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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세아지역의 곰 토템 신화전설 비교연구 서설/김관웅

[중국조선족문화통신] | 발행시간: 2009.08.14일 12:23
1. 들어가는 말

미국의 인류학자 호웰의 연구에 따르면 “곰문화대”(혹은 곰문화구)는 그 분포가 아주 넓다. 스칸디나비아 반도로부터 시작하여 북유렵, 동유럽, 동북아시아 그리고 베링해협의 에스키모인들이 살고있는 드넓은 동토대와 인디안들이 살고 있는 북아메리카대륙을 포함하여 거의 전반 북반부가 “곰문화대”에 속한다.1) 그러나 이 “곰문화대”에서 알타이어계 만-퉁구스어족에 속하는 원시 샤만 문화에서 “곰문화”는 가장 보편적이고 가장 전형적인 상태를 보이고 있다.

중국과 일본의 고고학자들은 1930년대부터 장성 밖의 내몽골 적봉(赤峰, 지금 내몽골 昭烏達盟에 있음)에서 신석기 시대의 유적을 발굴하고 그것을 “홍산문화(紅山文化)라고 명명했다. 이 지역에 살았던 원시인들은 이미 정착하여 농경을 위주로 하면서도 축목(畜牧)과 어렵(漁獵)을 겸한 경제생활을 영위하였다. 1970년에 이르러 이 지역과 인접한 중국 요녕성 서부에서도 육속 지금으로부터 5천 500여 년 전의 제단과 “여신사당”을 비롯한 옥기(玉器), 동기(銅器) 등을 발굴하였는데 당시의 가장 중요한 신앙대상이 곰 토템이다. 그런데 이러한 옥기와 동기들은 곰 토템 숭배와 연결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1500년도 썩 지난 후에 나타난 은상(殷商)시기의 옥기들과 한 계열에 속하는 것들임이 판명되었다. 이리하여 중국의 고고학계, 사학계, 신화학계에서는 중국 동북부지역의 원시문화에 새롭게 인식하고 새롭게 평가하며 아울러 동북아세아 문명의 기원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려는 조짐이 일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중국신화학회 회장 섭서헌(葉舒憲)의 『곰토템-中華祖先神話探源』(2007년).『神話意象』(2007년)같은 저서들이다.

특히 곰 토템 숭배는 이 중에서도 가장 주목을 받고 있다. 1972년 이래 내몽골 적봉과 료녕성 서부 지구에서 C자룡(C字龍)을 육속 발굴하면서 처음에는 그것을 원시인들의 돼지토템과 관련지어서 저룡(猪龍)이라고 인정하던 데로부터 지금은 원시인들의 곰 토템과 관련지어서 웅룡(熊龍)이라고 인정하고 있다. 이런 인식상의 전변을 가져오게 된 계기는 1980년대 초에 요녕성 서부의 우하량(牛河梁)의 5500년 전의 여신사당에서 흙으로 빚어서 굽어낸 곰 머리와 곰의 발을 발견하게 되면서부터였다. 중국의 고고학자들은 적어도 5500년 전의 우하량(牛河梁)문화의 주체인 원시인들은 곰을 신(神) 내지는 주신(主神)으로 섬기고 있었다고 인정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중국의 섭서헌 같은 신화학자는 아직은 원시모계사회에 처해 있었던 홍산문화 내지는 요녕성 우하량 문화의 창조주체가 사당에서 모시고 있었던 “동방의 비너스” 는 “곰녀신”이였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2) 물론 당시에 다신적인 원시신앙형태인 샤만 신앙이 위주로 되어있었을 5500년 전 문명의 려명기에 있어서 곰은 결코 유일한 숭배 대상만은 아니었을 것이라고 사료된다. 곰 이외에도 돼지, 사슴, 새 같은 것은 홍산문화 내지는 우하량 문화창조 주체의 중요한 숭배대상이었을 것이다.3)

그러면 왜 동물 상징들 중에서 곰의 문화상징의미가 이다지 중요하였을 까? 이 점에 대해 김바타스는 석기시대의 예술조형물들 중에서의 곰의 형상에 대해 다음과 같은 문화적인 해석을 한 바 있다.

