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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서있는축구] 이영표 같은 선수를 우리 생애 또 볼 수 있을까?

[기타] | 발행시간: 2013.11.14일 14:31

이영표는 은퇴기자회견에서 눈물이 아닌 미소를 보였다 (사진=연합뉴스)

[두서있는축구] 서호정 기자= 14일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열린 이영표의 은퇴기자회견에는 눈물이 없었다. 그는 시종일관 미소를 보였다. 취재진의 쏟아지는 질문에는 잘 정돈된 말과 여유가 있었다. 다른 선수들의 은퇴식이 눈물범벅이 된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그는 “6년 전부터 은퇴를 생각하고 고민해왔다. 그 시간 동안 너무 많이 울어서 막상 은퇴를 결심한 뒤에는 눈물이 흐르지 않았다”고 말했다. 6년 전이라고 하면 그가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의 토트넘 홋스퍼에서 뛰던 한창 때다. 갓 서른을 넘어선 시점에 이영표는 이미 현역 선수 너머의 지점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이영표는 늘 고민이 많은 선수였다. 그와 두 차례의 개별 인터뷰를 가진 적이 있다. A매치 경기 후 믹스트존에서는 수 차례 만났다. 인터뷰를 하고 나면 늘 같은 생각이 들었다. ‘달변가 이상의, 인생의 깊이를 얘기하는 사람’. 표면적인 답변 이상의 심층적인 답변이 그에게서는 늘 나왔다. 오히려 취재진에게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그의 고민의 끝에는 자신의 축구, 그리고 한국 축구가 있었다. 그런 고민이 때로는 한국 축구를 불편하게 만들기도 했다. 프로축구의 현실에 대한 거침 없는 쓴 소리를 했다가 역풍을 맞은 적도 있다. 이영표는 은퇴기자회견에서 “싫은 소리를 해 한국 축구를 위해 노력하는 분들을 불편하게 했지만 그것 역시 내 책임감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모두가 인정하듯 이영표는 축구 기능을 발휘하는 한 선수로서도 매우 훌륭했다. 현대축구에서 전술적 중요도가 높은 풀백 위치에서 세계적 수준의 기량을 발휘했던 그가 있었기에 지난 2002년 한일월드컵 이후 10년 간 한국 축구에 적어도 풀백이 문제였던 적은 없었다. 그와 함께 한국 축구를 이끌었던 박지성이 대표팀 생활 말년에 행동하는 리더십으로 주목 받았다면 이영표는 음지에서 그것을 받치는 또 다른 리더였다. 그가 떠난 뒤 난 자리가 더 커 보이는 것도 그 때문이다. 대표팀은 여전히 제2의 이영표를 찾지 못하는 상태다. 박지성의 빈 자리만큼, 그의 빈 자리에도 많은 이들이 불안해한다. 이영표는 “좋은 선수가 그만큼 많기 때문이다”라며 젊은 선수들의 도약을 기다려줄 것을 부탁했다.

이영표는 은퇴기자회견에서 숨김이 없었다. 그 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 그리고 떠나는 순간 더 이상 남기지 않겠다는 듯 자신의 선수 생활에 대해 충실히 고백을 했다. 한 선수로서 축구에 대해, 인간으로서 자신의 직업과 정체성에 대해 어떤 고민을 해 왔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기자회견이 끝난 순간 이 생각이 들었다. ‘과연 이영표 같은 선수를 우리 생애에 또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인가’.

이영표는 음지에서 대표팀을 떠받친 또 한명의 리더였다 (사진=연합뉴스)

“나는 대표팀 수비불안의 주역이었다”

“승리의 기쁨, 패배의 아픔과 같은 시간을 반복하던 선수 생활을 마치고 마지막 인사를 드리고자 하니 감사한 마음, 한편으로는 미안한 마음이 떠오릅니다. 많은 팬들에게 미안한다는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2002년 월드컵 전까지 한국 축구의 고질적인 문제는 수비불안이었습니다. 사람들 눈에 보이진 않았지만 저 때문에 패한 적이 많았습니다. 비겁한 변명과 핑계로 둘러댄 적도 많습니다.”

이영표는 기자회견이 시작된 뒤 가진 모두발언에서 의외의 얘기를 했다. 자신이 대표팀의 문제였던 수비불안을 만든 주된 선수였었다는 사실이다. 1999년 멕시코와의 코리안컵 경기를 통해 대표팀에 데뷔한 뒤부터 2002년 한일월드컵 전까지의 얘기였다. 그 3년 간 이영표의 말처럼 대표팀은 수비불안에 휘청거렸다. 세계적인 팀을 만나면 서너 골을 내줬다. 프랑스, 체코 등을 상대로는 0-5로 패한 적도 있었다. 이영표는 그 시절에 대한 자기반성으로 은퇴에 대한 얘기를 시작한 것이다.

