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룡강신문=하얼빈) 중앙기록보관소는 7일 일본 전범 나가시마 츠토무(長島勤)의 중국 침략 사실에 관한 친필 자백서 요약 내용을 공개했다.
나가시마 츠토무가 1955년 5월에 쓴 친필 기록에 따르면 그는 1888년 일본 사이타마 현에서 출생했고, 1938년 12월 중국으로 건너 가 화중(華中)파견군 특무부 부원으로 활동했으며, 1942년 4월 일본 육군 59사단 54여단장을 역임, 1943년 6월~1945년 4월에 지난(濟南)방위사령관을 겸임한 후 1945년 8월 22일에 조선 함흥에서 소련군에 의해 체포됐다.
중요한 범죄 내용:
1942년 5월~6월 산둥(山東)에서 부대를 지휘해 ‘타이안(泰安), 라이우(萊蕪) 멍인(蒙陰) 작전’에 참가해 항일 군인 40명과 민간인 20명을 살해하고 민가 100여 채를 불태웠다.
1943년 5월 중순 부대를 지휘해 ‘루중(魯中, 산둥 중부) 작전’에 참가해 항일 군인 130명과 민간인 20명을 살해하고 항일 군인 380명을 체포했으며 민가 20여 채를 불태웠다.
1943년 6월 부대를 지휘해 ‘둥린다오(東臨道, 오늘날 랴오청현(聊城縣)의 북쪽 지역) 작전’에 참가해 항일 군인 60명, 민간인 30명, 포로 250명을 살해했다.
1943년 7월~8월 부대를 지휘해 ‘난타이항(南太行) 작전’에 참가해 항일 군인 40명과 민간인 30명을 살해하고 포로 30명을 체포했다.
1943년 9월 부대를 지휘해 ‘싼쟈오탕(三敎堂, 오늘날의 위청(禹城), 지양(濟陽), 린이(臨邑)) 작전’에 참가해 항일 군인 60명과 민간인 10여 명을 살해했다.
1943년 11월 중순~12월 상순 부대를 지휘해 ‘루중•루베이(魯中•魯北, 산둥 중부•동부) 작전’에 참가해 항일 군인 30여 명과 민간인 10여 명을 살해하고 군영 2곳과 민가 300여 채를 불태웠으며 식량 300톤을 약탈했다.
1944년 3월~4월 부대를 지휘해 ‘초공(剿共, 공산당 토벌) 작전’에 참가해 항일 군인 210명과 민간인 70명을 살해하고 민가 300채를 불태웠다.
1944년 6월~7월 부대를 지휘해 ‘산둥(山東) 작전’에 참가해 항일 군인 270명과 민간인 160명을 살해하고 보리 5700톤을 약탈했다.
1944년 8월~9월 부대를 지휘해 ‘산둥(山東) 작전’에 참가해 항일 군인 120명과 민간인 70명을 살해하고 민간인 250명을 체포했으며 땅콩기름 1000여 통을 약탈했다.
1944년 9월~12월 부대를 지휘해 ‘산둥(山東) 작전’에 참가해 항일 군인 190명과 민간인 110명을 살해하고 민가 200여 채를 불태웠다.
1945년 1월~3월 부대를 지휘해 ‘산둥(山東) 작전’에 참가해 항일 군인 410명과 민간인 230명을 살해하고 민가 300여 채를 불태웠다.
1945년 5월 부대를 지휘해 ‘슈링(秀嶺)1호 작전’에 참가해 항일 군인 80명과 민간인 210명을 살해하고 민가 1000여 채를 불태웠다.
1942년 4월~1945년 7월 토벌 작전을 15차례 실시한 결과 항일 군인 1660명과 민간인 970명을 살해하고, 민가 2220여 채를 불태웠으며, 항일 군인 970명과 민간인 250명을 체포하고, 식량 6000톤을 약탈했으며, 민간인을 12만 인일(人日, 1인의 하루 노동량) 강제 노역을 시켰다. “전투 시 학살한 방법은 총살 외에도 자살(刺殺), 참살, 참수, 폭파, 화재, 교살, 독가스에 의한 학살 등 극도로 잔인한 수단을 동원했고 포로도 자주 살해했다. 1945년 2월 상순 111대대는 나의 명령에 따라 둥아현(東阿縣) 마자하이쯔(馬家海子)에서 부상병 포로 7명을 자살(刺殺)했다. 1942년 7월 110대대는 라이우현 주딩산(九頂山)에서 민간인 노인과 어린이 15명을 독가스로 살해했다.”
출처: 인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