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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아이들에겐 이 낙타가 산타

[기타] | 발행시간: 2014.01.04일 11:25

2013년 11월8일 에티오피아 소말리주 아프담 구역의 기초교육센터인 ‘루키스쿨’에서 책이 담긴 나무상자를 실은 낙타가 아이들을 향해 걸어오고 있다. 국제 구호개발 엔지오 ‘세이브더칠드런’은 책을 접하기 힘든 이 지역 유목민 아이들을 위해 마을마다 다니며 책을 빌려주는 낙타도서관을 운영하고 있다. 아프담/이유주현 기자 edigna@hani.co.kr

[한겨레] [2014년 기획] 분쟁의 땅, 희망의 교실

① 소말리 유목민들을 위한 낙타도서관

어른들의 탐욕과 이기심이 횡행하는 분쟁의 땅에서 아이들의 손에 AK-47이나 M-16 소총이 아니라 책과 연필을 쥐여줄 수 있을까. 무력충돌과 내전으로 고통받아온 나라들이 교육을 통해 평화와 우애, 희망의 싹을 키워갈 수 있을까. <한겨레>는 이 질문을 안고 국제구호개발 엔지오 세이브더칠드런과 함께 에티오피아, 라이베리아, 네팔을 찾아갔다. 기근, 쿠데타, 종족간 분쟁, 이웃국가들과의 전쟁으로 힘겨운 길을 걸어온 에티오피아에서도 가장 소외된 소말리주에선 낙타들이 책을 싣고 어린이들을 만나러 간다. 작은 희망은 이렇게 아프리카의 들판에서 퍼져나간다.

덤불과 키 낮은 풀만 자라는 마른땅에 낙타 방울 소리가 들린다. 천막 그늘 아래 놓인 커다란 나무상자에서 아이들이 책을 꺼내들었다. 한달 동안 책을 보지 못했던 아이들은 ‘허겁지겁’ 책장을 넘긴다.

지난해 11월8일 에티오피아 동부 소말리주 아프담 구역 시골 마을에 자리잡은 ‘루키스쿨’엔 책을 가득 실은 4개의 나무상자가 낙타 등에 실려 도착했다. ‘낙타도서관’이 학교에 온 거다. 낙타도서관은 국제 구호개발 엔지오 ‘세이브더칠드런’이 2011년부터 매년 1억9000만원을 들여 진행중인 프로그램이다.

에티오피아 소말리주 외딴마을

책 싣고 찾아오는 ‘낙타 도서관’

배움에 목마른 아이들에 ‘단비’

소말리주 대부분이 그렇듯,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동쪽으로 340㎞ 떨어진 아프담 구역은 강우량이 적어 농사짓기가 어려운 곳이다. 소말리주에 사는 445만여명 중 85%가 소·염소·양·낙타 등을 데리고 물을 찾아 떠도는 유목 생활을 한다. 우기엔 한 마을에 정착해 살지만 건기엔 물을 찾아 떠나야 한다. 자연히 아이들 대부분이 학교 수업을 받기 힘들다. 세이브더칠드런은 이런 아이들을 위해 소말리어·영어·수학·과학 등을 가르치는 대안기초교육센터(ABE)를 만들었다.

초등학교 1~3학년 과정밖에 없지만, 등하교에만 네다섯시간 걸리던 외딴 마을 아이들에겐 30분~1시간가량 걸으면 도착할 수 있는 기초교육센터가 편리하기 그지없다. 루키스쿨도 아프담 구역에 있는 55개 기초교육센터 중 하나다. 세이브더칠드런은 책 구경조차 힘든 유목민 어린이들을 위해 이런 기초교육센터가 있는 마을을 거점 삼아 낙타로 이동하는 ‘움직이는 도서관’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현재 낙타도서관은 아프담을 비롯해 인근 메이소 구역까지 7개(낙타 21마리)가 운영되고 있으며 기초교육센터가 있는 동네 40곳을 돌아다닌다.

낙타도서관은 낙타 3마리와 낙타 몰이꾼, 사서 1명이 팀을 이룬다. 이들은 황량한 벌판을 하루에 5~10㎞씩, 며칠을 걸어 곳곳에 흩어져 있는 마을을 방문한다.

‘눈먼 양’ 동화 읽은 아이들 ‘까막눈’ 엄마에 재잘재잘

낙타가 마을에 도착하면 사서는 아이들과 어울려 책을 읽어주고, 적당한 책을 골라준다. 때로는 인기있는 책을 놓고 서로 먼저 읽으려고 다투는 아이들을 ‘중재’한다. 마을 주민 가운데 사서로 뽑힌 이들은 도서관 일을 맡기 위해 아이들에게 재미있게 책 읽어주는 방법, 놀아주는 방법 등을 교육받았다. 낙타도서관 팀은 한 마을에 도착하면 사흘가량 머무른 뒤 그다음 마을로 떠난다. 연간 1억9000만원이 들어가는 이 프로그램에는 한 마리에 1만5000~2만비르(82만~110만원 정도)인 낙타 구입비, 사서 교육비와 월급, 낙타 몰이꾼 고용비와 도서 구입·출판 비용 등이 포함돼 있다.

