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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권력을 읽어라,한국의 대북 첩보전

[조글로미디어] | 발행시간: 2013.12.21일 12:09
"장군님 자나, 아주 자나?" … 김정일 중병설, 감청으로 알아냈다



국방지형정보단 직원들이 북한 전역을 3차원 영상으로 구현한 지형정보를 살펴보고 있다. [중앙포토]

김대중정부 시절 정권 실세였던 정보기관 최고위급 간부는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관련한 내밀한 첩보를 사석에서 발설했다가 곤욕을 치렀다. 기자들과의 술자리에서 안줏거리 삼아 말을 꺼낸 것이다. 김정일이 평양 관저에서 프랑스 파리에 머물고 있던 한 여성과 나눈 대화 내용이었다. 당시 이 여성은 김정일을 ‘자기’라고 부르며 자신이 어떤 옷차림을 하고 있는지 맞혀보라는 등의 말을 건넸다. 두 사람 사이의 농도 짙은 통화 내용은 지극히 사적인 사항이었다. 북한을 불필요하게 자극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를 언급한 게 적절한가를 두고 논란이 일었다.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당국이 수습에 나서 공론화하는 걸 막았지만 김 대통령은 상당히 진노했다는 후문이다.

 대북정보 관계자는 20일 “당시 김정일과 대화한 여성이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의 생모인 고영희였다”고 귀띔했다. 고영희는 유선암 치료를 위해 파리의 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2004년 5월 현지에서 숨졌다. 김정일은 28년간 함께한 고영희를 위해 고급 관이 실린 특별기를 보내 시신을 운구했고, 평양 대성산 묘역에 안장토록 했다. 김정일에게 버림받은 뒤 우울증에 시달리던 첫사랑 성혜림(장남 김정남의 생모)이 모스크바에서 쓸쓸하게 숨진 것과 비교된다.

 통신 감청은 대북정보 수집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특히 평양 로열패밀리 간의 은밀한 대화는 베일에 싸인 권력 내부의 퍼즐을 맞추는 데 유용하다. 사적인 내용이라 해도 이를 통해 두 사람 사이의 역학관계나 권력 변화의 단초를 확보할 수 있다. 북한 내부의 통신에 비해 평양과 외부를 연결하는 국제통화는 훨씬 감청이 용이한 데다 고급 정보가 담겨 있다. 정보 당국이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야다. 물론 관련국과의 대북정보 공조가 사전에 완벽하게 이뤄져야 가능한 일이다.

한·미 연합 ‘제777부대’ 감청 주도

지난 12일 ‘국가전복음모’ 혐의로 전격 처형된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의 경우도 생전에 해외에 체류하거나 여행 중인 처조카들과 통화가 잦았다고 한다. 마카오 등지를 떠돌던 김정남은 장성택에게 ‘고모부님’이라며 깍듯하게 대했다. 장성택은 김정남의 뒤를 보살펴주며 애틋하게 대했다. 숙청 직후 장성택이 유사시 김정남을 내세워 정권을 장악하려 했을 것이란 얘기가 나온 데는 이런 배경이 깔려있을 것이란 분석이 제기된다. 후계자 낙점 과정에서 김정남과 ‘평양판 형제의 난(亂)’으로 불린 갈등을 빚은 김정은 제1위원장이 두 사람 사이의 이런 관계를 의심한 것도 극단적인 결정을 한 이유일 수 있다는 얘기다. 정보 관계자는 “장성택은 스위스에서 유학한 김정은과 정철·여정(김정은의 친형과 여동생)과도 가까운 편이었다”고 말했다. 김정은도 고모 김경희뿐 아니라 장성택과도 친밀한 통화를 할 정도였다는 것이다.

