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계 주민이 대다수인 미국 로스앤젤레스 인근 소도시에서 간판에 영어 표기를 의무화하는 조례가 제정되자 논란이 일고 있다.
4일 (현지시간) 로스앤젤레스타임스에 따르면 몬터레이파크 시의회는 최근 상점 간판에 영어 병기를 강제하는 조례를 제정했으나 여론의 따가운 질책에 시행이 불투명하다.
몬터레이파크 시의회가 '영어 간판 의무화'를 추진한 것은 주로 경찰과 소방관들의 불만 때문이었다.
긴급 상황 때 출동한 경찰관이나 소방관이 출동하면 한자 투성이인 간판을 읽을 수 없어 어디가 어딘지 모르는 곤란한 경우가 많았다.
로스앤젤레스 동쪽에 있는 몬터레이파크는 남부 캘리포니아에서 중국계 주민이 많은 대표적인 도시이다.
2010년 인구통계조사에서 주민 6만여명 가운데 아시아계는 무려 67%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의원 5명 가운데 4명이 중국계이다.
도시 중심가에는 대부분 간판이 한문이다.
영어 간판이라야 영어 원어민은 알아보기 어려운 '중국식' 영어다.
현실적인 판단에 따라 제정한 조례지만 주민들 사이에서는 '인종차별적 조치' 아니냐는 반발이 일었다. 지역 언론에서는 반대 논평이 줄을 이었고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테레사 세바스티안 시장은 "걷잡을 수 없는 지경"이라고 표현했다.
특히 중국계 주민이 지금보다 절반밖에 안 되던 1980년대에 상업용 간판에는 반드시 영어를 쓰도록 하려다 큰 분란이 일어난 적이 있어 아픈 상처를 건드렸다는 지적도 많다.
당시 시의원 3명이 시정부 공식 언어는 오로지 영어 하나라는 선언적 내용과 간판은 영어로만 표기하도록 강제하는 조항을 넣은 조례를 추진하자 주민들은 시의원 소환 투표로 맞섰다.
시의원 한스 량은 "상당수 주민에게는 감정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처음에는 경찰과 소방관의 처지에서 조례 제정에 찬성했지만 지금은 시행을 보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량 의원은 "조례를 통해 강제하는 것보다 다른 방법을 찾자"고 제안했다.
상공회의소 존 만 회장도 "더 신중하고 세심한 검토가 필요하다"면서 "많은 상점 주인들은 왜 간판에 영어를 쓰라는 건지 충분한 설명을 듣지 못했다"고 시정부의 '소통 부재'를 꾸짖었다.
시정부는 곤혹스럽다는 입장이다.
중국계 주민이 대거 몰려 사는 로즈미드, 템플시티, 샌마리노, 샌개브리얼 등 인근 도시도 모두 간판에 영어 의무화 조례를 시행하고 있다.
인종차별이 아니라 현실적인 필요에 따른 것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지역 여론이 이미 반대 쪽으로 기운데다 지역 정치인들마저 대부분 '시행 불가' 입장을 보이고 있어 영어 간판 의무화는 없었던 일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