요즘 이 지역 어린이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책은 소말리족 사이에 입에서 입으로 전승되던 <눈먼 양>이라는 동화다. 무리에서 떨어져 고립된 ‘눈먼 양’ 한 마리가 눈이 안 보이는 덕분에 용감하게 하이에나를 물리쳤다는 이야기다. 소말리족들은 아기가 태어나면 그 아이 몫으로 가축들을 할당한다. 꼬마 시절부터 자기 소유의 양, 염소 같은 가축을 기르는 아이들이라서 그런지 동물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3학년 여자 어린이인 무미나 아소웨 오스만(14)도 <눈먼 양>을 가장 좋아한다고 했다. 큰 키에 팔다리가 긴 소말리족답게 무미나 역시 키가 170㎝에 가깝다. 다 큰 듯해도 아직 어린아이다. 학교가 끝나면 얼른 집에 가 염소를 돌보고 엄마를 도와 식사 준비를 해야 하지만, 낙타도서관이 도착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을 읽는다. 루키스쿨을 졸업하면 정규학교에 편입해 4학년 과정에 들어가고 싶지만, 가능할지 알 수 없다. 그는 지금도 건기가 되면 거의 결석을 할 수밖에 없다.

책 실은 낙타 동네 40곳 돌아다녀

낙타 3마리·몰이꾼·사서 1명 한 팀

한해 운영비만 1억9000만원 들어

환경 열악해도 교육 관심·열정 높아

엄마 마이 “나는 책을 못 읽지만

아이들이 들려준 책 이야기 즐거워”

반짝반짝 빛나는 눈을 가진 2학년 학생 아흐마드 이세 아브디(14)의 장난기 가득한 얼굴엔 ‘개구쟁이’라고 씌어 있는 듯하다. 낙타도서관에선 사서 선생님이 동화를 들려주기도 하지만, 글을 잘 읽는 아이가 책읽기에 서툰 친구들을 가르쳐준다. 아흐마드도 친구들에게 책을 읽어주곤 한다. 아흐마드는 <겁 많은 남자>라는 책이 마음에 든다. 꾀죄죄한 몰골에 수줍고 소심해 놀림받던 한 소말리 청년이 맹수를 만나자 현명하게 대처해 마을 사람들을 구했다는 줄거리다. 주인공만 다르지 <겁 많은 남자>는 <눈먼 양>과 구조가 비슷해 보인다.

소말리 어린이들이 약하고 무시받던 인물들이 뜻밖에 승리를 거둔다는 얘기를 좋아하는 것은, 어쩌면 소말리족의 비극적 역사와 관련돼 있을지 모른다. 소말리 사람들은 제국주의에 의해 이산가족이 돼버린 아픔을 겪었다. 소말리족들은 중앙정부는 없었지만 다수의 부족집단이 끈끈한 공동체 의식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19세기 말~20세기 초 영국·프랑스·이탈리아·에티오피아 4개국에 의해 찢어져버렸다. 1960년 소말리아 민주공화국 수립 이후에도 소말리인들은 통합되지 못하고 케냐·에티오피아·지부티 등으로 흩어져 살고 있다. 이들은 1950년대 이후 재통합 운동을 벌였으나 분쟁과 가난의 피폐한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소말리인들의 교육에 대한 관심과 열정은 높다. 세이브더칠드런에서 소말리주의 기초교육센터들을 관장하는 시멜리스 솔로몬은 루키스쿨 뒤편에 있는 낮은 둔덕에 올라 이 학교의 연원을 설명했다. 현재 121명의 아이들이 등록돼 있는 루키스쿨은 2008년 마을 사람들이 스스로 나무 기둥에 천막을 씌워 만든 곳이다. 3년 뒤인 2011년에 현재의 건물 두 채가 지어졌다. 이 가운데 흙으로 만들어진 교실은 마을 사람들이 직접 지었고, 시멘트 건물의 경우엔 재료비만 지방정부와 세이브더칠드런으로부터 후원받고 공사는 모두 마을 어른들이 담당했다.

루키스쿨을 찾은 이날도, 아이들을 이곳에 보내는 학부형 18명이 운동장 나무 그늘 밑에 앉아 기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낙타도서관과 기초교육센터가 어떻게 자신들의 삶을 바꿔놓았는지 설명하기 위해서다. 아이 4명 중 2명을 루키스쿨에 보내고 있는 마이 다네 푸리(43)는 “내가 어릴 적엔 배울 기회가 전혀 없었다”며 “공짜로 아이들이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돼 너무 좋다”며 고마워했다. 그는 이어 “소말리어로 된 책이 있어 소말리족에게서 전래되는 이야기를 아이들이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다종족 국가인 에티오피아는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종족마다 고유 언어로 교육을 받도록 했다. 이 때문에 세이브더칠드런도 소말리주 교육청과 함께 소말리어로 된 23종의 책과 4권의 동요집, 30가지의 소책자를 만들었다.

