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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악어거북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13.10.17일 12:31
영원한건 아무것도 없어. 결코! 녀자가 울듯이 내뱉었을 때 그는 웃었다. 그걸 이제야 알았어? 그건 비웃음이였다고 녀자는 단정했다. 거짓말이더라도 내가 있잖아! 그렇게 그가 말해주길 자신이 바라고있었다는것도 알았다. 거짓말이더라도 그 한마디가 위안이 되여줄것 같았다. 어떠한것도 변화시키진 못하더라도 구겨질대로 구겨져버린 그녀 정서에는 도움이 되여줄것 같았다. 정말로 도움이 되였네, 철저한 도움. 녀자는 허구프게 웃었다. 쉽게 풀릴것 같지 않은 매듭이 얽혔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였다. 복잡해진 의식속의 매듭이 하나였다는걸, 녀자는 본다. 눈초리가 매서워져있다. 녀자는 조금 부끄러워져있다. 나는, 나를 좀더 특별한 존재로 대우해주길 바라고있었어!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그에게만은 정말, 특별한 존재이길 바라고있었어. 왜 그였을가? 수많은 사람들중에서 그가 당첨된것만으로도 행운으로 알라고 그렇게 여기고있었던걸가? 그렇다쳐도 왜 나는 누군가의 대우를 바라는거지? 관심을 바라고있는 나는, 그 나는 대체 무엇이지?

언젠가부터 그와의 대화가 힘들어지고있었다. 그는 자신의 대답 같은걸 녀자가 필요로 한다고 생각한듯싶었다. 모두 그를 찾아와 정확한 답안을 요구하는 학생들처럼 그녀 역시 그에게서 시험지에 써넣기 위한 답안 같은걸 요구하고있는거라고 믿고있는듯싶었다. 결코 그럴리가 없다는걸 그는 모른다. 그에게서 녀자가 바라는것이 결코 그따위 해답 같은것이 아니란걸 그는 모른다. 스스로를 잘 통어해오던 그도 그쯤에서는 허둥지둥한다. 답이 아니라 그의 관심이라고 터놓을수도 없었다. 자존심때문에 할수가 없었던 요구였고 다만 먹이를 기다리고있는 악어거북처럼 기다리고만 있었다. 헌데 악어거북은 유인할수가 있는 애벌레 모양의 미끼라도 있지 않는가? 그쯤에서 녀자는 참을수가 없어 앵앵거린다.

녀자는 조심스럽게, 정말로 조심스럽게 자신을 헤집어본다. 과거의 그녀가 오글거리고 그안에 들어앉아있다. 좀전에 울듯이 그에게 화를 내던 자신도 들어있다. 막 조심스럽게 자신을 헤치기 시작한 그녀도 그안에 들어있다. 막 진행되고있는 이 순간들이 과거속으로 쑥 빨려들어가 그렇게 헤집어보질 않은 이상 그안에서 언제이고 숨을 죽이고있을거라는 사실에 소름이 끼쳐온다. 《금강경》의 한구절이 딩- 하고 멀리서 울려오는 종소리같이 그녀에게 울려온것도 거의 동시였다.

과거의 마음 얻을수 없고 (过去心不可得)

현재의 마음도 얻을수 없고 (现在心不可得)

미래의 마음도 얻을수가 없네 (未来心不可得)

두려움이 수많은 발을 움직이며 창밑을 지나가는 돈벌레 같이 스멀스멀 기여간다. 녀자는 모든 의식을 무(无)로 놓아버린다. 무로 놓아버린건지 아니면 두려움에 놓아버린건지 잘 구분이 될턱도 없다. 의식에 내가 따라가는것도 의식이 나를 따라오는것도 아닌, 그런 알수 없는 경계에 놓인것만은 분명했다. 그 분명하다는 자각이 더 한층 깊은 나일지도 모른다는 그런 생각이 들 때쯤, 녀자는 노래를 부르고있었다. 왜 하필이면 그런 노래였을가? 《돌돌돌돌 개암이 열렸다네요/ 나무잎이 누래지는 가을바람에/ 돌돌돌돌 개암이 굴렀다녀요…》 몇번이고 그녀의 입에서 돌돌돌돌 하고 반복되여 노래가 빠져나왔다.