“우주의 양육자의 형상으로의 곰의 역사는 구석기시대의 후기로까지 소급되어 올라간다. 그 때 사람들은 1년에 한 번씩 동면(冬眠)했다가는 다시 깨여나는 곰의 생활패턴을 꼭 관찰했을 것이라고 사료된다. 그리하여 곰은 죽음과 재생의 완미한 상징물로 되었을 것이다. 곰은 동면상태에 들어가면 상징적으로 죽음의 세계에로 들어가게 되고, 동굴에서 다시 소생하여 기여 나올 때는 상징적으로 재생을 하게 되는 것이다.……곰은 동굴에서 기여 나올 때 생기발랄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생명인 새끼들도 함께 거느리고 나타난다. 암곰들은 동굴 속에서 새끼를 낳아서 젖을 먹어서 길러내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곰이 겨울에 동면하는 것을 죽었다고 여겼던 것이다. 이리하여 곰은 생육, 죽음과 재생의 전반 과정을 대표하게 되었다. 곰이 자연스럽게 생육 여신의 일종 동물 화신으로 된 것은 이상할 것이 없다.”4)

김바타스가 해석한 것처럼 곰 토템이나 곰 토템 신앙을 바탕으로 신화나 전설은 “죽음과 재생(death and rebirth)”이라는 신화적 원형이다. 그리고 이러한 신화적 원형은 당시 처했던 모계사회 속에서 곰과 여신이 통일을 이루어 흔히 “곰 여신”으로 나타나게 되는데, 이러한 여신에 대한 상상은 곰이 서식하지 않거나 또한 서식하더라도 동면을 하지 않는 고장을 제외한 수많은 지역들에서 보편적으로 존재했던 원시신앙이었던 것이다.

3. 중국 동북 경내의 만-퉁구스 여러 민족과 조선민족의 곰 토템 숭배와 관련되는 신화와 전설들에 대한 비교연구

1) 조선민족의 곰 토템 숭배와 관련되는 신화와 전설들

조선민족의 곰 토템 숭배와 관련되는 신화와 전설들은 조선민족의 민족적 이동이라는 대배경속에서 연구해야 함은 이미 선행학자들이 제기한 문제이다. 조선이나 중국 문헌의 기록이나 고고학적인 자료로부터 우리는 조선민족의 문화 창조의 주체는 동아시아 수렵부족들의 문화로부터 점차 농경문화로 전변하면서 동시에 지역적인 이동을 거듭하고 다시 기마민족의 문화까지 가미되면서 이루어졌다. 고조선 멸망이후 많은 사람들이 조선반도 남부로 이동해 나가고 그 후 나타난 부여라는 고대국가로 고구려가 분리되어 나가고 다시 고구려에서 백제가 분리되어 나간 역사만 보아도 이 점은 명료하게 드러난다. 고구려는 후에 부여를 멸망시키고 전반 부여를 통제하기는 했으나 부여의 적지 않은 부분은 숙신으로부터 발전하여 내려온 물길(勿吉) 등과 결합하여 말갈(靺鞨)을 형성하였다. 말갈은 다시 흥안령, 흑룡강, 송화강, 장백산 등 넓은 지역에서 활동하다가 썩 후세에는 두만강 유역에까지 확장하여 나오면서 여진, 만족으로 발전했다. 바로 이러한 까닭에 고조선이나 그 후속 국가들인 고구려, 백제, 신라 등의 신화나 전설 속에 나타난 곰 토템 숭배의 흔적들이 알타이어계에 속하는 만-퉁구스 여러 민족의 신화, 전설들 속에 나타난 곰 토템 숭배의 흔적들과 서로 같거나 사로 통하는 요소가 존재한다는 이 견해에 대해 크게 반론을 제기할 사람은 없다. 그래서 중국의 신화학자 섭서헌은 다음과 같이 지적한바 있다.

