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이자 앱 | | 모바일버전
뉴스 > 정치 > 한국
  • 작게
  • 원본
  • 크게

애국가 논란 "안창호란 증거 수두룩" VS "윤치호는 5배"

[기타] | 발행시간: 2012.09.04일 10:29
[안창호 작사 주장]

- 1907년 작사, 평안도 일대 널리 불려

- 도산 비서실장의 증언 존재

[윤치호 작사 주장]

- 안창호가 창간, 후원한 신문서 공인

- 친일행적과 역사적 사실은 별개

■ 방송 : FM 98.1 (07:0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흥사단 오동춘 애국가작사자규명위원장, 한민족 아리랑연합회 김연갑 이사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이 친숙한 가사. 애국가를 작사한 사람은 누굴까요? 애국가는 공식적으로 작사가 미상입니다. 공식적으로는 미상이지만 그동안에는 친일파 윤치호가 작사했다는 주장이 우세했죠. 그런데 얼마 전 흥사단이 애국가를 작사한 사람은 바로 도산 안창호 선생이라고 주장하고 나섰습니다. 진상규명위원회까지 만들면서 역사를 바로잡아야 한다 나서면서 논란이 일고 있는데요. 양측의 주장, 듣고 판단해 보시죠. 먼저 흥사단 측을 연결합니다. 흥사단 애국가작사규명위원회 오동춘 위원장 연결돼 있습니다.

◇ 김현정> 애국가의 작사가가 도산 안창호 선생이다. 결론을 내리신 건가요?

◆ 오동춘> 국가의 공인된 결론은 아니지만 우리 흥사단에서 연구한 바로는 도산 안창호 선생님께서 남북 7000만 겨레의 사표로, 스승으로 존경받는 순국 애국자 또 흥사단을 창립한 도산 안창호 선생께서 애국가를 지으신 건 틀림없다. 여러 증거와 자료를 가지고 그렇게 연구해서 나라가 공인해 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 김현정> 틀림없다고 확신하는 근거가 뭔가요?

◆ 오동춘> 그 근거는 1955년도에 만들어진 애국가 작사자 조사위원회가 발표했던 그때 나왔던 자료 말고 근래에 새롭게 자료를 연구한 결과 도산 안창호 선생이 1902년에 미국 가셔서 교포들 교육을 하고 그리고 앞으로 독립운동을 위해서 독립협회 대한인국민회 이러한 조직을 하면서 독립운동 교포 지도를 하다가 1907년 미국 간 지 5년 만에 한국에 제1차 한일협약, 을사늑약 등으로 주권 상실된 나라를 보고 신민회 비밀애국단체를 조직해서 나라의 독립을 찾아야 되겠다고 1907년 2월 20일경 한국에 귀국해서....

◇ 김현정> 짧게 핵심만 말씀해 주십시오.

◆ 오동춘> 귀국해서 그 해 3월 7일경 경칩 무렵에 평북 선천예배당에 가서 백두산과 두만강이 마르고 닳도록 하는 그러한 찬미가 소리를 듣고 영감을 얻어서 평양에 가서 이틀씩 금식해 가며 봄, 여름, 가을, 겨울 4계절을 배경으로 해서 지은 애국 찬미가가 선천 일대에 애창곡이 된 도산이 지은 최초의 애국가로 이렇게 연구가 되어서 발표를 했습니다.

◇ 김현정> 그게 기록이 다 있다는 말씀이시죠?

◆ 오동춘> 기록이 있습니다. 증거가 다 있습니다.

◇ 김현정> 그런데 그동안에는 윤치호가 작사가라는 주장이 우세했습니다. "이 사람이 친일파냐 아니냐를 떠나서 그가 작사가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인 사실이다" 이런 주장이었는데. 그 근거로 든 것이 '안창호 선생이 창간한 신한민보에 보면 애국가 4절이 기록되어 있는데, 거기에 윤치호 작사라고 명확하게 기록이 돼 있다, 안창호 선생이 진짜 작사가였으면 그걸 수정하지 않았겠느냐?' 어떻게 생각하세요?

◆ 오동춘> 윤치호 선생 쪽에서 주로 우리 김연갑 씨가 저서를 통해서나 구두 증언으로 많이 대변해 주시는데 가사지나 찬미가는 일단 애국가작사자조사위원회에서도 인정받지 못했고, 그 후에 (윤치호 작사로 기재된) 국민가가 나왔는데 그 국민가가 실린 신한민보란 신문은... 도산은 그때 해외에 독립운동 중에 있었기 때문에 그 신한민보와는 관계가 없고 그 당시 발행인은 독립운동가인 최정익 씨였습니다.

