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위시선·가해자 협박 두려워 신고기피
대학교내 성폭력 매년 10% 이상 증가
# 1 여대생 A씨는 같은 학교 남학생 B씨와 술을 마시던 중 성폭행을 당했다. 경찰에 신고를 했지만, 가해자인 B씨는 오히려 합의를 해주지 않으면 학교에 소문을 내겠다고 협박했다. A씨는 어쩔 수 없이 합의를 해줬다. 합의 뒤 B씨는 돌연 태도를 바꿔 A씨의 자퇴를 종용했다. A씨가 거부하자 'A씨가 B씨를 꼬셔 성관계를 맺었다'고 소문을 냈다. A씨는 결국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대학을 그만뒀다.
# 2 여대생 C씨는 대학교 인근에서 같은 학교 남학생 D씨와 술을 마셨다. 다른 동기들과 자취방에서 마시던 중 술에 취해 필름이 끊겼다. 일어나보니 C씨의 옷이 벗겨져 있었으며, 어렴풋이 D씨에게 성폭행을 당한 기억이 났다. C씨는 자신을 문란한 여자로 보는 등 주위의 시선이 두려워 신고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대학 내 성폭력 문제가 심각하다. 지난 28일 대법원 판결이 난 고대 의대생들의 성추행 사건 등 최근 대학가는 성폭력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고려대는 지난해 5월 발생한 의대생들의 성추행 사건에 이어 지난 3월 초 대학원생 2명이 지도교수를 성추행으로 신고해 물의를 빚었다. 중앙대 교수는 수년간 학부생과 대학원생들을 성희롱 성추행한 혐의로 징계위원회에 회부, 결국 지난 20일 해임됐다.
<지난 28일 실형 판결이 확정된 고대 의대생 성추행 사건 등 대학가 성폭력 문제가 심각하다. 사진은 지난해 9월 한국여성단체연합 주최로 고대 정문에서 열린 '국회의원부터 의대생까지 성희롱이 판치는 나라, 이제 그만!' 퍼포먼스 장면이다. 사진 연합뉴스>
◆ 어려운 피해자 신고, 실제 사건은 더 많아 = 지난해 9월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안민석(민주통합
당) 의원이 교육과학기술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대학 내 성폭력 사건은 해마다 증가했다. 전국 111개 대학의 학내 성폭력 관련 상담소에 접수된 사건은 2009년 69건, 2010년 80건, 2011년 상반기 49건 등 총 198건이다.
전문가들은 대학가에서 이보다 훨씬 많은 성폭력 사건들이 벌어진다고 지적했다. 선후배나 교수·제자 등 권력의 상하관계에서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아 피해자들이 섣불리 신고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탁틴내일 추국화 소장은 "대학생 가해자가 MT에서 여자 동기를 성추행한 뒤 피해자가 아무런 말이 없자 불안해서 상담을 신청한 경우가 있다"며 "그만큼 피해 여대생들의 신고나 상담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추 소장은 또 "대학 내 성폭력연구소나 상담소의 경우 상담인력 중심으로 운영돼 법적 조치에 대해 제대로 아는 이들이 드물다"며 "피해자가 법적인 도움을 최대한 빨리 받을 수 있도록 제도적인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교과부 자료에 따르면 대학 내 성폭력 사건 상담 접수 사례 중 학생 간 사건이 44.4%로 가장 많았다. 이어 교수와 학생 간 사건이 19.2%, 학생과 외부인 간 사건 12.1% 등의 순이었다.
◆ 성폭력에 대한 잘못된 인식 바로잡아야= 더 큰 문제는 학생 간 성폭력 사건 발생률이 높지만, 남자 대학생들의 성폭력에 대한 인식이 왜곡돼 있다는 것이다. 이는 잠재적인 성폭력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성평등 실천 국민실태조사 및 장애요인 연구(Ⅲ): 대학생활 영역을 중심으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남자 대학생의 강간통념 수용도가 여자 대학생에 비해 유의미하게 높았다. 강간통념이 왜곡될 경우 성폭력 행위를 남성의 본능으로 합리화하고,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한다. 이는 전국 대학생 5555명에게 설문조사(4점 척도 기준)한 결과다.
보고서에 따르면 '여자가 끝까지 저항하면 강간을 피할 수 있다'에 대해 남학생 평균인식 점수는 2.34점, 여학생은 2.16점이었다. '성폭력은 특정한 부류의 사람이나 장소에서 일어난다'는 질문에 대한 답변 역시 남학생의 평균 점수는 2.01점인 반면, 여학생은 1.79점이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안상수 연구위원은 "남학생의 강간통념 수용도가 여학생에 비해 높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추 소장은 "양성평등교육을 확대하는 등 성폭력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심어주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내일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