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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퀼트의 멋 세계에 알리는 조선족 여성

[흑룡강신문] | 발행시간: 2013.02.01일 09:22

국제대회서 수차 수상…중국 퀼트업계의 일인자로 군림

  제자양성에 안깐힘, 가장 큰 염원은 중국 퀼트협회 설립

  (흑룡강신문=하얼빈) 인터넷 검색창에 '김원선'이란 세 글자를 입력하면 그녀와 관련된 수많은 검색기사가 뜬다. 그 중에서도 이 이름을 가진 퀼트예술가의 연락처를 알려는 카페나 제자로 되고 싶어하는 사람, 기예교류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들이 올린 글이 유독 눈에 띈다.

  김원선씨가 대체 어떤 손재주가 있길 래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녀와의 만남을 간절히 원하는걸까? 하지만 이들이 올린 글을 자세히 보면 궁금증이 곧 풀린다.

  김원선(65세, 조선족)씨는 중국 퀼트예술의 일인자로 불리며 국제적으로도 이름을 널리 알리고 있다. 그녀는 2차례 중국 국제가정용방직품 디자인대회상을 수상했으며 청화대학 예술학과의 객좌교수로도 임명된바 있다. 또한 지난 2007년 도쿄국제퀼트박람회에서 선보인 '차자언홍(姹紫嫣红)'은 2등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2010년 연초, 문화부 등 여러 부서에서 공동으로 주최한 '2010국수정화-민속문화축제'에서 선보인 김원선의 작품은 좋은 반응을 얻었으며 같은 해 퀼트복장차림으로 상하이국제퀼트축제에 참석한 김원선씨는 수많은 퀼트애호가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데 성공했다. 그때 수많은 복장 디자이너들이 모두 김원선과 합작하고 싶다는 의향을 드러냈다. 하지만 김원선씨는 "그저 간단한 옷만 만들 수 있을 뿐 복잡한 디자인은 할 줄 모른다"며 겸손하게 사양했지만 퀼트애호가들은 간단해도 독특한 풍격이 너무 매력적이라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퀼트예술이란 말 그대로 자투리 천을 한데 러프스티치해 이불, 방석, 휴대폰주머니, 동전지갑 등 일상용품을 만들어내는 수공예술을 말한다. 단순한 장식성을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장식화 등 예술품은 실용적인 특징까지 갖추었다. 유럽, 미국, 일본, 한국에서 퀼트예술은 이미 널리 유행되고 있으며 최근 연간, 퀼트예술은 중국에서도 점차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전에 김원선씨는 예술과는 거리가 멀었던 통계사일을 했지만 그때부터 퀼트예술에 대한 이해력이 남보다 뛰어났다. 김원선씨는 화가는 붓과 먹으로 종이에 그림을 그린다면 자기는 바늘과 오색실로 다양한 색깔의 천에 그림을 그리는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절대 예술가는 아니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작품창작에서는 희망도 함께 수놓아 가고 있다는 김원선씨, 그녀는 한평생 오색실과 함께 어우러지며 살았다고 말했다.

생동한 작품 창작에 안깐힘

  다수인들은 퀼트예술이 한 평면위에서 천을 잇고 그림을 수놓는 것이라 정적인 아름다움이 느껴진다고 말하지만 김원선의 작품을 보면 마치 살아숨쉬는 것처럼 생동하게 만들졌거나 심지어 3D효과가 생기기도 한다고 말했다.

  김원선씨의 '백화쟁염(百花争艳)'작품을 보면 눈부시게 아름다운 저녁하늘의 불꽃을 연상케 한다. 일부 사람들은 이 작품만으로도 김원선씨는 세계 퀼트대가로 되기에 전혀 손색이 없다고 했다.

  국제박람회에서 2등상을 수상한 '차자언홍'은 정교한 창작수법과 화려하면서도 과장된 색채운용방식, 한국 국기 태극팔쾌도의 창작성이 한데 어우러지며 개성과 격정으로 넘치는 작품으로 퀼트예술의 독특한 매력을 한껏 어필했다는 평을 받았다.

  1997년, 한국섬유박물관에서 중한일미 4개국 전시회를 열었는데 그때 중국에서 유일하게 김원선씨를 요청했고 그의 '차자언홍'은 2등상을 수상했다.

  김원선은 이 작품에서 보편적인 바늘질법이 아닌 '거꾸로 세 땀 박는(倒三针)' 독특한 수법을 사용했다고 말했다.

