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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미로’ 골목길에 그윽한 한국 예술의 향기…경남 통영 ‘토영이야길’

[기타] | 발행시간: 2012.03.02일 21:11

벽화마을로 유명한 동피랑 골목. 동피랑은 옛 통영성 세 개의 포루 중 동포루가 있던 곳이다.

경남 통영은 사랑의 미로다. 청마 유치환은 ‘행복’이라는 시에서 “사랑했으므로 행복하였네라”라고 썼다. 청마가 사랑했던 정운 이영도 여사는 “너는 저만치 가고 나는 여기 서 있는데…애모는 사리로 맺혀 푸른 돌로 굳어라”라는 구절의 ‘탑’이라는 시로 대답했다. 청마는 시조시인 정운에게 첫눈에 반해 20여년간 5000여통의 편지를 건넸다. 그러나 흔히 상상하는 로맨스는 아니다. 당시 유치환은 유부남, 이영도는 과부였다. 유치환의 연정에 이영도는 안으로는 뜨겁게 겉으로는 아닌 척 자신을 다스렸다.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가 얽힌 통영 중앙동의 골목을 ‘청마거리’라고 부른다. 예술적 감성과 정신적 교감을 나눴던 이들의 사랑은 지금의 정서로 보면 풋내가 날 정도다. 풋풋한 사랑만큼 봄을 닮은 게 있을까. 이른 봄의 정취를 찾아 통영에 들렀다.

통영은 예술의 도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인 유치환·김춘수, 소설가 박경리, 음악가 윤이상, 화가 전혁림 등 근현대를 대표하는 걸출한 예술가가 통영 출신이다. 통영 출신이 아니어도 통영을 스치고 간 예술인은 하나같이 통영 예찬론을 펼쳤다. ‘향수’의 시인 정지용은 “통영과 한산도 일대 풍경 자연미를 문필로 묘사할 능력이 없다”고 할 정도였다. 이쯤되면 통영은 ‘색상·악상·시상·영상’을 불러일으키는 한편의 교향곡 같은 땅이다. 그런데 이러한 예술적 감성은 단편적인 것이 아니다. 1945년 9월15일 설립된 ‘통영문화협회’ 구성을 보면 대표 유치환, 간사는 윤이상, 전혁림, 김춘수 등이었다. 통영의 예술인들은 분야를 넘나들며 소통하고 성장했다.

평면적으로 보이는 사랑과 예술 이야기는 통영 골목을 걸어야 입체적으로 살아난다. 통영에서는 이 길을 ‘토영이야길’이라 부른다. 통영 사람에겐 딱딱한 느낌의 ‘통영’보다는 부드러운 어감의 ‘토영’이 입에 익다. ‘이야’는 언니나 친한 이를 정감있게 부르는 말이다. 친한 이들이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며 걸으라는 ‘토영이야길’은 1코스가 10㎞, 2코스가 15㎞에 달한다. 1코스는 300년 역사를 지닌 통제영을 중심으로 문화예술인의 자취를 돌아볼 수 있는 길이다. 미륵도길인 2코스는 한려수도를 조망하는 곳이다.

통영에서 남쪽으로 21.5㎞ 떨어진 섬 장사도에 있는 청마 유치환의 ‘행복’ 시비.

1코스의 시작점은 강구안 앞의 문화마당이다. 중앙·항남동 등 일부 해안을 옛날부터 ‘강구안’이라 불렀는데 ‘개울이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입구’라는 뜻이다. 통영은 조선시대 충청·전라·경상 삼도수군의 통제영이 있던 곳이다. 1604년 설치돼 1895년 폐지될 때까지 통제영은 한반도 남쪽의 해상을 지키던 요새였다. 통영의 이름은 통제영에서 유래됐다. 강구안은 현재 통영항으로도 불린다.

문화마당이 있는 땅은 원래 바다였다. 일제강점기 바다를 매립한 곳에 중앙시장이 들어섰다. 중앙시장 동쪽 골목으로 김춘수 생가, 동피랑 벽화마을, 유치환 생가터가 펼쳐진다. 중앙시장에서 서쪽으로 향하면 통영 중앙동우체국이 나온다. 이곳에서 충무교회까지를 ‘청마거리’라 일컫는다. 이곳에서 청마 유치환이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 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라며 시 ‘행복’을 써내려간 것이다.

당시 이영도는 딸과 함께 우체국 골목에 있는 이층집에 머물렀다. 충무교회 안에는 유치환의 부인이 운영하던 문화유치원이, 바로 옆에는 사택이 있었다. 유치환이 회장을 맡았던 통영문화협회 사무실도 이곳이었다. 유치환은 이영도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나는 오늘 당신 있는 곳과 내 있는 데가 불과 500~600m밖에 상거하지 않음을 알고 새삼스레 놀랐습니다”라고 말한다. 지척에 임을 두고 사랑의 편지는 우체국을 통해 서로에게 건네졌다. 미로를 걷는 것만 같던 둘의 사랑은 1967년 유치환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면서 알려졌다. 20년 동안 편지를 보관했던 이영도는 200여통의 편지를 추려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라는 시집을 출간한다.