루키스쿨에서 4명의 자녀가 공부하고 있는 하산 하레드(40)는 “나도 가끔씩 낙타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는다. 소말리어로 쓰인 책을 보니 반갑다”고 말했다. 글을 모른다는 마이는 “나는 책을 읽을 수 없기 때문에 아이들과 가축을 돌보러 들판에 나갔을 때 아이들이 책에서 읽은 이야기를 들려주면 참 즐겁다”며 “만약 학교에 전기가 들어온다면 나처럼 배우지 못한 어른들도 밤에 와서 공부할 수 있을 텐데 발전기가 없어 아쉽다”고 말했다.

학교에 온 어른들 중 가장 나이가 많은 겔레 가부드(60)는 8명의 아이들 중 2명을 루키스쿨에서 공부시키고 있다. 그는 소말리 속담을 인용해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했다. “귀먹은 양은 가뭄이 왔는지, 전쟁이 벌어졌는지 전혀 구별할 수 없다. 읽고 쓸 줄 모르는 우리가 바로 귀먹은 양이다. 까막눈이니 어쩌면 우리는 눈까지 멀었는지 모른다.”

이들은 여건만 닿는다면 아이들이 기초교육센터를 졸업하고 난 뒤 정규학교에도 보내고 나중엔 대학까지 진학시키고 싶다고 말했다. 저개발국가에선 남녀에 따라 교육 편차가 심하다고 하는데, 딸들도 계속 공부를 시키고 싶으냐고 물었다가 머쓱해졌다. 어른들은 반문했다. “당신이나 우리 딸이나 다른 게 뭐가 있느냐. 우리도 딸들이 계속 공부할 수 있길 바란다.”

아프담/이유주현 기자 edigna@hani.co.kr

2013년 11월8일 에티오피아 소말리주 아프담 구역의 ‘루키스쿨’ 학생들이 책을 싣고 올 낙타를 기다리고 있다. 도로 사정이 좋지 않은 사막 지대인 소말리주에선 낙타로 책을 운반하는 이동식 도서관이 운영되고 있다. 아프담/이유주현 기자 edigna@hani.co.kr

바람 잘 날 없는 에티오피아

아프리카서 가장 오래된 독립국가… 이웃국가와의 분쟁·기근 등 시달려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오래된 독립국가다. 1930년대 이탈리아가 지배했던 8년을 제외하곤 줄곧 독립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에리트리아·소말리아 등 이웃국가들과의 분쟁, 쿠데타, 종족분쟁, 내란, 기근과 가뭄, 사막화, 식량부족 등으로 바람 잘 날이 없었다.

왕정국가였던 에티오피아는 1974년 마르크스주의를 표방하는 타파리 벤티 장군의 쿠데타로 내전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3년 뒤 다시 무력으로 권력을 잡은 소장파 군인 멩기스투 하일레 마리암 대령은 수천명의 정적을 살해하고 집단농장, 산업 국유화 등 급진적 정책을 실시했다.

그 와중에 북부 티그레이에선 독립을 주장하는 봉기가 일어났고, 1977년엔 에티오피아 내 소말리족 거주 지역을 병합하길 원했던 소말리아가 동쪽 국경을 넘어왔다. 소말리아와 에티오피아는 1988년에야 평화협정에 서명했다. 1973년, 1984년엔 참혹한 대기근이 발생해 수백만명이 숨졌다.

1991년 멜레스 제나위가 이끄는 에티오피아인민혁명전선(EPRDF)이 수도 아디스아바바를 점령하면서 멩기스투 대통령은 망명길에 올랐다. 이후 에티오피아는 1993년 분리독립한 에리트리아와 지루한 분쟁에 돌입했다. 1998년 국경선을 놓고 무력충돌한 두 나라는 2000년 유엔의 중재로 정전협정을 맺었으나 분쟁의 잔불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에티오피아는 2011년에도 에리트리아 정부를 무너뜨리기 위해 반군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분리독립을 원하는 종족들의 봉기도 벌어졌다. 2004년엔 서부의 고립된 지역인 감벨라의 종족들이 자치를 요구하며 들고 일어나 200여명이 숨지고 수만여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소말리주의 오가덴 지역을 거점으로 독립을 주장하며 싸우는‘오가덴민족해방전선(ONLF)’은 2009년 정부군과 격전을 벌이며 동부 일부를 점령하기도 했다.

이유주현 기자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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