“단군신화는 웅녀조상 유형의 이야기로서 우리나라의 어룬춘, 어원커인의 곰토템신화와 마치도 한 모형에서 뽑아낸 것 같은바 그 문화적 연원(淵源) 면에서의 동원성질(同源性質)은 아주 분명하다. 그런데 더 깊이 탐구해야 할 것은 퉁구스계의 곰 토템 신화가 황제집단이나 황제족의 후예의 문화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이다. 사실 인류학자들이 제기한 중원 퉁구스인의 가설이나 고고학자들이 제기한 홍산문화가 바로 황제족문화라는 가설이나 모두 조선단군신화의 발생배경에 새롭게 이해하는 계기를 제공하였다. 그것은 바로 황제족으로부터 영진족(嬴秦族)의 중화문화의 주간민족은 원고시기에 중원으로부터 북방의 퉁구스인으로 직접 연결되어 동일한 주체를 이루었다는 점이다. 이리하여 황제족과 곰 토템 사이의 관계이든지 조선의 조상신화와 곰의 관계이든지 동일한 퉁구스문화 원류의 범위 내에서 사고해야만 하게 되었다. 그 결론은 사람들의 생각밖일 뿐만 아니라 또 정리(情理)속에 있는 것이다. 즉 곰 토템 신앙 및 그 신화적인 서사는 황제-화하민족과 조선-한민족의 원고의 문화기억을 연결시키는 공동한 유대이다.”1)

섭서헌의 견해에는 합리한 부분이 적지 않지만 아직까지는 이런 결론을 내리기에는 시기상조하다고 인정한다. 그것은 피상적으로 “문화적 연원(淵源) 면에서의 동원성질(同源性質)”을 운운하기에 앞서서 이 양자에 대한 구체적이고 실증적인 연구를 착실하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구체적이고 상세한 실증적 연구는 섣부른 결론에 비해서는 아주 빈약한 실정이다. 바로 이런 점을 감안하여 필자의 지도하에서 차해봉 박사가 지금 이런 실증적인 연구를 착실하게 추진하고 있는 중이다.

동아시아지역의 여러 민족의 신화전설 중에서 가장 일찍 그리고 가장 완정하게 기록된 곰 토템 관련 신화나 전설은 문화가 상대적으로 일찍 발달한 조선민족의 문헌적 자료에서였다.

조선민족의 문헌적 자료에서 곰 토템신앙을 바탕으로 하는 곰 토템 신화가 가장 일찍이 기록되어 있는 문헌은 『삼국유사』2)이다. 단군신화라고 불리는 이 신화는 조선민족선민들이 태고시절에 갖고 있었던 곰 토템신화가 조상숭배와 밀접한 련관성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후세의 고대국가창건과 연관되어 왕권신화의 형태로 변화되었다.『삼국유사』의 기록은 비록 아주 소루하지만 그래도 아주 명료하게 암곰이 조선민족의 토템과 조상으로 된 구체적인 과정을 해석하였다. 단군신화에서 나타난 천신(天神)은 조선민족이 주신교(主神敎)단계에 들어선 이후의 산물이라고 사료되며 특히는 편찬자 일연이 불교의 승려였던 까닭에 불교적인 영향이 다분하게 보인다. 그러므로 천신으로 나타난 제석 환인의 아들인 환웅은 반드시 썩 후세에 첨가되고 부연된 부분으로서 곰 토템 신화적 모티프는 그보다 훨씬 고대적이고 원형적인 부분이라고 사료된다. 하늘 신과 암곰의 결합이 원형이라기보다는 사람과 암곰과의 결합이 원형이였을 것이다. 모권제 사회에서의 주신은 여신이었음은 많은 모계씨족단계에 처했던 원시유적들에서 나타나는 데, 료서(遼西)건평현(建平縣) 우하량(牛河梁)의 여신사당에서 진흙으로 빚어 만든 곰의 발이 출토되어 5,500년 전의 원시인들이 모셔온 여신은 바로 웅녀신(熊女神)이였을 가능이 많다고 추측하고 있다.3) 이 지역은 고조선의 오랜 활동지역이였던 요동(遼東)지역과 직접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각별히 우리의 주목을 끈다.

고조선 이후의 조선민족의 고대 국가들에 관한 문헌기록들에서는 단군신화처럼 아주 분명한 곰 토템 신화는 보이지 않지만 곰과 관련된 조상숭배의 관념을 내포한 전설이나 민담 같은 것들이 잔존해 있다. 그 사례를 몇 개만 들어 보기로 하자.