◇ 김현정> 창간만 하고 안창호 선생이 그 당시에는 관여하지 않았다?

◆ 오동춘> 관여하지 않았죠. 그런데 그걸 연결시켜서 인정했다고 하는데 그 국민가는 경술국치가 된 지 한 20여 일만에 누가 갖다 실었는지 윤치호 씨 이름으로 국민가라는 이름으로 실었는데 그게 역술 찬미가 윤치호 씨가 만들었다는 그 역술 찬미가 속에 있는 도산 안창호 선생의 애국찬미가를 거기다가 가사 일부를 변조해서 갖다 실은 데 지나지 않고 그것이 무슨 결정적인 윤치호 씨 작품이다, 이렇게 신빙할 만한 이유는 없습니다. 그런데 흥사단은 그걸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 김현정> 안창호 선생이 먼저 지어서 두루두루 부르던 것을 윤치호가 변조해서 이것을 실은 것이다, 문서로 만든 것이다, 찬미가도 그렇게 된 거다. 이런 말씀?

◆ 오동춘> 누가 실었는지는 몰라도 거기에 실렸다 이거죠.

◇ 김현정> 그런데 말입니다. 안창호 선생 생전에 "애국가를 직접 작사하셨습니까?" 이렇게 물음을 누군가 던졌는데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이런 기록이 있어요.

◆ 오동춘> 그거는 춘원 이광수나 이 제자들에게 빙그레 웃으면서 부인하지 않고 이렇게 했는데, 요 근래 105세가 되는 도산의 비서실장 3년을 지낸 구익균 옹의 증언에 의하면 작년 2011년 10월 25일자 동아일보 대담기사에서 자신의 정치적인 무슨 이유를 말한 가운데 일화 속에 선생님이 애국가는 지으셨죠? 맞다. 이렇게 분명히 대답을 하셨다고 동아일보 기록에도 나와 있고 우리 흥사단 단원 6명이 자택을 방문해서 질문 드렸을 때도 맞다, 분명히 맞다. 그래서 우리가 그분 말씀하시는 것을 이렇게 녹취도 해 왔고.

◇ 김현정> 그러면 생전에 물었을 때는 왜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으셨을까요?

◆ 오동춘> 그거는 그렇습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님이 애국가 지은 것은 이 애국가가 미국의 클레멘타인 민요처럼 넓게 민요로 정착이 돼서 온 국민이 애국가로 널리 애국사상이 강화됐을 때 혁명적으로 온 국민이 일어나서 우리가 독립운동을 하고 일본으로부터 독립을 해야 되기 때문에 내가 말하기 전에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함구령을 내리고 이렇게 민요로 정착되기까지는 원작자를 밝히지 말라. 이렇게 독립운동가 윤형갑 씨에게 상해에서 그렇게 말했습니다.

◇ 김현정> 알겠습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이 애국가의 작사자다, 주장하고 있는 흥사단의 입장 먼저 들어봤고요. 이어서 윤치호가 작사했다 주장하고 계신 분, 한겨레 아리랑연합회의 김연갑 이사 연결을 해 보시죠.

◇ 김현정> 안창호 선생이 작사가라는 주장의 근거를 들으셨죠?

◆ 김연갑> 그 이유는 윤치호가 아니다는 주장이지 도산이 자기다 라는 주장이 아니에요. 이미 그것은 제가 1998년. 14년 전에 애국가 작사자 연구에 다 나와 있는 얘기입니다. 그건 하나도 그 범위를 넘어가는 게 없습니다. 지금 말씀하신 신한민보 기록 같은 것도 왜 그런가하면, 신한민보를 만든 주 단체가 국민회의인데요. 그 국민회의는 안창호 선생이 만든 단체예요. 국민회의를 만들고 안창호 선생이 국민회가로 부르기 위해서 현 애국가 가사를 그대로 놓고 윤치호작이라고 하고 제목을 국민가라고 한 거거든요. 이런 맥락을 보지 않고 .... 아니, 어떻게 신문에 1910년 신문에 윤치호라고 했으면 윤치호지. 그게 아니다라는 오늘날의 해석을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지금 이 방송도 너무 생산적이지 않아요. 왜냐하면 1955년에 잘못 판단한 것들. 주요한이나 최남선 선생 같은 사람들이 각각 가족들의 다양한 증언과 미국에서 보낸 윤치호 자료를 서로 엇갈리게 받아보고 잘못 증언하고 잘못 판단한 거거든요. 그래서 1998년에 제가 14년 전 책에서 그 주요한이나 최남선이가 왜 잘못 판단을 했는가를 다 넣었거든요. 그런데 지금 와서 이게 14년 지난 책에 다 있는 얘기를 이렇게 한다는 건 너무 생산적이지 않은 거죠.