아침장 보러 나갔던 시장에서 보았던 개암은 녀자가 알고있던 개암이 아닌것처럼 시장바닥에 어지럽게 무져있었다. 그녀가 손가락으로 다치자 개암이 홱 돌며 놀란듯 떨어졌다. 《갓 딴거라오, 좀 사시려우?》중늙어보이는 남자가 물어오자 녀자는 불에 덴듯 화들짝 저만큼 물러나버렸다. 어렸을적 정신없이 개암을 따라가며 뜯다가 저도 모르게 이미 버려진 무덤우에 서있음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 저만큼 튕겨나갔던 그때처럼 녀자는 거기서 달아났다. 개암은 아이때 많이 먹던 부식이였다. 찬바람이 스쳐지나면서 풀잎이 쓰러지기 시작할 때쯤 벌레와 누가 먼저 먹나 시합하듯 따먹어야 한다. 조금만 방치하면 금방 통통하게 살찐 벌레가 개암안에 가득 차버리기에 따온 개암들을 끓는 가마에 푹푹 쪘다. 그렇게 찐 개암을 말려서는 겨우내 먹었다. 《돌돌돌돌 개암이 열렸다네요/ 나무잎이 누래지는 가을바람에/ 돌돌돌돌 개암이 굴렀다네요…》 녀자가 말을 번지기 시작하면서 즐겨 불렀던 동요였다. 개암이란 발음이 늘 《깨끄마리》로 불러졌던 동요였다. 커서야 그 동요의 내용처럼 찬 가을바람이 불면서 나무잎이 누렇게 된다는걸 그리고 딱 그때 개암이 《미미 돈다》는것도 알았다. 그런 경우에 녀자의 고향에서는 《미미 돈다》고 했다. 손으로 만지기 무섭게 알이 꽉 찬 개암이 절로 똑- 떨어졌다. 개암은 절대로 시장에서 사먹는것이 아니였다. 오이나 고추나 파 같은걸 처음 시장에서 살 때의 그 생경함, 녀자는 웬지 못할짓을 저지른 아이처럼 오래도록 부끄러움같은걸 느꼈다. 그래서일가? 그녀는 좋아했던 개암을 보고도 선뜻 돈을 내밀고 살수 없었다. 뜯으러 가야지, 그랬다. 그러면서도 정작 오래도록 다시 가본적이 없는 고향이였다.

그때문이였다. 《고향에 한번 가보고싶어. 이쯤에 개암 참 많이 달렸었거든…》 《그냥 나가서 사먹어.》 그가 허벅허벅하게 내던진 한마디, 녀자의 가슴속에서 천둥이 울고 번개가 치고 우박이 내렸다. 그녀가 다시 고향에 가지 못한것이 마치 그의 잘못이기라도 하듯 녀자는 그를 노려보았다.

녀자는 계속 노래를 부른다. 이 노래 역시 반복되고 또 반복되고있지만 언젠가는 끝나리라. 갑자기 그녀는 뚝- 소리를 멈춰버린다. 돌, 하고 수많은 돌돌돌이 입안에 삼켜져버리고만다. 녀자는 이제 밖으로 나가고싶어진다. 아빠트건물뒤로 이어진 산길, 아스라한 산언덕이 보인다. 그 길이 멀고멀어보인다. 암만 해도 내가 떠나온 그 세계로 돌아갈수 없는게 아닌가? 녀자는 웬지 꼼짝없이 돌아갈데도 더 나갈데도 없이 갇혀버린듯 답답해진다. 오른쪽으로 올라가면 산언덕으로 가는 길, 왼쪽으로 내려가면 시중심거리, 녀자는 잠시 흔들린다. 이제 어떻게 가야 하는거지? 녀자는 알수 없다. 결혼을 한후 2년쯤 되였을 때 녀자는 고향으로 다녀온적이 있었다. 아직 개암이 물망울같이 파랗게 맺힐무렵이였다. 《애기는?》 만나는 사람마다 녀자에게 물었다. 《아직 없어요…》 녀자는 부끄러워하면서 대답했다. 《곧 있겠지…》그럭저럭 3년이 지난후부터 녀자는 심하게 화가 끓어오름을 느꼈다. 그렇게 흘러간 세월이 7년인가 8년인가? 혼자 남겨진 아버지까지 돌아가신후로는 다시 발걸음을 돌리지 않았던 고향이였다.