『삼국유사』중의 “가락국기”의 기록에 의하면 가락국의 시조 김수로 왕의 왕비 허황옥은 꿈속에서 곰을 본 후 태자 거등공(居等公)을 낳았는데, 이 거등공이 후에 가락국의 제2대왕이 되었다고 한다.4)

『삼국유사』중의 “대성효2세부모”의 기록에 의하면 신라 모량리의 김대성은 경주 부근의 토함산에서 곰을 한 마리 잡았는데, 그날 밤 꿈속에서 나타나서 그를 잡아먹으려 했다. 김대성이 용서를 빌자 그 곰은 용서해 주는 조건으로 김대성더러 자기를 위해 불사(佛寺)를 하나 지으라고 요구했다. 그래서 김대성은 곰을 잡은 토함산에 장수사(長壽寺)라는 절을 지었다고 한다.5)

백제는 북방에서 발원한 고구려와 많은 문화적인 동원성(同源性)을 갖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곰 토템 숭배의 원시문화적인 요소가 가장 돌출한 사례이다. 백제가 고구려의 침공으로 한강 유역의 많은 땅을 잃고 기원 475년에 천도한 고장의 이름을 웅진(熊津)이고 웅진을 지나서 남쪽으로 흐르는 강도 웅천(熊川)이였다. 이는 신성한 곰토템 숭배의 신호적 기호임이 분명하다. 1972년, 한국 충청남도 공주(즉 웅진)에서 이를 증명하는 석조(石彫) 웅신상(熊神像)이 발굴되었다. 지금도 충청남도 공주 지방에는 유명한 웅천(지금의 금강)의 나루터를 빙자하여「곰나루전설」이 유전되고 있으며 지금도 공주에는 곰나루전설 유래비가 세워져 있다.

한 젊은 어부가 강변에서 고기를 잡다가 암곰한테 잡혀서 산속의 동굴 속에 갇히게 된다. 하여 그 어부는 암곰과 살아서 절반 사람이고 절반 곰인 새끼 둘을 낳게 된다. 후에 어부는 암곰이 새끼 둘을 데리고 먹을 것을 찾으려 나간 틈에 도망을 치는데 이를 알고 암곰이 쫓아온다. 어부는 막다른 아래에는 강물이 흐르는 벼랑가에 이르게 되자 뛰어 내린다. 마침 뗏목이 강물로 떠내려 와서 어부가 면바로 뗏목위에 떨어져 내리자 암곰은 가지 말라고 애원한다. 어부가 기어코 뗏목을 타고 도망을 치자 암곰도 새끼들을 강물에 처넣고는 자기도 벼랑에서 뛰어내려 죽었다고 한다.6)

한국에서 지금도 유전되고 있는 이「곰나루전설」은 어룬춘족의 곰 토템 신화나 전설과 많은 유사성을 갖고 있다.

2) 어룬춘족의 곰 토템 숭배와 관련되는 신화와 전설들

어룬춘족의 곰 토템 숭배와 관련되는 신화와 전설들은 아주 많지만 가장 대표적인 것은 「젊은 사냥꾼과 암곰의 전설」,「곰의 전설」7) 등이다. 특히 「젊은 사냥꾼과 암곰의 전설」은 한국 충청남도에서 유전되는 중에서 「곰나루전설」과 거의 완전히 일치하다. 다만 다르다면 행위의 주체자인 총각의 신분이 한국에서는 어부인데 어룬춘의 전설에서는 사냥꾼이라는 것과 마지막에 도망치는 사냥꾼에게 암곰이 새끼를 두 쪽으로 찢어서 절반은 자기가 가지고 절반은 총각에게 던져주었는데, 사냥꾼이 가진 반쪽이 어룬춘 사람이 되었다는 세부만 좀 다를 뿐이다.

「곰의 전설」의 이야기 줄거리는 아주 간단하다.

