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재순 회장
(흑룡강신문=하얼빈) 봉제기업 보스로서 류재순 회장은 이틀이 멀다하게 밤을 패울때가 많다. 20년동안 손에 익은 일이지만 모든 절차들을 영화필림돌리듯 침상에서 하나둘 점검해야 직성이 풀린다.
현재 류재순 회장이 경영하는 복장공장은 일군만 천명을 웃돈다. 공장을 기반으로 아웃도어 패션 브랜드산하의 매장 50개는 국내 여러지역시장에 포진해 있다.
류재순 회장이 쌓은 성적은 아버지의 <독단>에 따른 결과이기도 하다.
길림성 장춘시 구태시 음마하(饮马河)는 그의 고향이다. 구태조선족중학교 교장인 아버지의 슬하에서 맏딸로 태여난 그는 학습성적도 우수했고 장래도 밝았다. 그러나 문화대혁명이 발발하면서 아버지가 이른바 <수정주의 모자>를 쓰면서 그의 학업도 중단됐다. 그때 그는 초급중학교 2학년생이였다.
공부뿐만 아니라 일에서도 그는 누구에게 뒤지지 않았다. 그는 어려웠던 그 시절을 상기하면서 “모심기랑 하면 항상 1등이였지요.”라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워낙 활발하고 일솜씨가 이만저만이 아니여서 마을에서는 17살나이의 햇내기인 그를 부녀주임으로 발탁시켰다.
문화대혁명이 지나고 아버지가 <모자>를 벗을때 그는 이미 어엿한 처녀로 성장했다. 아버지는 그를 “곧바로 구태봉제공장”에 알선해주었다. “공부는 많이 못했지만 기술이라도 배워야 출세할수 있다”는 것이다.
내노라하는 전문가도 울고 가라고 할 정도로 탄탄한 기술력, 일에 대한 강한 집착력 그리고 고생을 두려워 하지 않는 소탈한 성격은 은연중 그의 창업기반으로 되였다.
1995년 회사가 성립되면서 그에 따른 역경도 무섭게 다가섰다. 동업자로부터 80만원 거금을 사기당하면서 말그대로 “온 가정이 길바닥에 나 앉아야 하는 판국”이였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동안 쌓은 덕과 신용으로 그는 3년이란 시간을 기약하고 회사운영을 재개할수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였다.
고생끝에 락이 오는 법이다. 1년동안 노력에 노력을 거듭하는 과정에 회사는 생사고비에서 벗어나 승승장구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항상 최선을 다해 일에 집착하다보면 기회가 생기는 법이다.” 류재순 회장이 자제들을 두고 입버릇처름 떠올리는 말이다.
사실 그의 열성은 식을줄 몰랐다. 세계가 인정하는 고급메이커를 만드는것이 그의 새로운 목표로 다가서고 있었다.
/국제방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