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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퉁소 그리고 스승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12.04.18일 12:59

《밀강퉁소》의 최년소자(당시 12살) 최민은 현재 한국국립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석사를 졸업하고 《통소왕》으로 한국예술무대를 누비고있다.


어릴적 마을의 모닥불야회가 있던 어느 여름날 밤, 학교운동장앞 무성하게 우거진 백양나무아래에서 난생처음 듣는 구성지면서도 맛갈스러운 퉁소소리가 들려왔다. 그 퉁소소리에 이끌려 저도 모르게 사람들 틈을 비집고 들여다보니 스포츠형 짧은머리에 탐탁한 몸매의 한 중년남성이 흥겹고 구성지게 퉁소를 불고있었다. 그 퉁소소리가 얼마나 좋던지 듣는 사람의 간을 녹이고 혼을 쏙 빼놓을 정도였다.청중들은 너도나도 잘한다고 감탄을 련발하고있었는데 연주가 끝나자 뜨겁고 열렬한 박수갈채가 이어졌다.


이것이 내가 처음 본 김철호선생님의 모습이였다. 그때 나는 소학생이였는데 밀강향(길림성 훈춘시)에서 촌민들에게 퉁소를 보급하여 연주하도록 하였고 학교, 향정부, 기관 등 여러 계통에서 통일적으로 퉁소를 불도록 전문가를 초빙하여 퉁소강습반을 꾸렸었다. 그때 마을로 퉁소 가르치러 온분이 바로 훈춘시예술단 지휘 김철호선생이였던것이다.


그때가 1992년쯤 된걸로 알고있는데 김철호선생님이 먼저 소학교 음악교원 리길송선생과 향문화소 김진수소장과 여러 퉁소애호가들을 상대로 퉁소강습반을 조직하여 퉁소의 기본지법과 연주법을 가르친뒤 그분들이 다시 마을분들한테 가르쳤다. 내가 퉁소를 처음 잡고 연주해본것은 그 이듬해 학교에서 퉁소를 배울수 있도록 보급하면서부터였다.


나는 그때 퉁소를 분지 1년도 채 안된 햇내기였는데 사람들 틈을 비집고 넋 나간듯 열심히 구경하는 모습을 보시더니 김철호선생은 너 한번 불어보라고 하셨다.쑥스러워하면서 《농부가》 앞소절을 겨우 소리내어 불었더니 김철호선생님은 허허 웃으시면서 아래입술을 옆으로 좀더 당기고 다시 불어보라고 하시면서 며칠뒤 밀강으로 다시 올일이 있으니 그때 또 보자고 하시는것이였다. 그후 100명 퉁소합주 공연때문에 선생님은 자주 마을로 들르셔서 퉁소연주법과 운지기교 등을 직접 시범을 보이시면서 특강을 하셨는데 소리를 좀 낼수 있었던 나는 어깨너머로 퉁소연주법을 배울수 있었다.

선생님이 오실적마다 배웠던 연주법을 되새기면서 집에서 신이 나서 불고 또 불었다. 점점 느는 퉁소실력에 김철호선생님도 나한테 점차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올 때마다 나만 단독으로 불러다가 퉁소에 관한 연주법과 자신만의 비법을 조금씩 가르쳐주셨다.

선생님은 특히 퉁소로 《밀양아리랑》, 《농부가》, 《진도아리랑》 등을 비롯하여 모든 민요를 잘 부셨다. 단순한 민요도 선생님이 연주하시면 구성지면서도 맛갈스러웠고 선생님만의 독특한 음악적 해석은 나에게 많은 음악적 령감과 영향을 주었다. 그중에서 선생님의 롱음 (떠는음)과 구멍을 반쯤 막았다 떼는 반규법은 정말 기가 막혔는데 후날 내가 한국에 와서 연주할 때도 선생님이 배워주신 롱음과 반규법은 한국 연주자들을 깜짝 놀라게 하기도 하였다.


김철호선생님은 토속민요로만 또는 토막소리형태로 연주되던 《아스랑가》, 《농부가》, 《라질가》, 《신아우》를 모음곡으로 퉁소에 맞게 재편곡하여 흥겹고 구성진 가락으로 만드셨는데 이 곡은 20년이 다 되여가는 훈춘시 밀강퉁소대의 고정곡목으로 높은 인기를 얻었다.


특히 밀강향 퉁소대는 1994년 두만강문화주랑공연부터 시작하여 1995년 연변조선족민속문화관광예술절 등 크고 작은 공연에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는데 나도 퉁소대의 일원으로 각종 공연에서 직접 퉁소연주도 해보고 또 쉬는 시간에는 김철호선생님의 지도를 자주 받았다.