한 어룬춘족 젊은 색시가 오른 손목에 붉은 색 나는 팔찌를 끼고 산속에 들어가 산열매를 뜯다가 날이 저물어 길을 잃고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남편이 아무리 기다려도 집에 돌아오지 않으니 산속에 들어가서 아무리 헤매도 찾지 색시를 찾지 못했다. 날이 가고 달이 바뀌자 산속에서 이 색시는 점차 암곰으로 변했다. 세월이 많이 흘러 지난 뒤에 그 남편이 산속에서 곰 한 마리를 때려잡고 보니 암곰이었는데, 그 암곰의 오른쪽 앞 발목에 붉은 색 나는 팔찌가 끼여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젊은 사냥꾼과 암곰의 전설」이 암곰과 인간세상의 남자와의 결합한 “인웅상합(人熊相合)”의 모티프를 갖고 있다면「곰의 전설」은 모티프는 여자가 암곰으로 변한 “인화웅(人化熊)”의 모티프를 갖고있다. 비록 모티프가 다르기는 하지만 두 전설 속에 내포되여 있는 “사람과 곰의 동일성”이라는 이 신화관념은 같다. 특히「젊은 사냥꾼과 암곰의 전설」은 태고시절의 곰 토템 숭배의 원시관념의 흔적이 역연하게 보이고 있어서 참으로 흥미롭다. 즉 어룬춘족은 암곰의 후예라는 이 토템관념은 조선의 단군신화에서 보이는 토템숭배의 신화원형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3) 어원커족의 곰 토템 숭배와 관련되는 신화와 전설들

어원커족의 곰 토템 숭배와 관련되는 신화와 전설들 중에서 「곰은 왜 풍장을 하는가?」,「모르한과 검은 곰」등이 비교적 널리 유전되여 있다. 이 중에서「모르한과 검은 곰」만 소개하기로 한다.

옛날 옛적에 흥안령에 모르한이라는 사냥꾼이 살았다. 어느 날, 모르한은 깊은 산속에 들어가 사냥을 하다가 검은 곰이 한 노인을 때려눕히고 해치려 하는 것을 발견했다. 모르한은 용감하게 달려가서 곰에게 덮쳐들었다. 그리하여 노인은 사경에서 벗어났지만 모르한은 곰의 발톱에 얻어맞아 정신을 잃고 쓰러지고 말았다. 그 검은 곰은 모르한을 동굴 속으로 안아왔다. 곰은 동굴을 큰 바윗돌로 막아버리고는 모르한과 같이 살았다. 후에 그 암곰은 쌍둥이 오랍누이를 낳았는데 몸뚱이에는 검은 털이 더부룩하게 돋아 있었다. 암곰은 모르한이 도망을 칠까봐 한발자국도 떠나지 않았다. 새끼들이 크자 모르한은 산속에 데리고 들어가서 놀아주기도 하니 그제야 암곰은 시름을 놓았다. 어느 하루, 모르한은 산 아래의 강가에 배 한 척이 떠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배를 타고 도망을 쳤다. 암곰이 다급하게 달려와서 가지 말라고 애타게 불렀지만 모르한이 탄 배가 멀리로 사라지자 암곰은 괴성을 지르면서 새끼들을 찢어 죽였다. 8)

이 이야기는 우에서 소개한 한국의 충청남도 공주지역에서 유전되어 온 「곰나루 전설」이나 어룬춘족의「젊은 사냥꾼과 암곰의 전설」과 동궤의 전설로서 역시 조선의 단군신화에서 보이는 토템숭배의 신화원형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4) 허저족의 곰 토템 숭배와 관련되는 민담들

허저족의 민담들 중에는 토템 숭배와 관련되는 이야기들이 적지 않다. 그전형적 사례를 하나만 들어보기로 하자.

