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배인선 기자) 지난 3월 말 중국 국무원이 원저우(溫州)를 ‘금융개혁 시범구’로 지정했다. 향후 이곳에서 사채시장을 양성화해 민간금융을 활성화하고 개인의 해외직접 투자를 허용하는 금융 개혁 조치가 시행될 예정이다. 그 동안 ‘제조업1번지’로 불려왔던 원저우가 향후 중국 ‘금융1번지’로 새롭게 탈바꿈할 전망이다.
특히 이번 조치는 지난 해 8월부터 중소기업 줄도산, 고리대금업 폐해 등 문제로 원저우 경제 위기가 이슈화되면서 10월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직접 원저우 시찰에 나서 금융개혁을 강조한지 단 5개월 만에 발표됐다. 원저우로서는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원저우가 금융개혁 시범구로 선정된 것은 바로 이곳이 중국 내 민간자본이 가장 발달한 곳이기 때문.
지난 80년대 중국 개혁개방의 바람을 타고 원저우에서는 개인들이 왕성한 기업활동을 벌이며 민간경제가 활황을 띠었다. 예로부터 상술이 뛰어나 ‘중국의 유태인’으로 불린 원저우 상인들은 자연스럽게 부를 축적했다. 이들은 중국 부동산과 탄광, 고리대금은 물론이고 해외 부동산 사냥에도 나서는 등 돈이 되는 곳엔 어디든지 투자를 했다.
특히 원저우는 예로부터 가족 친지에게 돈을 빌려 사업하는 관행이 발달해 민간경제 활황과 함께 사채시장도 발달했다. 원저우 사채시장 규모는 현재 중국 최대 수준이다. 통계에 따르면 현재 원저우 사채시장 규모는 1100억 위안. 중국 전체 사채시장의 30%를 차지하고 있다. 원저우 주민의 80%가 사채시장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돼 있으며, 정부 관리들도 모두 사채시장에 손을 뻗고 있다.
문제는 금융위기 발발로 경제가 침체되면서 발생하기 시작했다. 투자할 곳이 막힌 민간 자본이 사채시장으로 대거 흘러 들어가 고리대금업으로 변질됐다. 여기에 중국 정부의 통화긴축으로 은행 대출이 어려워진 중소기업들이 사채시장에 손을 벌리자 고리대는 더욱 성황을 부렸다. 빌린 돈을 제때 갚지 못한 기업들이 연쇄 도산하고 기업가들은 야반도주하거나 자살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민간경제 발전을 통해 지역경제를 발전시킨다는 ‘원저우 모델’이 붕괴한 것 아니냐는 위기감이 팽배했다.
이러한 배경 하에 중국 국무원이 원저우를 금융개혁 시범구로 선정, 사채시장 문제로 타격을 입은 원저우를 민간금융 발전 시범지역으로 육성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이다.
무엇보다 이번 조치로 원저우 사채시장이 양성화된 것이 주목할만한 점이다. 소규모 농촌·지역은행·밴처캐피털 등 제도권 금융기관을 민간자본도 설립할 수 있게 되면서 민간 자본의 투자활로가 넓어졌다. 실제로 그 동안 원저우에는 중소기업 15만개 이상이 몰려있으나 제도권 은행 수는 겨우 29개에 불구해 자금수요를 만족시키기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국유기업이나 대기업에 대출이 쏠려 은행권 대출에서 소외됐던 중소기업도 이제 이러한 ‘서민금융기관’을 통해 자금을 빌릴 수 있게 됐다. 그 동안 고리대금업에 쏠렸던 민간자금이 실물경제 발전에 기여하게 된 것이다.
실제로 원자바오 총리도 최근 “중국 내 소수 대형은행이 금융시장을 독점하고 있어 너무 쉽게 이익을 남긴다”며 금융부문에 민간 투자를 유도해 이러한 독점을 깨야 한다고 지적했다. 원 총리의 이 같은 발언은 사채를 제도 금융권으로 끌어들이는 원저우 금융특구 지정 조치와 무관치 않다.
여기에 해외투자 가능해진 것도 주목할만하다. 개인 해외투자 허용으로 민간자금 투자 경로가 다원화 돼 향후 민간기업의 해외 인수합병도 빈번하게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세간에서 기대했던 금리 시장화 조치가 이번 조치에서 빠진 점은 아쉬운 대목으로 꼽힌다. 그 동안 전문가들은 중국 정책 금리와 민간 금리 격차가 너무 커서 민간 자금이 사채시장에 대거 몰렸다며 시장 원리에 따라 금리를 조절해 고리대가 성행하는 것을 막고 민간 자본을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한다고 지적해 왔다.
화폐가 혈액이라면 금융은 혈관이다. 막혀있는 혈관을 뚫어야 혈액이 제대로 순환하듯, 금융 시장을 제대로 정비해 돈이 적재적소에 쓰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번 원저우 금융실험이 제대로 정착해 중국 전역으로 확대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배인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