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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만강문학상응모작 수필] 백년부락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13.10.31일 12:20

도문시 월청진에 위치한 백년부락을 찾아가던 그날, 나의 마음은 설레이기만 했다. 백년부락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백년 세월을 간직한 고향마을 일초일목이 파노라마처럼 떠오른다. 이 길을 따라 두만강을 거슬러 곧추 올라가면 고향마을일텐데…

몸집이 웅장한 돌에 새겨진 백년부락 입구에 들어서니 고향에 찾아온듯 맥박이 빨라진다.

입구에 위치한 한옥 앞마당에서는 함초롬한 청보리가 세풍에 수줍은듯 설레인다. 퍽 낯 익은 모습이다. 청보리처럼 풋풋한 나의 첫사랑 숙이는 고향마을 한복판 백년 넘는 고택에 살고있었다. 숙이네 집앞을 지날 때면 언제나 발뒤꿈치를 들어 돌담너머 백년고택을 기웃거렸다. 오얏나무아래에서 책을 읽고있는 노을처럼 고운 숙이를 볼 때면 얼마나 가슴이 콩닥거렸던가. 초중 1학년때 숙이네는 내몽골로 이사했다. 하필이면 수천리나 떨어진 그 먼 곳에 이사했을가. 그후로 나는 숙이를 한번도 보지 못했고 소식마저도 모르고 살아왔다. 언제나 여한을 안고 사는것이 인생인가부다.

청보리밭 가장자리에서는 잠자리가 장다리끝에서 요리조리 옮겨앉으며 오후의 따스한 해볕을 즐기고있었다. 어릴 때에는 늘 고향집 앞마당 굽바자에 붙어서서 코등에 땀을 벌벌 흘리며 《소곰재 꽁꽁 앉은 자리에 앉아라. 먼데 가면 죽는다.》는 동요를 부르며 잠자리를 나꿔채기에 여념이 없었다. 인간은 왜 《먼데 가면 죽는다.》는 동요를 부르면서도 너도나도 고향을 떠나 먼데로 가지 못해 아득바득 애쓰기만 하는가.

백년부락은 백년 넘는 고택 한채와 풍격과 용도가 서로 다른 조선족전통한옥 20여채로 조성되였다. 고혹적인 매력의 룡마루기와집과 노란 벼짚으로 이영을 얹은 소박한 초가집이 서로 어울린 백년부락은 세월의 흐름속에서 뒤안길로 사라져버린 우리네 전통부락을 재현한것이다.

옹기종기 둘러앉은 초가집들은 낮은 돌담으로 둘러져있다. 돌담우에 줄느런히 무져져있는 고색창연한 기와장들은 년대에 따라 크기, 무늬, 색상이 서로 다르다. 이런 기와장들은 어찌나 단단한지 지붕에서 내려뜨려도 잘 깨지지 않는다고 한다. 질그릇들도 어떻게 구웠는지 오래된것일수록 가볍고 단단하고 자연스럽고 예뻐 조상들의 지혜에 혀를 차게 한다.

초가집 돌담너머 디딜방아가 눈길을 끈다. 몰강스러운 할머니는 우리 집을 떠나 큰집으로 갈 때까지 어머니를 심하게 족대겼다고 한다. 어머니가 나를 임신하고 만삭일 때 정월 엄동에 할머니가 어머니더러 동네에 가서 매돌을 빌려오라고 불호령을 내렸다고 한다. 무거운 몸에 매돌을 머리에 이고 강바람을 맞으며 집으로 돌아올제 어머니는 눈물이 앞을 가려 죽고싶은 생각이 굴뚝처럼 일었다고 한다. 내가 어릴적 할머니는 늘 사소한 일로 어머니에게 가탈을 부렸는데 구정물을 통채로 어머니의 머리에 퍼붓기가 일쑤였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우악스러운 할머니와 가래지 않고 묵묵히 곡식자루를 머리에 이고 무거운 걸음으로 방아간을 찾았다. 어머니는 방아를 찧으며 시름과 설음도 함께 찧으셨을것이다.

골목길을 따라 몇걸음 걸으니 자그마한 공터에 큰 석마가 놓여있다. 오랜 세월의 여울에 이끼 낀 석마, 우리네 겪은 력사만큼 묵중함이 느껴진다. 우리 마을에도 이와 비슷한 큰 석마가 있었다. 마을 북쪽 빈 자리에 버려져있었는데 몇년전에 마을사람들이 얼마 되지 않는 돈을 받고 외지사람에게 그 석마를 팔아버려 떡심이 풀리기도 했다.

