 여론 악화도 한몫을 했다. 당에는 하루 종일 홍 원내대변인을 질타하는 항의 전화가 쏟아졌다고 한다. 과거에도 일부 의원의 ‘막말’ 파문에 휘말려 당이 정치적으로 큰 손실을 본 적이 많아 서둘러 진화에 나서야 한다는 의견이 오후부터 지도부 중심으로 확산됐다는 후문이다. 특히 국정원 댓글 사건으로 민주당에 유리하게 돌아가던 국면이 반전될 수 있다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 핵심 관계자는 “국정원 국정조사라는 본류보다 곁가지로 국민 관심이 쏠리면 새누리당이 바라는 대로 물타기가 현실화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컸다”며 “새누리당의 요구가 불합리하지만 어찌됐든 민주당이 빌미를 제공했으니 신속하게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이날 예정됐던 대화록 예비열람이 계속 지연될 경우 국가기록원이 법정기한인 15일까지 국회가 요구한 자료를 제출하기 어려워진다는 점도 부담이 됐다. 정국 주도권을 빼앗길 수 있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민주당은 여권의 요구를 들어준 만큼 “주말에라도 대화록 예비열람을 하자”고 촉구했다. 김 수석대변인은 “새누리당이 당 대표 유감표명 등의 조건을 받아들이면 즉각 대화록 열람을 할 수 있다고 한 만큼 서둘러 국회 정상화에 협조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 일각에서는 “지도부가 여당 페이스에 말려들어 지나치게 굴종적인 자세를 취한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도 나왔다.
백민정 기자
국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