  김원선씨는 "외국 전시회에 참가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외국인들은 중국의 퀼트기술이 뒤진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며 "그래서 그때 독특한 '거꾸로 세 땀 박는(倒三针)' 수법을 사용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실 퀼트창작에서 보편적인 바느질법을 사용할뿐 '거꾸로 세 땀 박는(倒三针)'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면서 이러한 수법을 고집하는 것은 한걸음씩 물러나다가 결국은 앞으로 크게 전진하는 중화민족의 풍격을 작품에서 드러내기 위해서였는데 지금 일본이 나의 영향을 받아 '거꾸로 세 땀 박는(倒三针)' 수법이 아주 유행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퀼트의 문화적인 함의는 바느질법에 대한 운용뿐만 아니라 아주 세부적인 부분에 대한 디자인에도 감정이 깃들어 있었다.

  김원선씨는 퀼트이불을 펼쳐보이면서 "이 이불의 주제는 오색실에 감춰진 할머니의 꿈이다. 양쪽에 각각 24개의 작은 천조각이 있는데 각각 할머니의 오늘과 내일을 대표한다. 그리고 양쪽켠에 있는 18개 작은 천조각은 대대손손 부자가 되라는 상징이다. 이 2개의 큰 천조각은 손자의 부모이고, 일년 사계절 아버지와 어머니의 관심아래에서 하루하루 자란다는 것을 보여주며 바깥쪽은 자투리 천으로 꿰맨 것인데 할머니 한 평생의 꿈과 희로애락을 표현한다"며 작품에 깃든 깊은 뜻을 설명했다.

  김원선씨는 또 한땀한땀 바느질을 하는 것은 참을성을 키우기 위해서이고 한데 붙이는 것은 이웃사이, 형제자매사이에 서로 사이좋게 지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라고 늘 손자에게 얘기한다고 말했다.

  일본전시회에 참가했을 때 일본에서 25년간 퀼트지식을 가르친 일본인은 김원선씨의 작품을 보고 나서 눈에 보이는 기묘한 세계를 작품에 융합시키려는 노력은 했지만 김 선생처럼 한땀한땀의 바느질로 참을성을 키우고 서로 붙이는 것은 단결성을 육성한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며 작품마다 인성교육이 느껴지는 김 선생의 창작이념을 따라배우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56개 민족 어머니의 예술 이어가고 싶어"

  성적이 우수한 색채협회의 학생이 "남성 디자이너들이 디자인한 복장이 최고"라고 치켜세워자 김원선은 "여성들이 착용하는 장식품은 여성들의 눈에 들지 못하면 절대 착용하지 않기에 여성들의 물건은 반드시 여성이 만들어야 한다"며 "여성들은 애를 낳고 키우면서 모든 것을 묵묵히 후대들에게 전해주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어머니문화"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원선은 타이완의 여홍문화전시회에 대해 "그곳에는 100명의 어머니들이 함께 일할 수 있어 얼마나 좋은가. 그래서 어머니 협회를 조직하여 앞이 보이지 않는 어머니를 도와주고 싶었다. 암으로 앞을 보지 못하게 된 남편이 생명의 마지막 순간에 2분만이라도 햇빛을 보면 얼마나 좋겠는가며 괴로워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하얼빈에 와서는 어머니협회를 설립해 어머니의 예술을 대대로 전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또 56개 민족의 퀼트가 모두 아주 예쁘고 민족마다 특색이 짙을 뿐만 아니라 함유된 뜻 또한 다양하다고 말했다.

  동족 동자문의 4개 각은 동서남북을 가르키는데 나쁜 기운이 들어오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묘족의 동자문은 자녀가 길상여의하기를 바라는 뜻이 함유되어 있다.

  김원선씨는 "현재 56개 민족의 퀼트를 수집하고 있는데 이미 14개 민족의 퀼트를 찾았다"며 이런 것들을 한데 모아 중화민족 대단결의 퀼트로 만들어냄으로써 중국 퀼트예술의 정교함을 보여주고 싶은 속내를 털어놓았다.

  김원선씨는 현재까지 모두 무료로 퀼트창작을 가르쳐 주고 있다며 이로 퀼트 애호가가 많아지고 사람마다 자기 본민족의 물건을 만들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제 정부에서도 동족, 묘족, 몽골족들의 퀼트제작을 지원하고 있다.

  김원선씨는 "56개 민족의 퀼트 프로젝트를 실시하려는 것은 그저 함께 하는 친구가 필요해서이다. 많은 감상자들이 중국의 퀼트를 얘기할 때면 프랑스를 얘기할 때와는 전혀 다르게 그저 그런가 보다 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만약 중국에서도 여럿이 함께 전시회에 나간다거나 협회가 생긴다면 상황은 많이 달라질 것이다. 그래서 줄곧 협회를 설립하려고 동분서주하고 있는데 방직공업협회에서 퀼트색채예술위원회를 내올 예정이어서 희망이 보인다"고 말했다.

