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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대대손손 화피창렬사릉원 찾으렵니다》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12.04.01일 23:30
장춘시 길림시 연길 사회단체 학생 대표 렬사추모활동 진행

새로 수건한 기념비앞에서 렬사들을 기리는 추모행렬

4월 1일 청명을 맞아 장춘시, 길림시, 연길시의 조선족사회단체 대표들과 학생대표 근 200명이 길림시 창읍구 화피창진에 있는 화피창렬사릉원을 찾아 기념비아래 묻힌 654명렬사들을 기리며 추모행사를 진행했다.

전날에 내린 눈으로 4월 1일의 날씨는 흐리고 찬바람까지 불어 몸이 떨리고 움츠러들었지만 렬사들을 추모하는 마음만은 뜨거웠다.

길림시조선족실험소학교의 리혜연과 장춘시조선족중학교의 오룡옥 학생대표는 《선렬들이 피로 바꾼 행복한 생활을 누리면서 우리는 불만을 토로할 때가 많았습니다. 선렬들이 고이 잠드신 이 자리에서 우리는 얼마나 철없음을 깊이 깨닫고있습니다. 오늘날의 행복을 위해 선뜻이 목숨바친 선렬들을 생각하면서 행복한 생활을 소중히 여기고 선렬들의 유지 이어받아 나라의 유용한 인재로 자라려 합니다. 렬사들은 우리들의 마음속에 세원진 영원한 기념비입니다》고 말했다.

추모행사에서 장춘시조선족차세대관심사업위원회의 김문관주임은 64년전인 1948년 2월 16일의 전오가자와 고점자의 가렬처절했던 전투를 회고하고나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동북인민해방군 독립 6사 길장제전역 렬사지묘> 기념비아래에는 654명 렬사들의 유체가 묻혀있습니다. 이들은 대부분 룡정, 화룡, 왕청, 안도, 훈춘 등지에서 참군한 나젊은 조선족군인들로서 새 중국의 탄생을 위해 목숨을 바쳤습니다. 654명중 470명렬사들의 이름을 찾았으나 184명은 아직 이름도 없습니다. 렬사들이 남긴 불후의 업적은 영생불멸할것입니다》.

원동북인민해방군 독립6사 경위련대 문화교원이였던 올해 84세 나는 리복룡선생은 당년에 전투에 참가했던 로전사들을 대표하여 연설을 했다.

그는 《우리 로전사들은 지금까지 비석에 이름조차 올리지 못하고 화피창렬사릉원에 묻힌 267명 무명렬사들의 이름을 찾아 이번 추모제상에 올립니다. 지난날 잡초가 우거지고 쓰레기가 날리던 릉원을 보면서 가슴이 찌져지는것 같았습니다. 장춘시와 길림시, 연변의 유지인사들의 노력으로 릉원을 수건하게 되여 오늘은 깨끗한 릉원에서 추모행사를 하게 돼 조금이나마 위안이 됩니다》고 눈에 눈물을 머금고 말했다.

이날 연변조선말방송애청자친목회 회원이고 로전사인 김금옥과 길림농업과학기술학원 고급직업학원의 대학생 대표도 발언했다.

새로 세운 비문

장춘시조선족차세대관심사업위원회, 장춘시사회과학기술협회, 장춘시조선족녀성협회, 길림성조선족경제과학기술진흥총회, 장춘시조선족중학교, 길림시조선족차세대관심사업위원회, 길림시조선족로인협회, 길림시조선족중학교, 길림시조선족실험소학교, 길림농업과학기술학원 고급직업학원, 연변조선말방송애청자친목회 대표와 연변로전사 대표, 렬사가족 대표 등 근 200명이 추모행사에 참가했다.

화환을 드리고있는 길림시조선족중학교 학생대표들

처절했던 전오가자와 고점자의 전투이야기를 듣고있는 학생과 사회인사들

연변에서 온 로전사대표들

《좋은 음식 드셔보지도 못하고… 많이 드세요》.제를 지내는 사회단체 대표들

릉원나무에 흰꽃을 달아주고있는 길림농업과학기술학원 고급직업학원 대학생들

[관련소식] 중국해방을 앞두고 1948년 2월 16일, 동북인민해방군 독립 6사 1000여명(대부분 조선족)이 장춘시와 길림시 구간에 있는 전오가자, 고점자에서 국민당군과 치렬한 전투를 벌였다. 이 전투에서 550명 장병들이 희생되였다.

1948년 4월 15일 전오가자와 고점자전투가 끝난지 2개월후, 길림성정부와 길림군구에서는 550명 장병들이 묻힌 화피창에 전국에서 처음으로 되는 대형 혁명렬사릉묘를 앉히고 부근의 100여개 렬사묘를 합장하고 7메터 높이의 기념비를 세워 희생된 렬사들의 령혼을 안위했다.

당시 동북군구 부사령원이며 길림군구 사령원이였던 주보중장군은 친필제사에 《영웅들의 이름과 정기는 천추에 영원하리》 라고 썼다. 사료에는 이 렬사릉원에 묻힌 렬사가 옹근 4년간의 해방전쟁에서 희생된 156사 렬사 총수의 근 절반을 차지한다고 씌여있다.

화피창렬사릉원은 1948년 4월 15일에 세워져 1981년 7월에 수건을 거쳤다고 하지만 60여년의 세월속에 관리와 수건이 따라가지 못해 헐망했다.

2008년부터 장춘시, 길림시와 연변의 조선족유지인사들의 노력으로 지난해에 재수건되였다.

편집/기자: [ 홍옥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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