◇ 김현정> 지금 흥사단 측에서는 강하게 주장하면서 정부에다가 공식인가를 요청한 상태이기 때문에 다시 이게 논란이 되고 있는 거거든요. 그런데 윤치호는 명백한 친일인사인데, 친일인사가 애국가를 작사할 리 있었겠느냐. 이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 김연갑> 그러니까 흥사단이 잘못 가고 있는 것은 애국가는 개인의 문제나 개인 단체의 문제가 아닙니다. 국가 상징이에요. 국민 정서에 호소할 상황이 아니라는 거죠. 이것이 친일파 윤치호가 작사했다는 게 규명되면 그것을 바꾸든 개작하든 이것은 다른 문제란 얘기예요.

◇ 김현정> 작사가가 친일파인 것이 마음에 안 들면 가사를 바꿀 수 있다?

◆ 김연갑> 그럼요, 그건 얼마든지. 저는 5명, 애국가 작사자로 논의되는 5명을 연구한 결과를 윤치호로 한 거예요. 그러니까 이분들이 주장하는 논리는 이미 1999년에 제가 쓴 상대비교, 교차 비교한 결과를 재탕, 삼탕 하는 거거든요.

◇ 김현정> 그런데 말입니다. 그쪽 주장을 들어보면 안창호 선생이 신한민보를 창간했지만 그 애국가가 실릴 당시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렸는지 않았는지도 모르셨고...

◆ 김연갑> 지금 말씀드리지 않습니까? 국민회의를 1년 전에 도산 선생님이 만든 단체거든요. 그 단체에서 공립신문이라는 것을 흡수해서 그것을 신한민보라는 이름으로 바꾼 겁니다. 바꾸어서 국민가라는 제목을 바꿔 쓰는 거예요. 그것은 안창호 선생의 지지가 아니면 그럴수가 없습니다.

◇ 김현정> 지지 없이는 그렇게 함부로 내지 못했을 것이다?

◆ 김연갑> 지럼요. 그건 국민회의라는 단체를 만들었기 때문에 그때는 1910년이라는 건 1919년에 오늘날 부르는 애국가가 전국에 확산됐죠. 1919년 3.1운동 이전에는 1907년에 작사를 해서 기독교 계통의 일부 학교 이런 데만 사용했고 의미 있는 아는 사람들만 사용했거든요. 그러니까 애국가든 국민가든 누구든 제목을 고칠 수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이런 맥락을 연구해야죠. 이번 논쟁의 핵심은 흥사단이 크게 잘못한 거예요. 일제시대 때 기록 중에서 안창호와 애국가를 명시적으로 기록한 신문은 1910년 2월 10일자 대한매일신보거든요. 이거를 명백하게 이 기사를 4개의 키워드를 다 빼고 문장을 조작한 거예요. 핵심은 이겁니다.

◇ 김현정> 그런데 여러 가지 웅변집이라든지 안도산 전서 같은 기록물에는 안창호 선생님이 한 거로 돼 있다.

◆ 김연갑> 그 정도는, 그 정도의 기록은 윤치호는 5배가 됩니다,

◇ 김현정> 그런 정도의 기록을 찾자면요?


◆ 김연갑> 그러니까 교차비교를 해야죠. 예를 들어서 최남선과 주요한을 얘기하면 최남선이 다른 쪽에서 얘기한 것, 그리고 주요한이 다른 쪽에서 얘기한 것도 비교해야 돼요. 우리 같은 사람은 그렇게 얘기합니다. 나는 도산 선생이 지었다는 얘기를 한 사람에게서도 들어보지 못했고 도산 선생이 직접 하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 이렇게 얘기합니다. 그런데 다른 쪽, 도산 안창호 전기에 가서는 물으니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건 겸양 탓 아니냐 이런 모호한 답변을 하거든요. 그런 국민들은 기록이 아닌 증언들은 교차비교를 해야 된다는 얘기죠. 그래서 그걸 삭제해야 돼요. 한 사람 입으로 잘못된 거죠.