 통계사로부터 퀼트 전문가가 되기까지

  전에 김원선씨는 퀼트와는 전혀 연관이 없는 통계사일을 했었다. 어머니가 복장 재단사인 이유로 집에는 늘 자투리 천이 남아돌았다. 그때 퀼트를 만든다면 가족들이 기뻐하리라 생각하고 찻잔 깔개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때에는 젊었으니까 하루에 3개를 거뜬히 만들 수 있었다. 그렇게 장장 3년동안 만든 퀼트작품을 남에게 모두 선물했다.

  김원선은 전문적인 색채양성기구에 다닌적이 없지만 색채에 대한 이해력은 남달랐다. 생활가운데서 색채에 대한 경험을 조금씩 쌓았다는 그녀는 평소 길옆에 깔린 모자이크 타일 색갈의 조합에도 꼼꼼히 눈여겨 본다고 한다. 특히 색갈에 대한 남다른 민감성은 평소 관찰을 즐겨 하는 습관과 갈라놓을 수 없다고 말했다.

  퀼트를 하기 시작하면서 그녀는 관찰에 더욱 열중했다. 어딜 가든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다는 그녀는 화보책에 나온 색갈 조합을 잘 관찰했다가 더 아름다운 색갈이 나올 수 있는 조합을 연구했다고 한다.

  전문적인 훈련을 받지 않았는데도 퀼트에 남다른 재주를 가지고 있는 김원선씨는 퀼트를 잘 할 수 있는 또 다른 원인은 포기하지 않고 꿈을 이루기 위해 이를 악물고 달렸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수시로 가위, 바늘 등 도구를 챙겨가지고 다닌다. 어딜 가든 영감이 떠오르는 물건을 보기만 하면 모든 것을 제체놓고 가위질을 한단다.

  김원선씨의 작품은 모두 작은 원단을 이어서 만든 것인데 작품에 이용된 원단은 모두 옷을 만들고 남은 자투리 천이다. 그래서 김원선씨는 퀼트강의를 하면서도 학생들이 1m에 120위안하는 원단과 비싼 도구를 사용할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김원선씨의 학생들은 바늘, 자, 가위, 실에 몇 조각의 천만 있으면 김 선생의 강의에 참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원선씨는 "전부 자투리 천을 이용하기에 나의 작품에는 큰 천조각이 없다"며 "전에 어머니가 아주 작은 자투리 천도 버리지 않고 모두 이용했었는데 나도 그 전통적인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동안 그녀는 아침마다 야채시장으로 갔다. 앙파에서 까낸 껍질을 줏기 위해서였다. 양파껍질은 천연재료인데다 천조각에 염색하면 아주 고운 색깔이 나왔기 때문이다. 노란색 양파껍질이 짙은 갈색으로 염색되는 것에 야채상인들도 모두 놀라워 하면서 어떻게 양파껍질로 이렇게 고운 색이 나올 수 있냐며 그후부터는 아예 양파껍질을 모아놓았다가 주기도 했는데 답례로 그들에게 옷을 선물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단순 예술로 시작해 산업화 추진…다시 예술의 길 택해

  몇 년전, 김원선씨는 퀼트예술의 산업화를 추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렸다. 상하이국제퀼트축제에 참석했을 때 복장 디자이너들이 그녀의 퀼트에 관심을 보이며 퀼트를 사치품으로 만들 것을 제안했다.

  수공으로 제작한 물품의 산업화를 실현하기에는 어려움이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남녀노소 모두 그녀의 작품을 좋아했기에 그녀는 더욱 손을 놓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퀼트는 애호로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예술을 배우는 기회이자 경제적으로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던 그녀는 농촌에 남아도는 인력이 많은 점을 파악한 뒤 하루 40위안을 주며 퀼트작품 만들기에 나섰다.

  예술품수집가 왕즈루이(王子瑞)는 "현재 오랜세대 무형문화재 전승인들이 세상을 떠나면서 무형문화재의 전승에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은 시장경제와 한데 어우러지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재미삼아 물건을 만들어 마음을 주고 받았던 그제날과 달리 오늘날의 현대인들은 먹고 살아야 하는 현실적인 문제에 직면하게 되기에 퀼트예술의 산업화를 추진하는 것이 아주 잘 된 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후에 김원선씨는 장사를 하지 않고 그저 예술창작에만 전념했다. 이런 생각을 하기까지 중요한 계기가 있었다. 한국에서 열린 전시회에 참석했을 때 벌어진 일이다. 김원선씨가 만든 오색령롱한 퀼트작품을 본 참관자들은 이 모든 작품이 그녀가 꾸린 공장에서 만든 것이지 김원선씨가 직접 만든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던 것이다. 이런 오해를 받은 김원선씨는 새벽 3시에 천을 구입해와서는 전시회 현장에서 직접 퀼트를 만들었다. 그제서야 참관자들은 모두 감탄하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그 뒤로 전시회는 연속 5년동안 김원선씨를 특별 손님으로 요청해 강의를 조직했으며 김원선씨는 그로 얻은 수입을 전부 유방암환자에게 성금으로 보내주었다.