이름조차 알수 없는 화사한 꽃들이 가득 피여있는 아빠트 화단 한구석에는 누군가가 심은, 넓다란 호박잎을 너부적거리며 꽤 무거워보이는 호박 하나가 데룽데룽 매달려있었다. 정겹기도 하면서 짠한 그 느낌, 그것은 호박덩굴이 커오는 내내 계속되고있다. 바람이 분다. 하늘로 늘어져있는 오동나무를 배경으로 그아래우로 제비들이 어지럽게 날고있다. 가끔 그런 꿈을 꾸군 했다. 애시적때다. 씻어놓은 하나뿐인 운동화가 채 마르지 않아 발을 동동 구르다가 축축한 그대로 신고 학교로 간다. 그녀 등뒤로 오래전에 돌아가신 할머니의 푸념도 그대로 들린다. 《오늘 나가서 사줄라고 갔능디 하나는 질이(길이)는 되는데 볼이 안되구 하나는 볼이 되는데 또 질이가 안되구… 딱 애나 죽겠수…》 축축한 신을 신고 학교에 가는 길은 왜 그리도 힘든지… 돌부리에 채워 넘어지기를 몇번이고 반복했다. 그러다보면 무릎이 까지고 손바닥이며 팔뚝이 다 벗겨져 피가 흥건해졌다. 다행스러운건 지나가던 사람들이 몰려와 손을 내밀어 부축해주고 상처를 닦아주었다. 사람들의 도움속에서 그녀는 아픔도 그 축축한 운동화도 잊어버리군 했다… 그러다가 깨고난 꿈은 웬지 모를 아쉬움이 남아있었다. 그 꿈이야기를 처음 그에게 했을 때, 그는 아무 말도 없이 녀자에게 책 한권을 내밀어주었다. 《꿈풀이에 의한 진단》이란 꿈풀이로 림상치료한 병례를 다룬 책이였다. 《이런거 나 안 믿어…》녀자가 책을 그녀앞 탁자에 내려놓고 돌아선 그의 등뒤에 대고 소리쳤다. 그리고 며칠이고 책은 그가 놓은 그 자리에 놓여져있었다. 하도 할 일이 없어 심심해진 녀자는 문득 그 책을 발견하고 펼쳤다. 그녀 손끝에서 펼쳐진 책속에는 자궁근육종양과 꿈에 본 자기의 상처에 관한 병례가 적혀있었다. 녀자는 거의 단숨에 읽어내려갔다. 거기에 적힌 꿈의 내용은 녀자의 꿈과 거의 비슷했다.

넘어져 상처를 입지 않으면 칼에 손을 상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모여와서 자신을 도와주었기에 아주 격동되였다는것, 그 녀자의 꿈이야기를 듣고 《신질병학(新疾病学)》의 작자인 가운로선생이 말했다. 《산부인과병이 있구먼. 만약 마음의 병을 치료 안하고는 수술하여 종양을 베여버려도 또 자라난다오. 기공사가 발공하여 치료한대도 자랄수 있지요. 자궁근종은 당신 자신의 잠재의식인데 무의식간에 만들어낸것이지요. 꿈에 스스로 상처를 입은것은 고의적이며 이런 방법으로 다시 친인들의 주의를 환기시키자는것이지요.》

그후 몇번인가 녀자는 같은 꿈을 꾸었다.

녀자는 자신의 발을 내려다본다. 지금은 축축한 운동화가 아니다. 하얀 구두다. 산길을 올라가기에는 꽤 부담스럽다. 시내로 나가려고 했나? 녀자는 알수 없다. 길녘 화단에 걸터앉아 뭔가 얘기를 주고받던 안로인 두분이 그런 그녀를 눈여겨본다. 녀자는 빨리, 어디론가, 아무 곳이라도, 이 자리만은 뜨고싶다. 그 자리에 머뭇거리고있는 자신이 슬슬 민망스러워지기 시작한다. 녀자는 몸을 왼쪽으로 돌려본다. 거의 습관적인 몸돌림이다. 매번 문을 나서면 그렇게 돌아서 시내로 나갔다. 녀자의 하얀 구두 한짝이 허공에서 무춤한다. 이대로 나갈수 있을지 그녀는 불안하다. 남들처럼 아이 낳고 평범하게 사는 삶이 그녀에게 왜 이리도 힘든지 알수 없다. 녀자는 오른쪽으로 발길을 돌린다. 허나 한발작도 내디딜수 없다. 암만 해도 떠나온 그 세계로 돌아갈수도 어쩔수도 없는게 아닌가? 녀자는 아무런 출구가 없는 긴 터널속에 갇혀버린 기분이다. 모든 선택을 멈추는것, 그것이라니… 녀자는 다시 그 자리에 멈춰섰다. 멀리로 향해있던 눈빛이 쓱 그 자리로 돌아온것도 거의 동시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두 로인의 대화가 쏙 녀자의 귀로 마음으로 들어온다. 《꽃들이 왜 요리도 곱게 피였대요. 여태 본 꽃들중에 젤루 이쁘구먼… 그럼요, 그럼요! 요렇게 매일 여기 앉아만 있어도 넘 좋수다. 행복이란게 별게 있겠소…》

녀자는 두발을 모으고 지금 이곳에 선다. 조용히 꽃이 웃듯 녀자도 웃는다. 그때, 먼 바다밑 잠든듯 바위틈에 몸을 도사리고있던 이미 바위같이 생겨먹은 악어거북이 씨익-눈을 뜨고 그녀를 바라보며 웃고있었다.

/박초란

편집/기자: [ 리영애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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