그 수비 불안을 씻어낸 것은 결국 이영표 개인의 노력이었다.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지만 그가 자신을 발전시키기 위해 흘린 땀이야말로 한국 축구가 더 이상 수비 불안이란 관습적인 표현에 흔들리지 않는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그를 프로 무대로 이끈 조광래 전 대표팀 감독은 “영표는 많은 것을 갖춘 선수는 아니었다. 그런데 프로에 오고 대표팀에 가면서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선수가 됐다. 자신의 한계를 넘어선 선수다”라고 평가했다. 오른발잡이인 그가 왼쪽 풀백에서 뛰기 위해 기울여야 했던 부단한 노력, 많이 뛰는 운동량에 전술적 세련미를 가미했던 축구지능의 향상, 그가 빛난 건 측면에서 상대 수비를 흔드는 화려한 드리블과 페인팅 모션이 아니라 MLS 시절 멋진 프리킥 골을 넣는 수준에 이른 그의 부단하고 끊임없는 노력과 자기계발이었다.

좋은 선수 이전에 좋은 사람이 되어라는 충고를 남긴 이영표 (사진=연합뉴스)

“좋은 선수보다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라운드 위를 달리느라 주변을 돌아볼 겨를도 없었던 저는 이제서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생하는지를 보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만 받았을 뿐, 도움이 되지 못한 저의 인생을 돌아봅니다. 좋은 축구선수보다 중요한 것은 좋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좋은 사람이 된다면 좋은 선수가 되는 건 훨씬 더 쉽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한국 축구는 큰 내흥을 겪었다. 진원지는 축구 국가대표팀이었다. 한국 축구를 대표해, 자신의 왼쪽 가슴에 새겨진 엠블럼에 자부심을 갖고 최선을 다해 뛴다고 믿었던 선수들이 알고 보니 이기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많은 이들은 실망했다. 이영표가 떠나는 자리에서 많은 후배들에게 당부한 것은 하나였다. 좋은 선수가 되기 전에 좋은 사람이 되라는 것. 거대한 성과는 자신만의 노력이 아니라 주변의 도움이 함께 있을 때 완성된다는, 선수이기 전에 한 인간이자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생각을 가질 것을 부탁했다.

“애국가가 울려퍼지는 태극기 앞에서 왼쪽 가슴에 손을 얹을 때, 진정한 즐거움은 내가 아닌 우리라고 느꼈습니다”라는 그의 말처럼 대표팀은 나와 혼자가 아닌 우리와 함께일 때 더 강해지고, 축구로 행복해지는 공간이다. 자신의 발로 만든 골과 승리에는 보이지 않은 많은 이들의 마음과 도움이 이어져 있다는 것을 늘 잊지 말라는 가르침이었다.

유럽에서의 경험은 선수 이영표를 진일보시켰다. 2005년 챔피언스리그 4강에서 AC밀란을 상대하는 모습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나의 체력 저하를 동료들이 인지하면 안 됐다”

“동료들은 아직 더 뛸 수 있는데 왜 은퇴를 하려고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나는 내 체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다만 동료들이 그걸 인지하지 못할 때가 은퇴를 위한 최적의 타이밍이라고 생각하고 준비해왔습니다. 이제 매일 찾아오던 육체의 고통에서 자유로워집니다. 운동을 할 때 감내해야 했던, 엄청난 고통을 선택권 없이 받아들여야 했지만 이제는 피할 수 있어서 기쁩니다.”

이영표는 선수로서의 마지막 시즌에도 쌩쌩했다. 밴쿠버가 치른 34경기 중 32경기에 출전했다. 팬들의 박수를 받게 하기 위해 마틴 레니 감독이 일부러 경기 종료 전 뺀 마지막 경기를 제외하면 모두 풀타임 출전이었다. 완벽한 자기 관리를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이영표는 자신의 체력에 한계가 오고 있음을 자신만은 느꼈다고 고백했다. 1977년생인 그는 올해 한국 나이로 서른 일곱살이다. 긴 시간 은퇴 시점을 고민해 왔던 이영표는 자신은 체력의 한계를 느끼지만, 동료들은 그것을 알 수 없는 그 타이밍을 기다렸고 때가 되자 주저하지 않고 은퇴를 선언했다.

축구를 즐긴 선수로 자신을 기억해주길 바라는 것이 이영표의 소망이다 (사진=연합뉴스)

“축구를 즐겼던 선수로 기억해주길 바란다”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이 저를 잊는 것은 당연할 겁니다. 은퇴를 준비하면서 많은 생각을 했고, 그런 상황에 미리 적응을 했습니다. 시간이 지난 뒤에 많이들 기억해줄까 하는 궁금증이 있다. 축구를 즐겼던 선수로, 저 혼자 느끼지 않고 많은 사람들과 공유한 선수로 기억해주길 바랍니다. 이영표와 함께 축구를 즐겼다고 생각해준다면, 제 축구인생은 가장 행복할 겁니다.”

이영표는 왜 은퇴기자회견에서 울지 않았을까? 그는 자신의 축구에서 행복과 즐거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는 승패가 갈리는 살벌한 승부의 장에서는 ‘즐거운 축구’를 해야 한다는 소신을 놓지 않았다. 자신이 가장 축구를 즐겼고, 보는 이들을 즐겁게 할 수 있는 묘기에 가까운 장면도 수 차례 보였다. 그런 축구선수로서의 삶에 대한 만족이 많은 카메라 앞에서 은퇴를 말하는 그 순간, 아쉬움과 슬픔보다는 만족과 자부심으로 드러난 것이다.

최선을 다하면서도 축구를 즐겼던 선수 이영표, 과연 우리는 그와 같은 선수를 한국 축구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두서있는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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