한 여인에게 새 아들이 있었다. 그런데 맏이와 둘째가 수림 속으로 들어가더니 돌아오지 않아 셋째 아들을 찾으러 보냈더니 역시 돌아오지 않았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자 그 여인은 강변에서 울면서 아들들을 불렀다. 이때 갑자기 곰 한 마리가 오니 여인은 무서워 도망을 치자 곰이 쫓아오면서 “왜 우세요?”하고 묻자 여인이 지초지종을 알려주었다. 이에 곰은 “울지 마세요. 임자가 아들 몇을 더 낳게 해줄 터니. 모두 나내인9)들과 똑같은 애들을 낳게 해주겠어요. 집에 돌아가 집을 말끔히 거두고 기다리세요. 내가 인차 갈 터이니.” 라고 말했다. 여인이 집에 돌아오자 곰이 찾아왔다. 그 후에 그 여인은 그 곰과 살아서 많은 자식들을 낳았는데 정말 곰의 말대로 크니 모두 나내인들과 똑 같이 생겼다. 여인은 자식들을 보고 “잘들 살아라. 나내인들아, 오늘날에 너희들도 자기의 족속이 있게 되었구나. 나는 그래도 곰과 같이 살아야겠다. 너희들은 꼭 기억해라. 3년 사이에 곰을 잡아서는 안 된다. 이 부탁을 잊어버린다면 나는 너희들에게 잡혀죽을 것이다.”라고 당부했다. 여인의 자식들은 2년 동안은 참아냈지만 3년이 되자 더는 참지 못하고 곰 사냥을 떠났다. 여인의 자식들은 못가에서 곰 한 마리를 발견하고는 그 곰을 잡아서 칼로 배를 가르자고 할 때 곰의 가슴에 한 쌍의 커다란 젖무덤을 발견한다.10)

이는 여인과 수곰의 결합하여 나내인, 즉 허저족을 창조한 이야기이다. 단군신화 같은 곰 토템 숭배의 신화적 원형을 고스란히 간직한 민담이다.

허저족의 구비전승의 신화, 전설, 민담 중에서 가장 많은 것은 사람이 곰으로 변하는 “인화웅(人化熊)”의 모티프를 갖고 있는 이야기들이다. 그중에서 네 개 만 들어보기로 하자.

ㄱ) 백발의 노부부가 산속에 들어간 후 16일이 지나자 온몸에 검은 털이 돋아나더니 두 마리의 곰으로 변했다.

ㄴ) 한 집의 아들이 부모와 대판 싸움을 하고는 죽겠다고 하자 색시가 나서서 겨우 말렸다. 그리하여 두 젊은 부부는 함께 숲속에 들어가서 한 그루의 고목을 찾아서 나무구멍 속에 들어갔는데 16일이 지나자 모두 곰으로 변 했다. 원래는 곰이 없었는데, 이 젊은 부부가 많은 곰 새끼들을 낳아서 곰이 번창하게 되었다.

ㄷ) 아들이 아버지와 싸움하고 분김에 깊은 산속에 들어가서 굴을 파고 숨어버렸는데, 날이 가고 달이 바뀌자 곰으로 변했다.

ㄹ) 두 형제가 분가를 하게 되어 그중 하나가 분심에 자기가 적게 가졌다고 깊은 산속에 들어가서 곰의 굴에 들어 비집고 들어갔다가 곰이 되었다.

이 네 개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만 퉁구스 여러 민족들에게서 공동으로 존재하는 “곰과 인간의 동일성”에 관한 신화관념을 보아낼 수 있다. 그러나 후세의 변이가 나타나고 있음을 보아낼 수 있다. 즉 곰에 대한 신화적인 숭배관념의 점점 퇴색하여 민담화 되여 가는 경향을 발견할 수 있다. 부모자식간이나 형제간의 분쟁 등으로 분김에 집으나가서 곰이 된 것은 그렇게 떳떳한 행위는 못되기 때문이다. 이런 변이가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 것은『허저족민간고사선』중의「마푸카의 이야기」11)이다.

두 형제가 산속에 들어가 사냥을 하는데 동생은 용감한 사나이여서 많은 짐승을 잡았지만 나중에는 곰에게 죽음을 당했다. 형은 마푸카라고 불렀는데, 개으름뱅이여서 수림 속에서 놀기만 하다가 나중에는 검은 곰으로 변했다고 한다. 이는 곰 토템관념의 후세에서의 퇴색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5) 러시아 경내 아루강 류역의 만-퉁구스 여러 민족들 중의 곰 토템 숭배와 관련되는 민담들