◇ 김현정> 그런데 그렇게 명확히 윤치호가 작사한 거라면 왜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작자미상이었습니까?

◆ 김연갑> 그것은 정부 탓이죠. 국민정서상, 친일파인 윤치호가 작사했다면 고쳐야 된다.

◇ 김현정> 그런 여론이 있을 거니까?

◆ 김연갑> 그런 여론 때문에 이제까지 밀고밀고 온 거죠. 그러나 저는 명확하게 얘기합니다. 누구든 정서상으로 우리가 도산 안창호 선생을 택하죠. 그러나 역사 기록은 규명은 규명, 그거에 대한 해석과 평가는 다른 문제라는 것을 그건 제가 20년, 30년 전부터 견지해 온 사항입니다. 그리고 한마디 더 붙이면 흥사단 100주년 기념으로 이러한 국민을 대상으로 한 이런 편파적인 거는 안 되는 거죠. 이건 잘못된 겁니다.

◇ 김현정> 우리나라 노래로 그렇게 우리가 불러오고 배워온 애국가인데 작사가를 모른다는 게 좀 창피한 일이거든요. 그래서 이것을 시민단체들끼리 진상규명하고 논란 벌일 것이 아니라 정부 차원에서 정확한 규명도 있어야겠다. 그런 생각이 듭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양 쪽 의견 듣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뉴스조회 이용자 (연령)비율 표시 값 회원 정보를 정확하게 입력해 주시면 통계에 도움이 됩니다.

남성 33%
10대 0%
20대 0%
30대 33%
40대 0%
50대 0%
60대 0%
70대 0%
여성 67%
10대 0%
20대 33%
30대 33%
40대 0%
50대 0%
60대 0%
70대 0%

네티즌 의견

첫 의견을 남겨주세요. 0 / 300 자

- 관련 태그 기사

관심 많은 뉴스

관심 필요 뉴스

트로트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가수 '김호중'이 최근 교통사고를 내고 달아낸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는 가운데, 그의 소속사 대표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매니저에 김호중을 대신해 경찰에 출석하라고 지시한 이가 자신이라고 주장했다. 김호중은 지난 9일
1/3
모이자114

추천 많은 뉴스

댓글 많은 뉴스

1/3
공기주입식 놀이기구와 관련돼! 7월부터 강제 실시!

공기주입식 놀이기구와 관련돼! 7월부터 강제 실시!

일전에 국가시장감독관리총국(국가표준위원회)은 강제성 국가표준인 '공기주입식 놀이기구 안전규범'을 발표했다. 이 표준은 2024년 7월 1일부터 시행된다. 에어캐슬, 에어미끄럼틀 등은 어린이들에게 인기가 많은 놀이기구다. 최근 몇년동안 이러한 류형의 시설의 전

‘모멘트'를 확대하여 새로운 협력 추진

‘모멘트'를 확대하여 새로운 협력 추진

- 길림일보사와 한국강원일보사, 전략적 협력 협정 체결 5월17일, 길림일보사와 한국 강원일보사는 한국 강원도에서 친선관계 체결 30주년 기념행사를 개최하고 을 체결, 쌍방 협력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올해는 길림성과 한국 강원도가 우호적인 성도(省道)관계를 수

'동계아시안게임과 동행·생명 보호' 대회 자원봉사자 훈련 시작

'동계아시안게임과 동행·생명 보호' 대회 자원봉사자 훈련 시작

할빈 2025년 제9회 동계아시안게임은 북경 동계올림픽에 이어 중국이 개최하는 또 다른 중대한 국제 종합성 빙설대회로 할빈시적십자회는 동계아시안게임 보장에 참가하는 14개 대학의 6600명 자원봉사자에 대한 긴급 구조 훈련 임무를 수행했다. 5월 12일 첫번째 동계

모이자 소개|모이자 모바일|운영원칙|개인정보 보호정책|모이자 연혁|광고안내|제휴안내|제휴사 소개
기사송고: news@moyiza.kr
Copyright © Moyiza.kr 2000~2024 All Rights Reserved.
모이자 모바일
광고 차단 기능 끄기
광고 차단 기능을 사용하면 모이자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모이자를 정상적으로 이용하려면 광고 차단 기능을 꺼 두세요.
광고 차단 해지방법을 참조하시거나 서비스 센터에 글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