 2008년 여름 김정일 위원장이 뇌졸중으로 쓰러졌을 때 한·미 정보 당국은 대북정보망을 풀가동했다. 그때 흥미로운 감청이 이뤄졌다. 김정일의 병실을 지키는 책임부관에게 고위인사로 추정되는 인물이 전화로 나지막이 “장군님(김정일을 지칭) 자나, 아주 자나?”라고 물은 것이다. 정보 당국은 대화에 담긴 의미를 면밀히 분석한 결과 ‘아주 자나’라는 표현이 식물인간 상태나 죽음을 의미할 수 있다고 결론 내렸다. 김정일의 병세가 위중한 상태임을 감지했던 것이다. 이 같은 대북감청의 경우 한·미 연합으로 경기도 성남 지역에 운용 중인 ‘제777부대’(일명 쓰리세븐)가 주역을 맡고 있다. 양측이 공동 근무하는 시스템의 이 부대의 책임자는 한국군 소장이 맡는다.

 미 첩보위성 KH-12(일명 키홀) 등을 활용한 북한 영상정보도 요긴하다. 과거 북한 영변 원자로의 연기 포착이나 주요 시설의 신축·리모델링 등을 잡아내는 것은 이민트(IMINT·영상정보)의 몫이었다. 김정은 전용열차나 승용차를 추적·촬영하는 것도 위성이 놓치지 말아야 할 일이다. 김정일과 달리 김정은은 집권 이후 주로 열차보다 차량 이동이 많아 추적에 애를 먹고 있다고 한다. 대북정보 관계자는 “김정은이 서해 섬 방어대를 방문하기 위해 작은 목선을 타고 움직였다고 선전하지만 우린 북한군 서해함대사령부에 들른 뒤 부두에서 함정에 올라 섬 가까이에서 작은 배로 옮겨 타는 쇼를 벌인 걸 손바닥처럼 들여다보고 있다”고 말했다. 당국은 김정은의 대남 위협이 계속된 지난봄 그의 동선을 속속들이 촬영한 위성사진을 언론에 공개해 그를 위축시키는 방안도 검토했다고 한다.

 북한 정세를 파악하는 데는 휴민트(HUMINT)망도 가동된다. 인적 네트워크를 통한 정보수집 수단인 휴민트는 직접 정보요원이 현장에 투입되거나 협조자를 통해 관련 정보를 수집하는 것을 말한다. 김정일 건강이상 당시 청와대 인사가 “혼자 양치질은 할 수 있을 정도”라고 언급했다 논란을 빚은 건 대표적 사례다. 양치질 상황까지 파악한다는 건 김정은 지근거리에 휴민트가 가동되고 있다는 걸 드러낸 것으로 자칫 대북정보망의 붕괴를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가 쏟아졌다. 정부 당국자는 “관련 정보를 제공한 미국 측 정보기관에서도 강한 항의가 들어왔고 우리 내부에서도 부적절한 언급이었다는 판단이 내려졌다”고 말했다.

 북한에서 탈출한 고위 망명인사를 잡기 위한 관련국들의 정보전도 치열하게 벌어진다. 최근 장성택 처형 사태를 계기로 중국 등지에 그의 측근 세력이 줄줄이 망명 신청을 했다는 설이 제기되면서 경쟁이 달아올랐다. 핵 개발 관련 정보를 들고나왔다는 얘기까지 나돌며 관심은 증폭됐다. 우리 정부 당국은 언론보도에 대해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부인하고 나섰다. 하지만 실체가 드러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란 지적이다. 이집트 주재 장승길 북한대사와 그 동생인 장승호 프랑스 주재 경제참사관의 1997년 미국 망명에서 볼 수 있듯이 핵심 정보를 쥔 ‘영양가 있는’ 고위 인사의 경우 한국이 개입할 여지가 좁은 편이란 점에서다. 전직 정보 당국 간부는 “북한의 대(對)중동 미사일 판매 정보를 쥐고 있던 장 대사 형제의 경우 초기부터 미 중앙정보국(CIA)이 직접 개입해 데려갔다”고 말했다. 미국이나 유럽으로 망명한 고영희의 여동생 영숙씨 부부, 성혜림의 언니 혜랑씨와 딸 남옥의 경우도 로열패밀리 내부의 고급정보를 지닌 인물로 평가된다.

