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엘리베이터·미용실 거울 밑…눈길 머무는 곳마다 '디지털 전광판'
홍경진(42·서울 송파구)씨는 요즘 출퇴근할 때마다 아파트 엘리베이터 내부에 설치된 디지털 모니터에서 나오는 광고와 그 아래 한 줄로 흘러가는 뉴스를 읽는다. 홍씨는 "두 달 전 설치됐는데, 10층에서 1층까지 내려오는 몇십초 동안 엘리베이터에 탄 사람들은 모두 모니터만 쳐다본다"고 말했다.
홍씨가 보는 것과 같은 디지털 전광판을 요즘은 '디지털 사이니지'(Digital Signage)라고 부른다. 공공장소나 개인 사업장에 설치해 광고 및 각종 정보를 전용 스크린으로 제공하는 장치다. 네트워크로 통제가 가능하기 때문에 지역·시기별 맞춤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KT와 LG유플러스 등 포화상태에 이른 통신시장의 돌파구를 찾는 통신사들은 사활을 걸고 이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여기에 디스플레이 기술이 발달하면서 네트워크와 연결된 다양한 형태의 옥내·옥외형 디스플레이가 선을 보이고 있다.
대학교 및 대형병원 등 대형 시설 위주로 디지털 사이니지를 보급해온 KT는 작년부터 엘리베이터와 버스정류장, 지하철, 편의점 입구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해왔다. KT는 지난 4월 말 기준 전국에 3만9000여개의 스크린을 확보했으며, 올 연말까지 4만2000개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LG유플러스는 올 연말까지 아파트 엘리베이터용 LED모니터를 3만개까지 늘린다는 계획이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 디지털 사이니지는 단순한 광고판 역할만 하는 게 아니다. 남성그룹 빅뱅은 6월 한 달 지하철 신분당선 강남역에 설치되는 대형 디지털 사이니지를 이용해 자신들의 신곡을 선보일 예정이다. KT 손정호 매니저는 "가수 측에선 디지털 사이니지로 꾸민 신분당선 강남역 공간 자체를 일종의 미디어로 보고 적극 활용하려 한다"고 말했다.
디지털 사이니지가 노리는 것은 결국 소비자들의 '자투리 시간'이다. 버스·지하철·엘리베이터 등 소비자들이 멍하니 무언가를 기다리는 몇 분 몇 초도 놓치지 않겠다는 것이다. 서울 무교동 엔제리너스 등에선 음료가 나올 때 들고 기다리는 진동벨에 디스플레이를 달아 광고를 내보내고 있고, 손님 맞은편 거울 하단에 광고용 모니터를 설치한 미용실도 있다. 서울시내 일부 식당에선 아이패드형 메뉴판을 만들어 주문 후 음식이 나올 때까지 광고를 보여주기도 한다. 기름 넣는 시간 동안 소비자들이 볼 수 있게 주유기 옆에 디지털 사이니지를 설치한 주유소도 등장했다. 화장실도 디지털 사이니지가 파고들 수 있는 공간이다. 코트라 도쿄무역관에 따르면, 일본 도쿄 이케부쿠로역 근처 한 주점의 남자화장실 소변기에도 네트워크와 연결된 디지털 사이니지가 걸려 있다고 한다.
디지털 사이니지로 인한 프라이버시 침해나 쉴 새 없이 쏟아지는 광고로 인한 '디지털 소음' 문제가 야기될 수도 있다. 서울 강남구의 한 아파트 주민은 "7살짜리 아들과 엘리베이터를 탈 때마다 아이가 디지털 광고판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며 "간혹 자극적인 영상이 나올 때는 거북할 때도 많다"고 말했다. 이미 일본에서는 모니터에 카메라를 탑재해 고객의 성별과 연령대를 인식해 맞춤형 쌍방향 광고를 내보이는 기술까지 개발됐다. 길거리의 모니터가 행인들의 개인정보를 읽어낼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는 SF영화 '블레이드 러너'나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보았던, 곳곳에 모니터와 디스플레이, 카메라가 넘쳐나고 모든 것이 네트워크로 연결된 세상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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