백년부락의 으뜸은 당연히 100여년의 풍우를 끄떡없이 이겨낸 전통한옥이다. 이 전통한옥은 조선이민 박여근이라는 상인이 3년간의 시간을 들여 1893년에 준공한것이라고 한다. 가옥의 주인은 이 집에서 50년 살다가 해방후 일본으로 건너갔다고 한다.

백년고택은 면적이 크고 조선족건축특색이 선명한데 토목과 기와구조로 대못 하나 박지 않고 자귀와 도끼 등 도구를 사용해 건축했다. 고택은 마루와 온돌이 결합되고 퇴마루가 있다. 내부구조는 정지, 웃방, 고방, 한웃방, 한웃고방, 사랑채로 구성되였다. 집을 짓는데 필요한 목재는 장백산의 량질원목을 떼목으로 운반해다 사용하고 기와는 조선에서 배를 리용해 운반해다 사용한것으로 알려졌다.

백년고택 뜨락에 들어서니 제일 먼저 눈에 띄는것이 샘이 깊은 드레박우물이다. 우물가에는 수양버들이 머리를 풀고 바람에 하느작거린다. 고향마을 우물가에도 마을의 년륜만큼 수령이 오랜 버드나무 한그루가 있었다. 마을사람들은 매년 10월 초하루날이면 버드나무아래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비는 당산제를 지냈다. 부모님들은 당산나무의 령험을 받기 위해 가족중에 누가 아프거나 멀리 떠난 자식들이 무사하기를 기원해 당산나무에 정성껏 치성을 드렸다. 여름밤이면 마을사람들은 버드나무아래에 모여들어 밤이 깊어가는줄도 모르고 몸이 날짝지근해질 때까지 세상만사를 노닥이면서 잠시나마 각다분한 인생사를 잊군 했다. 긴긴 겨울밤이면 군것질이 구쁜 아이들은 우물에 얼어붙은 얼음을 까다가 얼음과자처럼 맛있게 먹으면서 주린 배를 달랬다. 그야말로 우물은 마을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풍성하게 살찌워준 젖줄이였다.

백년고택 앞으로는 작은 개울이 흘러간다. 바로 이 개울가에서 아낙네들은 빨래를 하면서 시집살이의 설음과 고달픔을 헹구고 남정네들은 흙 묻은 호미를 씻고 낫을 갈면서 풍년을 기원했으리라. 마당 북쪽에는 마을의 견증자인 물레방아가 삐꺼덕삐꺼덕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데 적막한 마을에 생기를 더해준다.

백년고택 문턱에 서서 집안을 들여다보니 구들에 오랜만에 보는 까래가 깔려있다. 부뚜막은 먼지 한점 없이 깔끔하다. 반지르르 윤기가 도는 가마가 걸린 부뚜막우 빨래줄에서는 세마리의 새끼 제비가 한가롭게 낮잠을 자고있다. 내 고향집 내부모습과 꼭 닮은 꼴이다. 가마목에서 밥을 짓던 어머니가 《바가지가 엎어지더니 네가 기별도 없이 집에 돌아오려고 그랬구나.》라고 말씀하시며 맨발바람으로 봉당에 내려서서 나를 반기실것만 같다.

우리 마을에도 세월의 모진 풍우를 이겨낸 백년고택이 세채나 있었다. 1990년대초, 마을사람들은 셈평이 펴이면서 마을의 력사를 고이 간직한 고택을 흉물로 여기고 가차없이 톡탁 쳐버리고 새 벽돌집을 지었다. 이젠 고향마을은 집도 골목길도 어디라 없이 설면한 모습으로 변해버렸다.

숙연한 마음으로 백년부락 구석구석을 갈마보고나니 그립던 고향에 다녀온듯 마음은 홀가분해지고 타향살이에 찌들었던 삶이 치유된다. 첫사랑처럼 영원히 잊을수 없는것이 고향이고 가시처럼 내 살점에 박혀있는것이 고향이다. 점점 사라지고있는 백년부락이 우리의 전통마을을 재현시켜 고향이 그리울 때면 언제든지 달려갈수 있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르겠다.

/김인덕

편집/기자: [ 리영애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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