그리하여 1995년 퉁소연주로 훈춘시청소년기악콩클 1등상, 1996년 훈춘시관현기악콩클 최우수상을 수상하였다. 수많은 연주를 거듭해나가던 1997년 훈춘시밀강향은 연변조선족자치주정부로부터 《퉁소의 고향》이라는 칭호를 얻게 되였다. 밀강의 퉁소가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된데는 밀강의 이주민에 의한 퉁소문화특성도 있겠지만 여기에는 김철호선생님의 많은 노력과 공로가 숨어있다고 나는 보고있다.

1997년 5월,김철호선생님의 권유로 나는 연변예술학교 중등전문학급에 퉁소로 입학시험을 봤다. 당시 시험심사를 하시던 연변의 장새납, 피리 대가였던 김석산선생님이 아주 흡족해하시면서 박수를 치시던 모습은 지금도 눈앞에 생생하다. 그리고 1997년 9월 나는 꿈에도 그리던 연변예술학교에 입학하게 되였다. 그런데 예술학교에 진학하니 김석산선생님은 학교에는 퉁소전공이 없으니 대신에 역시 부는 악기인 횡적(橫笛)즉 저대를 전업으로 하라고 권하셨다. 저대로 전업을 바꾼후 자연히 퉁소는 손에서 멀어지게 되고 연주법이 어려운 저대련습에 노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연변의 저명한 국가1급 저대연주가이신 김동설선생님을 모시고 저대를 배우게 되였다. 또 2000년에 연변대학예술학원 본과에 진학하여 2004년까지 저대를 공부하고 대학을 졸업하게 되였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퉁소의 이미지는 민간에서만 연주되는 원시악기, 할아버지들만 연주하는 아바이악기, 시골 농부들이 밭자락에서 마구 불던 악기로 하대받고 홀대받고있었다.

그러나 나의 생각을 바꿔놓은 하나의 계기가 있었다. 저대연주가 점점 자리잡아가고있고 퉁소소리가 거의 잊혀질 때쯤인 2002년 우연하게 한국전통음악학회의 교류음악회의 공연을 보게 되였는데 거기서 한국에서 오신 퉁소연주가 동선본선생의 퉁소소리를 들었다. 순간 내가 퉁소를 놓으면 안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머리속을 감돌았다. 그날밤으로 나는 동선본선생님이 묵고있는 호텔로 직접 찾아가 한국에서의 퉁소의 발전가능성, 한국에서의 퉁소연주법과 기교, 한국에서 전통으로 계승되는 퉁소의 현황을 교류를 통하여 알수 있었다.

그번 만남은 나에게 또 다른 큰 힘이 되였고 퉁소를 다시 잡게 만드는 일종의 동기를 심어준것이다. 그러던중 2002년 여름에 북경에서 열린 국제손풍금실내악콩클에 참가하게 되였는데 나도 그중의 일원으로 주선률을 저대로 담당하게 되였다. 나의 제의에 의하여 맨앞의 카덴자 나오는 부분의 저대선률을 퉁소로 바꾸어 연주하였는데 그 콩클에서 좋은 호평과 함께 독특한 민족특색으로 은상을 받았다. 그 콩클입상을 통하여 나는 퉁소의 중요성에 대해 크게 깨닫게 되였고 본격적으로 퉁소연주에 심혈을 기울리기 시작하였다.

졸업음악회를 얼마 앞두고 나는 신명나는 퉁소연주를 보여주리라고 생각하고 김철호선생님이 구성한 가락을 관현악에 편곡하여 연주하였는데 그날 퉁소연주는 관객들의 우뢰와 같은 박수갈채와 앵콜을 받았다. 그 음악회가 끝나고 나는 또 한명의 귀인을 만나게 되였는데 바로 국립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초대원장을 지내셨던 한국의 저명한 국악학자이시며 작곡가인 백대웅교수님이였다. 백대웅 교수는 마침 안식년을 연변예술학원에서 보내고 계시면서 연변의 전통음악전승양상에 대하여 연구하고 계셨던것이다.


백대웅원장은 그 공연을 객석에서 관람했다고 하시면서 퉁소에 대하여 높이 칭찬해주시고 한국에 가서 전통음악을 공부하고 연주활동도 하지 않겠냐고 제안을 했다. 그때 한국류학을 꿈꾸던 나는 꿈인지 생시인지 멍해있다가 너무 좋아서 퐁퐁 뛰였다. 그리하여 졸업하고 1년 지난 다음인 2006년 나는 한국류학의 길에 오르게 된다.