러시아 아무르강 유역은 19세기 중반기 이전까지만 해도 러시아와는 관계가 없는 만-퉁구스민족의 생활영역이었다. 고구려말기에 해당되는 7세기에만 하더라도 아무르강 유역의 말갈인들에게는 곰을 숭배하는 습속이 있었음을 일본의 사료들이 증명하고 있다. 당시 말갈인들은 곰을 사육하였는데, 이런 곰들은 곰 축제를 위해 전문 사육한 것이라고 사료된다. 그리고 19세기 후반기 이래 러시아의 원동침략과 함께 러시아인들에 의한 아무르강 유역이나 원동지역의 만-퉁구스 여러 민족들 사이에서 존속하였던 곰 숭배의 민속이나 신앙에 대한 기록들도 적지 않다. 이런 민속이나 신앙은 민간문학에도 상당한 흔적을 남기였다. 그 사례들을 일부만 들어보기로 하자.

우더가이인의 전설에서 그들은 여인과 곰의 결합에 의해 생겨났다고 하며, 오로치인들은 전설에 따르면 사냥꾼이 자부나 매부인 수곰을 죽였을 때 그들의 누이들은 비통하여 죽었다고 하며, 나내인들이나 오르치의 일부 전설들에서는 곰에게 시집을 간 처녀가 곰과 살아서 낳은 아이가 커서 어른이 되면 암곰으로 변한다고 한다.

이와 같은 “사람과 곰의 동일성”에 관한 신화관념과 곰 여신 숭배에 관한 것은 러시아 측의 고고학적 자료에서도 증명된다. 러시아 경내의 아무르 강 유역의 만-퉁구스 제 민족이나 부락의 일부 움막 식 주거지에서는 곰의 조각상과 함께 있는 여인조각상을 많이 발견하였는데, 이는 주목할 만한 것이다. 이것은 사람과 곰 토템숭배의 결합되어 있었음을 증명하는 확실한 증거일 뿐만 아니라 또한 러시아 경내의 아무르 강 유역의 만-퉁구스 여러 민족이나 부족들 중에는 웅녀신숭배가 존재했다는 분명한 증거를 제공하여 주고 있다.

이는 또한 5500년 전의 중국 요서(遼西) 우하량 등 원시유적지에 발굴된 웅녀신과도 밀접한 연관성을 갖고 있음이 증명되는 것이다.

4. 나가는 말

이상의 문헌, 고고학, 민속, 신앙 등 여러 면의 증거를 통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을 명확히 할 수 있게 되었다.

첫째, 우리는 곰 토템 숭배를 토대로 하는 신화 전설은 동북아시아의 만-퉁구스와 제 민족과 조선민족의 신화전설이 그 원형이며 그중에서도 조선의 단군신화가 가장 중요한 원형으로 되고 있음을 보았다.

둘째, 단군신화를 비롯한 조선민족의 곰 토템을 토대로 하여 이루어진 신화, 전설, 민담 등의 민간구비문학은 중국 경내의 어룬춘, 어원커나 러시아 경내의 많은 만-퉁구스 민족이나 부족들의 곰 토템 신화, 전설과 그 문화 연원(淵源) 면에서 확실히 동원성(同源性)을 갖고 있음을 보았다.

셋째, 남영전 같은 일부 사람들이 내놓은 “단군신화의 중국 감숙성 돈황 발생설”이나 “조선민족의 중국 중원기원설” 같은 것을 아무런 문헌적, 고고학적, 민속적인 증거를 제시할 수 없는 낭설임을 알 수 있었다.

넷째, 조선민족의 원시문화는 동아시아 문명의 최초의 발원지라고 상정되는 홍산문화와 깊은 내재적인 련관성이 있음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중국의 신화학회 회장인 섭서헌이 “곰 토템 신앙 및 그 신화적 서사는 황제-화하민족과 조선-한민족의 원고시기의 문화를 더듬을 수 있는 공동한 뉴대”라고 한 말이나 중국의 일부학자들이 내놓은 중원 만- 퉁구스설은 앞으로 단군신화를 비롯한 조선민족의 신화전설과 전반 중국경내 및 러시아 경내의 만 -퉁구스 제민족의 신화전설, 민담과의 비교연구를 진일보 강화해야 함을 시사해주고 있다.

2008년 10월 11일 연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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