청마거리 주변에는 김춘수 ‘꽃’ 시비와 시조시인 초정 김상옥 거리가 펼쳐진다. 시내 중심가에 시와 그림이 즐비하다. 통영에서 배출한 예술가가 워낙 많다보니 골목 하나만 돌아나서도 흔적을 남긴 예술가의 이름이 바뀐다. 청마거리 북쪽에는 통제영 세병관이 있다. 통제영의 중심 건물로 ‘은하수를 끌어와 병기를 씻는다’는 뜻의 현판이 붙어있다. 일제가 통제영을 폐쇄하고 난 뒤 세병관 건물은 학교로 쓰이기도 했다. 한국미술협회 경남지회 서유승 회장(58)은 “옛날에는 건물이 부족해 세병관을 교실로 썼다고 해요. 박경리 선생도 초등교육을 이곳에서 받았다고 하죠”라고 말한다. 통제영을 중심으로 통영성이 구축돼 있었다. 벽화마을로 유명한 동피랑은 ‘동쪽에 있는 높은 벼랑’이라는 뜻의 토박이말이다. 통영성 세 개의 포루 중 동포루가 있던 곳이다.

박경리 생가 표지판. 현재 다른 주민이 살고 있어 생가 내부는 볼 수 없다.

통제영 서쪽 골목을 걸으면 박경리의 발자취를 따라갈 수 있다. 옛 통영성의 4대문 가운데 하나였던 서문으로 이어지는 가파른 길을 ‘서문고개’라 부른다. 이 고개를 넘어 좁은 골목 안에 박경리 생가가 남아있다. 현재는 주민이 살고 있어 건물 안은 볼 수가 없다. 사람 한두명이 겨우 지나는 좁은 골목을 따라 박경리 소설 ‘김약국의 딸들’이 펼쳐진다. 소설에 나오는 ‘간창골’ 지명도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간창골은 관청이 있던 골목을 뜻하는 말이다. 통영성 내 아홉개의 공동우물이 지금도 남아있는데 주민들은 ‘간창골새미’라고 부른다. 간창골 좁은 골목에서 성장한 박경리는 죽어서야 고향 땅에 돌아왔다. 현재는 바다가 보이는 미륵산 기슭에서 영면하고 있다.

1코스는 충무공 이순신을 모시는 사당인 충렬사와 이중섭이 작품활동을 하던 곳을 비롯해 윤이상 기념공원, 서호공원, 남망산 조각공원 등을 포함한다. 하루가 족히 걸리는 코스다. 넉넉잡고 하루를 더 머문다면 2코스가 이어지는 미륵도를 둘러봐야 한다. 차가 지날 수 없는 좁은 길인 1코스와 달리 2코스는 차로 다닐 수 있다. 전혁림미술관과 박경리 묘소, 용화사, 미륵산 정상을 아우르는 길이다.

케이블카를 타고 미륵산 정상에 오르면 알알이 바다에 박힌 크고 작은 섬을 만난다. 바다를 품은 땅 ‘통영’ 앞바다에는 526개의 섬이 있다. 1004개 섬을 품은 신안 다음으로 국내에서 섬이 많은 땅이다. 통영 앞바다 풍경을 보고 반하지 않을 이는 없다. 예술과 사랑을 키우던 통영 골목의 정취는 남쪽 바다와 섬으로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여행길잡이

통영 최초의 서양화가 김용주가 살던 곳. 지금은 터만 남았다..

■ 토영이야길은 2코스로 나뉘어 있다. 1코스는 예술의 향기길이라 불린다. 강구안 문화마당에서 출발해 남망산 조각공원, 김춘수 생가, 동피랑 벽화마을, 유치환 생가, 통영세병관, 박경리 생가, 윤보선 대통령 부인인 공덕귀 여사 생가 등을 포함하는 길이다. 전체 10㎞ 길이로 4시간 정도 소요된다. 차로 갈 수 없는 좁은 골목이 많기 때문에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천천히 걸어다니는 것이 편하다..

■ 2코스는 미륵도길이다. 통영의 피카소라 불리는 ‘전혁림’ 미술관과 박경리 묘소, 김춘수 유품전시관, 미륵산 등을 둘러보는 코스다. 토영이야길은 혼자서 찾기 힘든 곳도 많다. 매주 토·일요일 오전 10시에 해설사와 함께하는 토영이야길 투어가 열린다. 문의 (055)650-4613

■ 봄철 통영 먹거리는 굴 요리가 유명하다. 전국 굴 생산의 70% 이상이 통영산이다. 통영 어느 식당을 가도 생굴이 반찬으로 나온다. 멍게도 제철이다. 도다리쑥국, 볼락김치(사진), 오미사꿀빵, 충무김밥 등도 맛볼 것.


<글·사진 이윤정 기자 y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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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티즌 의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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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동생도 통영에서 근무하고 있는데..아름다운 곳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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