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 주머니에서 여자 아이 머리핀이 나왔잖아요. 범인 아닐까요?” “그것보다 학교 앞 문방구 주인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어요.” 밤 11시. 드라마 시청자 게시판과 각종 커뮤니티에선 이 같은 말이 오간다. 드라마가 끝나면 활발해지는 시청자들의 ‘범인 찾기’ 게임. 장면 하나하나를 뜯어보면서 이들은 퍼즐을 맞춰간다.
◇범인을 둘러싼 제작진과 시청자의 두뇌 싸움=요즘 방송되는 드라마에는 유독 범인과 이를 쫓는 주인공의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추리’ ‘스릴러’ ‘미스터리’ 등 이들 드라마에 붙는 수식어들은 대중의 관심을 단번에 끌어들이기 충분하다. 과거 넘쳐나던 로맨틱 코미디 장르는 현재 지상파 3사 월화·수목극 중 단 한 편, MBC 수목극 ‘앙큼한 돌싱녀’ 뿐이다.
그 선봉엔 SBS 월화드라마 ‘신의 선물-14일’이 있다. 자신의 딸 샛별(김유빈)을 납치한 범인을 찾아가는 엄마 김수현(이보영)의 이야기가 담긴 작품. 운명을 거슬러 14일 전으로 돌아가는 기회를 잡은 김수현이 기억에 의존해 딸의 납치범을 추적해간다.
‘신의 선물…’의 이동훈 PD는 지난달 27일 서울 양천구 목동서로 SBS에서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연기자들에게도 대본을 미리 주지 않는다”며 “등장인물 모두가 용의자 선상에 있고 제작진이 펼쳐 놓은 게임 속에서 배우들이 들어가 움직이고 있는 것”이라고 연출 배경을 털어놨다. 시청자는 물론, 배우들에게까지 범인과 결말을 꽁꽁 숨겨두고 만들어야 작품의 완성도가 높아지고 재미가 배가된다는 것. 제작진은 탐정이 된 시청자들의 예상을 빗겨가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있다.
이외에도 각 방송사에는 ‘추리’를 포맷으로 한 드라마가 여럿 방영되고 있다. SBS 수목드라마 ‘쓰리데이즈’는 세 발의 총성과 함께 사라진 대통령과 그를 겨눈 범인의 이야기가 담긴다. 주인공인 청와대 경호관 한태경(박유천)은 대통령을 노리는 거대 실체와 맞서 수사를 펼친다. 또 KBS 월화극 ‘태양은 가득히’에선 자신에게 살인자 혐의를 덮어씌운 범인을 찾아 나서는 이야기가, 케이블 채널 OCN에선 귀신을 보는 형사가 범인을 찾아가는 드라마 ‘처용’이 매주 일요일 밤 11시 방송중이다.
여기에 다음 달 방송 예정인 tvN 금토드라마 ‘갑동이’도 합세한다. 범죄 수사 드라마를 표방하는 이 작품은 1986년부터 5년간 이어진 경기도 화성연쇄살인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배우 윤상현, 성동일, 김민정 등이 출연한다.
◇작품 다양성은 환영…중장년층 공감받긴 쉽지 않을 것=시청자들은 그간 미국 드라마, 영국 드라마 등을 통해 이 같은 추리게임을 해왔다. 지난 1월 KBS에서 방영돼 화제가 된 영국 드라마 ‘셜록 시즌 3’가 대표적인 예. 일요일 밤 12시, 더빙판으로 방영된 이 드라마는 최고 시청률 3.8%(닐슨코리아 기준)를 기록하며 인기를 끌었다. 기존의 로맨틱, 가족 장르를 넘어 한국 시청자들도 다양한 장르의 드라마를 원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전문가들은 그간 드라마 ‘싸인’(2012)과 ‘유령’(2013) 등을 통해 장르극 작가로는 독보적 위치에 오른 김은희 작가와 미국으로 포맷이 수출돼 리메이크를 앞둔 드라마 ‘나인’(2013)의 송재정 작가의 실험이 빛을 발했다고 평한다. 그들의 끊임없는 시도가 지금의 ‘장르극 전성시대’를 만들게 됐다는 것.
윤석진 충남대 국문학과 교수는 “그간 장르극이란 이름을 달고도 주인공의 멜로라인이 들어가는 혼합장르극이 많았지만 최근엔 장르극의 정체성을 살린 작품들이 나오고 있다”며 “시청률에 연연하지 않고 다양한 장르에 도전, 질을 높이려는 시도는 환영할 만하다”고 말했다.
반면 정석희 대중문화평론가는 “장르 드라마는 모든 회차를 보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며 “이 때문에 다시보기 서비스, 인터넷 시청을 즐기는 젊은층의 인기를 끌 순 있지만 TV 앞의 중장년층까지 끌어들이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미나 기자 mina@kmib.co.kr
국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