  김원선씨에게는 56개 민족의 퀼트예술을 창작하는 것보다 더 큰 꿈이 있었다. 바로 학생들을 양성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김원선씨는 특별히 학생을 모집하지는 않는다. 어느 곳에서든지 퀼트애호가를 만나면 가르쳐주곤 했다. 유일하게 가장 오래 수업을 받은 학생이 칭화대학 복장염색학과의 연구생(하얼빈인)이다. 그가 졸업할 때 만든 퀼트가 높은 평가를 받으면서 후에 중앙미술학원의 교원으로 취직하게 되었다. 이 학생은 가정형편이 어려운 데도 퀼트에만은 남다른 열정을 보였고 그의 열정과 인내심에 감동받은 김원선씨는 그를 제자로 삼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김원선씨는 퀼트를 배우는 것이 어려운 일만은 아니라고 말했다. 2달 동안에 7~8번만 와서 배우고 혼자 열심히 체득하고 연습한다면 다양한 도안을 모두 만들어 낼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의 가장 큰 염원은 중국에 퀼트협회를 설립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원선씨가 중국 퀼트협회를 하루라도 빨리 설립하려고 서두르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세계는 이미 중국의 퀼트시장에 눈독을 들인지 오래다. 일본의 기라그다퀼트프로덕션이 중국에 진출한지 7년이 되었고 지난해에는 타이완의 업체들도 내지로 진출했는데 이들은 모두 도구를 팔기 위해서였다. 특히 상하이에서 한국, 일본, 중국 타이완, 프랑스에서 온 기업들이 활발히 운영되고 있는 상황이다.

  10여년 동안 여러 부서, 문화부, 방직공업협회, 가정방직협회, 복장전문위원회를 방문하면서 그토록 퀼트협회를 설립하려고 안깐힘을 쓴 김원선씨였지만 중국 퀼트의 발기인이라는 칭호는 한사코 사양하며 그저 중국 퀼트 수석전문가일뿐이라고 자세를 낮췄다.

 퀼트예술 중국 문화와 갈라놓을 수 없어

  퀼트로 인해 김원선은 수많은 외국 동업자들과 교류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김원선은 그들과 퀼트예술, 참가작품뿐만 아니라 중국문화에 대한 이해, 고수와 전승에 대해서도 깊이있는 교류를 이어갔다.

  2006년, 한국에서 열린 국제연구토론회에 참석했을 때의 일이다. 그 당시 프랑스의 예술가가 전자형(钱字型) 도안이 유럽에서 중국으로 들어왔다고 주장했다. 이 말을 듣고 도저히 잠자코 있을 수가 없었던 김원선씨는 당나라 때 이미 이런 도안이 있었고 그때 벌써 아주 정교하게 만들어졌기에 유럽에서 온 것이라고 보면 안된다고 쐐기를 박았다. 그러면서 1992년 신장 쿠차박물관에서 본 '얼굴덮는 수건'의 도안이 바로 전자형이며 한국에서는 이를 여의문이라고 하는데 만드는 방법이 조금 다를 뿐이라고 했다. 더욱이 이같은 전자형은 현재까지 중국에서 본 5개 도안의 한가지에 불과하기에 응당 중국의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현재 외국은 면으로 된 원단을 교수용이나 창작용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다수 중국인들도 그러하다. 하지만 김원선씨는 면이 아닌 견사를 원단으로 할 것을 제창했다. 김원선씨는 비단의 나라라는 미명을 갖고 있는 만큼 중국의 비단이 아주 유명하다며 그래서 교수를 하면서 학생들에게 중국의 비단, 식물날염염색기술을 이용해 퀼트를 만들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식물날염염색기술은 '본초강목' 같은 중국의 문헌자료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오래된 기술이라고 했다. 이제는 외국도 견사를 원단으로 사용하기 시작했지만 전시회에 참석하는 외국인들은 아직도 면 퀼트를 고집한다. 그러다 보니 견사로 만들어진 김원선씨의 퀼트가 더 우아하고 기품있어 보여 인기가 많다고 한다.

  이제는 외국인들에게 중국인도 퀼트를 잘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다는 김원선씨, 하루하루 퀼트의 세계에 빠져 살아가는 예술가의 당찬 포부를 잘 표현해 주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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