1990년대 북핵 의심 지역서 흙 가져와

 경우에 따라서는 직접 대북침투를 하는 경우도 있다. 북한의 핵 개발에 대한 우려가 본격화하기 시작한 1990년대 말 우리 군 정보기관 요원들이 북한의 ○○지역 핵 의심 시설에 접근해 토양을 채취해왔다. 한·미 당국의 정밀 조사 결과 방사능이 검출되는 등 증거가 확보돼 새로운 핵 시설로 ‘시인’(첩보가 믿을 만한 정보로 확인됐다는 의미의 정보용어)됐다. 당시 이들 요원에게 훈장을 수여하기 위해 총리실에 제출된 공적 조서에 내용이 기재되지 않아 이유를 알지 못하는 실무자들은 고개를 갸웃거린 일도 벌어졌다.

 북한 신의주와 마주한 중국 단둥이나 동북 3성 지방, 베이징 등도 대북정보 수집을 위한 우리 정보요원들의 주요 활동 무대다. 탈북자뿐 아니라 중국을 오가는 북한 고위인사와 무역업체 일꾼(북한에선 간부라는 의미) 등이 흘리는 정보를 탐지하기 위해서다. 이런 정보전의 세계에서는 미인계를 동원한 휴민트망도 종종 가동된다. 네덜란드 출신의 ‘마타하리’(본명 마그레타 젤러)는 제1차 세계대전 때 독일과 프랑스 사이를 오가며 스파이 활동을 한 인물로 지금까지 여성 스파이의 대명사로 남아 있다. 한 관계자는 “해외 근무 정보요원들의 경우 가장 무서운 게 여자와 술”이라며 “북한판 마타하리에 당해 정보원을 노출당하고 서울로 소환돼 옷을 벗은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북한 측에 신원이 드러나 위해를 당하거나 납북되는 경우도 있다. 98년 3월에는 단둥 인삼공사 지사장으로 위장 근무하며 대북정보 수집활동을 벌이던 정보사령부 소속 정모 중령이 북한으로 납치됐다 6개월 만에 풀려난 사건이 있었다. 북한이 그에게 이중간첩 임무를 준 사실도 집중신문을 통해 드러났다. 김대중정부는 북한과의 관계를 위해 이 사건을 공개하지 않고 비밀에 부쳤고 군 내부에서는 볼멘소리가 나왔다. 그 시기 남북 간에 베이징과 북·중 국경지역을 무대로 정보전과 충돌이 잦자 중국 공안 당국은 칼을 빼들었다. 선양 주재 대한항공 부지점장 직책으로 나가 있던 국가정보원 간부와 수십 명의 우리 정보요원을 동시에 체포한 뒤 한국으로 강제 송환한 것이다.

 평양의 권력 핵심부에 우리 국정원이나 미국 CIA 등의 정보 협조망이 얼마나 뻗쳐 있는지는 드러나지 않고 있다. 북한 체제의 특성상 철저한 감시체계가 가동되고 있고, 김정은을 비롯한 로열패밀리에 대한 접근은 차단돼 있다. 하지만 정보 관계자는 “극히 제한된 숫자겠지만 누군가 움직이고 있다고 봐야 한다”며 “매우 뜻밖의 인물일 수 있다”고 말했다. 동·서독 냉전 과정에서도 ‘의외의 인물’이 간첩으로 드러난 사례가 있다. 서독 총리였던 빌리 브란트의 비서인 귄터 기욤이다. 그의 스파이 혐의는 귄터 놀라우 헌법보호청장이 1973년 5월 내무장관이던 겐셔에게 기욤이 간첩용의자라고 처음 보고하면서 드러났다. 기욤의 부인 크리스텔도 스파이임이 밝혀졌다.

 장성택 사태의 충격파가 가라앉지 않고 있는 가운데 대북정보망을 확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국정원은 지난 3일 국회 정보위에 ‘장성택 실각 가능성’을 보고함으로써 대북감시망의 촉수가 살아있음을 과시했다. 하지만 숙청과 공포정치로 인한 김정은 체제의 동요나 북한 급변사태 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한 변신이 요구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염돈재 성균관대 국가전략대학원장은 19일 열린 국가정보학회 주최 세미나에서 “동북아 정세의 격동과 북한의 불안정성 증가로 국가 정보 역량 강화가 무엇보다 중요한 시기”라며 “국회의 국정원 개혁 논의가 제대로 방향을 잡아 하루빨리 정보업무 효율화를 위한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앙일보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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