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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는 형부다 - 제목만 섹시해진 한국 에로 영화

[기타] | 발행시간: 2013.08.27일 17:12

고백컨대 나는 한때 한국 에로영화 마니아였다. 나름의 역사는 길다. 1985년 동네 만화가게(그때는 만화가게에서 비디오를 상영했다)에서부터 시작, 94년 아현동 동시상영관과 97년 청량리 비디오방까지. 숱한 명화들을 뒤로하고, 나는 꿋꿋하게 한국 에로영화들만 감상하고 또 감상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친구들은 벽안의 감독 이름까지 외워가며(그것 때문에 지방에서 올라온 친구들은 적잖이 주눅이 들어야 했다) 이것저것 많이 볼 수 있었겠지만, 나처럼 지방 소도시(그것도 도시 인구 절반이 군인인)에서 자란 친구들에겐 그럴 기회가 그리 많지 않았다. 서울에서 밀려 내려온 부모님들은 여전히 가난했고, 용돈도 박했고, 자연 극장은 멀고 만화가게는 가까웠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14인치 브라운관으로 봐도 전혀 손색없는, 아니 14인치 브라운관이기에 더 감명 깊은, 한국 에로영화의 세계에 빠져든 것이다.

서울에 올라온 뒤에도 나는 상영관 대신 계속 싸구려 동시상영관만 찾아다녔고, 그곳에서 계속 한국 에로영화들을 감상했다. 내 주눅이 드러나지 않는 곳, 나를 위로해주고 감싸 안아주는 영화. 그것이 바로 에로영화였다. 사실 에로영화란 뻔했다. 역사물이든, 시대극이든, 한 남자를 둘러싼 두 명 혹은 세 명의 여자들의 암투, 혹은 그 반대적인 상황, 그것이 전부다. 그러니 에로영화의 지향점 또한 명확한 것이었다. 그것은 어떤 목적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자세나 태도를 보는 영화였다. 목적이 미리 주어진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허무를 동반할 수밖에 없는 법. 그래서였을까? 나와 함께 동시상영관에 앉아 있던 어른들의(그 어른들 중 일부는 동시상영관 한쪽에 마련된 휴게실에 앉아, 나에게 야릇한 눈길을 보내기도 했다) 얼굴은 늘 어두웠고, 늘 권태로워 보였다. 나 또한 머지않아 그런 얼굴로 변하게 될 것임을 직감했지만, 직감은 잠시였고 대신 늘 영상물심의위원회에서 실수를 저질렀기를, 깜빡 잊고 삭제할 장면을 그대로 내보냈기를, 바라고 또 바라면서 스크린만 노려보았다.

세월이 지나 나 또한 그런 어른이 되어버렸지만, 한국 에로영화의 기조는 변한 게 없다. 주어진 목적 아래서 줄기차게 다른 태도와 자세를 선보이며, 굳건하게 제작되고 있다(영화 입봉을 준비하는 감독 준비생들은 그래서 필히 에로영화를 보아야만 한다. 에로영화는 형식에 대한, 형식을 위한, 형식에 의한 영화다). 다만 그 태도와 자세가 영화 자체에 열중하지 않고 ‘제목 짓기’에만 집중된 것 같아 조금 아쉽고 씁쓸하다. ‘목표는 형부다’ ‘해리포터와 아주 까만 여죄수’ ‘박 하사랑’ ‘체위의 재구성’ ‘반지하의 제왕’ ‘인정상 사정할 수밖에 없다’ 등등. 예고편이 따로 없기 때문이라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아쉽다. 한계를 꿋꿋하게 돌파하는, 주어진 목적 따윈 아무래도 좋다고 우기는, 그런 에로영화가 여전히 그립다. 보는 사람 주눅 들게 하지 않고, 따뜻하게 위로해주는 영화. 목표가 아무리 형부라 할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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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단의 ‘젊은 입심’ ‘능청맞은 재담꾼’으로 꼽히는 이기호씨는 『최순덕성령충만기』『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를 펴낸 소설가입니다.

이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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