그런데 대학을 졸업하고 다음해인 2005년에 또 하나의 행운이 나를 기다리고있었다. 2005년 10월 심양에서 중국 문화부 주최 문화장, 제2차전국민족기악콩클이 열렸던것이다!! 이 민족기악콩클은 중국에서 처음으로 민족기악을 문화장에 올려주는 예술무대기악연주의 최고상이였던것이다. 나는 당당히 퉁소를 연주로 콩클에 나가게 되였는데 예선을 통과하고 결승도 순조롭게 마치고 결과를 기다리고있었다.

콩클결과를 발표하는 순간 나는 깜짝 놀라 멍해지고말았다. 《연변예술학원 최민 퉁소 금상》이라는 글발이 수상자입상 대자보 제일 꼭대기에 붙어있었던것이다! 내가 콩클에 퉁소연주로 나간다고 얘기해도 누구 하나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에익! 퉁소 가지고 뭘 어쩐다고》라고 비꼬는 사람이며 《설마 퉁소가 되겠어?》 라고 미심쩍어하는 사람들만 있었다. 그런데 그토록 많은 중국내 소수민족악기를 모두 제치고 내가 조선족 퉁소연주로 1등상을 받게 되였으니 그때 그 기쁨은 말로 형언할수 없었다.

대회페막식에 나는 유일한 조선족대표로 참가하여 중국의 유명한 학자와 연주가들앞에서 김철호선생님이 편곡한 퉁소곡을 연주하여 공연장의 관객들로부터 기립박수를 받았다. 지금껏 하대받고 홀대받던 악기 퉁소가 아니였던가! 그날 나는 사람들앞에서 큰소리로 외치고싶었다. 퉁소는 세상의 그 어느 악기보다 훌륭하다는것을! 퉁소의 구성진 소리야말로 우리 민족의 가슴속 깊이 내재되여있는 한의 소리요! 향토적인 우리 민족의 소리이고 조선민중의 애환이 담긴 령혼을 부르는 소리라고...


2006년 한국에 류학온 나는 국립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에서 한국의 저명한 대금연주가이신 박용호교수님을 모시고 전통대금을 전공으로 석사공부를 하게 되였다. 또 한편으로는 백대웅선생님을 모시고 전통예술원에서 체계적으로 전통음악리론, 국악학, 전통음악 오선보채보 등을 배우면서 연변음악과는 또 다른 세계의 전통음악공부에 몰두하기 시작하였다.

2006년 한국퉁소연구회공연부터 시작하여 양금발표회에서의 퉁소독주 등 퉁소연주를 해나가던중 2007년 저명한 작곡가였던 백대웅교수는 나를 위하여 한국 최초의 퉁소협주곡《만파식적의 노래》를 작곡하였다. 2007년 11월 29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처음 연주됐던 퉁소협주곡 《만파식적의 노래》는 모두 3악장으로 구성된 18분짜리의 긴 곡이다.


1악장은 잦은모리 장단의 흥겨운 가락과 북청사자놀이의 퉁소가락을 변주곡시켰고 끝부분에 관악기의 모든 기교가 들어있는 카텐자가 있다. 2악장은 남도지방의 민요를 소재로 서정적인 선률과 애절한 선률이 어울러진 느낌으로 작곡되였고 3악장은 엇모리장단을 변형한 리듬에 현란한 선률을 얹어서 작곡하였다. 이 곡을 연습하면서 김철호선생님한테서 배웠던 연주기교를 결합하여 완성시켰는데 이 퉁소협주곡은 발표된후 많은 화제가 되여고 관객들의 호응도 뜨거웠다.


그리하여 나는 선후하여 KBS국악관현악단, 경북도립국악관현악단, 전주시립국악관현악단 등 한국내 많은 악단과 함께 퉁소를 연주할수 있었으며 한국내 크고작은 공연장에서 퉁소독주자로 마음껏 활동할수 있게 되였다. 2011년 10월부터는 또 김철호선생님이 재구성한 곡을 퉁소협주곡《풍전산곡(風傳山曲)》이라는 이름으로 재편곡하여 서울시국악관현악단과 함께 연주하였다.


지금까지의 나의 음악인생을 돌아보면 연주생활이 시작된 순간부터 지금까지 성공의 순간과 가장 어려웠던 순간에도 항상 퉁소와 호흡을 함께 해왔고 그때마다 김철호선생님한테서 배웠던 퉁소가 큰 힘이 되고 항상 든든한 버팀목이 되여주었다.

/최민

편집/기자: [ 김청수 ] 원고래원: [ 길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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