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의 한계는 이미지와 육성이 주는 감정까지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킥오프>가 제공하는 [生生영상]은 그라운드 안팎에서 벌어지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전달한다. 우리가 주목하는 이들의 말과 행동에 담긴 뉘앙스를 독자 여러분들이 직접 판단하길 바란다.
지난 2월 초, 터키에서 한창 전지훈련 중이던 황선홍 감독은 한국에서 들려온 소식에 당황했다. 세 아이(2남 1녀) 중 첫째인 장녀 현진이 걸그룹으로 데뷔를 한다는 보도가 나온 것이다. 올해 만 21세인 황현진은 예아(Ye.A)라는 이름의 걸그룹에 소속됐으면 현재 리더로 데뷔를 위해 준비 중임이 소속사 보도자료를 통해 발표됐다. 샤이니의 민호(전 대전시티즌 최윤겸 감독 차남), 애프터스쿨 유이(넥센히어로즈 김성갑 2군 감독 장녀)에 이은 스포츠인 자녀의 연예인 데뷔에 대중의 관심이 모였다.
걸그룹 예아(Ye.A) 소속으로 데뷔를 앞둔 황선홍 감독의 장녀 황현진(사진=키로와이그룹)
그러나 아버지인 황선홍 감독의 반응은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다. 포항 구단 관계자는 “팀에 집중해야 하는 시기에 가족에 대한 보도가 나와 예민한 모습이었다. 구단에서도 궁금했는데 선뜻 물어볼 수 없었다”고 말했다. 황선홍 감독은 지난 20일 <킥오프>와 가진 인터뷰에서 처음으로 딸의 연예인 데뷔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그는 “처음엔 몰랐다. 미국에서 유학 중이었는데 방학 때 한국에 와서 몰래 오디션을 보고 합격했던 모양이다”라며 당황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했다.
황선홍 감독은 연예인이 되겠다는 딸에게 확고한 반대 입장을 밝혔다고 말했다. “나도 아내도 얘길 듣고 강력하게 반대했다.” 이유는 자신의 기억 때문이었다. 90년대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대중에게 크게 노출됐던 만큼 비난의 강도도 거셌다. 대표팀 경기에서 조금만 부진하면 난리가 났다. 월드컵에서 기회를 놓쳤단 이유로, A매치에서 페널티킥을 놓쳤단 이유로 ‘역적 황선홍’으로 불렸던 그였다. “대중에게 노출되는 게 어떤 의미인지 내가 누구보다 잘 안다. 그 악플을 어떻게 견디려고… 내 딸이 그런 상황을 맞는 걸 절대 원하지 않았다”는 게 황선홍 감독이 반대한 가장 큰 이유였다.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었다. 현진 양이 “이 일을 해보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후회할 것 같다”는 말에 황선홍 감독은 수락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여기엔 아픈 이야기가 있다. 현진 양의 동생이자 황선홍 감독의 장남인 황재훈 군의 이야기다.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은 재훈 군은 작년까지 축구명문인 풍생중학교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하지만 무릎 십자인대가 파열되는 큰 부상을 입었다. 황선홍 감독은 당장 선수 생활을 그만두게 했다. “아들이 좋은 선수로 성장하길 바라는 욕심이 있었다. 그런데 현역 시절 내가 당했던 부상을 재훈이도 당했다. 십자인대를 다치면 선수 생활 내내 고통스러운 재활과 보강 훈련을 해야 한다. 그 고통을 내가 아니까 그만두게 했다”며 이유를 설명했다.
자신의 트라우마 때문에 자식의 꿈을 멈추게 하는 상황은 아버지로선 고통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지난해 K리그 클래식과 FA컵 우승의 2관왕으로 최고 감독의 자리에 올랐지만 황선홍 감독에겐 말 못할 아픔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자신의 소원을 위해 몰래 오디션까지 봤던 딸의 고생을 모른 척 하고 자신의 척도만 댈 수 없었다. 결국 황선홍 감독은 절대 반대에서 한발 물러나 딸의 도전을 지켜보기로 했다.
딸의 연예인 데뷔 소식에 당황스러웠다는 황선홍 감독 (사진=킥오프)
“나와 아내에겐 없는 끼가 딸에게 있다. 어렸을 때부터 남들 앞에 나서서 춤 추고 노래하는 걸 좋아했다”며 황선홍 감독은 지금의 상황을 어느 정도 예견했다는 것도 인정했다. 그는 “딸이 속한 그룹이 가요프로그램 1위를 했으면 좋겠냐”는 질문에 “아빠의 심정으로선 응원은 한다. 경험이라고 보지, 그게 직업이 될 거라곤 보지 않는다. 그래도 본인이 지닌 자질과 노력으로 엔터테이너로 성공을 한다면 그 길로 가는 건 막을 순 없다. 내가 도울 일은 없을 거다. 나는 영향력도 없고, 가는 길도 다르다. 성인인 만큼 자신의 결정에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고 답했다. 포항 구단이 홈 경기에 초청하겠다며 어쩌겠냐고 하자 “내가 절대 하지 말라고 할 것이다”라며 현진 양이 스스로의 힘으로 성공하기 바랐다.
황선홍의 딸이 아닌 가수 황현진으로 딸이 성공하길 바라는 아버지의 마음 (사진=연합뉴스)
지난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미국전에서 아빠가 경기 중 부상을 당하자 “축구하지마”라고 울먹이며 국민들을 가슴 아프게 했던 아홉살 소녀는 이제 성인이 됐고 걸그룹이라는 새로운 도전 앞에 섰다. 딸의 성공을 바라지만 자신은 나설 수 없다는 황선홍 감독의 마음은 ‘황선홍의 딸’이 아닌 ‘연예인 황현진’ 그 자체로 인정받길 바라는 곧은 부정(父情)이었다.
포항=서호정 기자
영상편집=박상진
서호정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