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esc] 커버스토리 비행기 기내식의 세계
싱가포르항공서 에어인디아까지 외국항공사들이 내놓는 기내식 구경
최근 한 권의 얇은 책이 출간됐다. <기내식의 모든 것>. 이 책은 한 일본인이 운영하는 ‘기내식닷컴’(www.kinaishoku.com)에 올라온 온 세상 기내식을 다 모아 엮은 것이다. 넘기다 보면 하늘 위의 잔치가 이거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미 잘 알려진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아닌 해외항공사들은 어떨까? 궁금해진다. 그 다채로운 세계로 여행길 떠나보자.
아시아권 항공사들의 기내식이 유럽이나 미국 항공사들보다 다채롭고 화려하다는 평이 일반적이다. 교통수단 정도로 생각하는 서양인과 여행문화의 하나라고 보는 아시아인의 시각차가 있다. 아시아권 항공사들은 기내식도 경쟁의 한 수단이라고 본다.
기내식 전문가들에게 탐나는 기내식을 꼽으라면 열에 일곱은 싱가포르항공이라고 말한다. 싱가포르항공은 1998년부터 요리사 자문단을 운영하고 있다. 긴 시간 축적된 노하우가 기내식에도 힘을 발휘한다. 현재는 미슐랭가이드 스타 셰프 등을 포함한 9명이 자문단에 참여하고 있다. 싱가포르항공하면 뭐니 뭐니 해도 사테이와 ‘싱가포르 슬링’이다. 동남아 전통음식인 사테이는 돼지고기, 닭고기 등을 꼬치에 꽂아 구운 요리다. 싱가포르 시장이나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소설가 서머싯 몸이 ‘동양의 신비’라고 칭찬했다는 싱가포르 슬링. 진 베이스의 칵테일이다. 1915년 래플스호텔 바텐더가 만들었다는 것이 상식일 정도로 유명하다.
루프트한자는 아시아권에 비하면 평범해 보인다. 이른 아침 기내식으로 주스 한 잔과 버터가 든 참깨빵 한 개만 덜렁 제공되는 구간도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 출발하는 독일행은 다르다. 루프트한자의 케이터링센터인 ‘엘에스지 스카이 셰프’가 인천국제공항 인근에서 운영되고 있다. 2009년부터 밀레니엄 서울힐튼 호텔의 박효남 상무를 ‘스타 셰프’로 지정해 메뉴개발과 감수를 맡겼다. 박 상무의 손을 거친 야채쌈밥, 잡채밥, 춘천 닭갈비 등이 제공됐다. 일본 노선에는 사케와 매실주 등을 서비스한다. 유럽계 항공사지만 최근 늘어나는 아시아계 승객들을 위한 서비스 강화다.
일본항공은 그야말로 아기자기하다. 비지니스석에 제공되는 9개 칸으로 나뉜 도시락(사진)은 먹기도 전에 ‘예쁘다’ 소리가 먼저 나온다. ‘오사카 모둠 도시락’도 팬시 상품처럼 잔재미를 준다. 돌돌 만 메밀국수, 오리고기 등이 한입 크기로 들어 있다. 날생선을 올린 초밥은 돋보인다. 미슐랭가이드 스타 셰프가 많은 나라답게 기내식에도 이들이 출동했다. 특정 지역과 제휴한 기내식 시리즈도 있다. ‘에어 시리즈’. 우리로 치자면 강원도 정선의 메밀전병 시리즈 같은 거다. 각 현과 제휴한 이 항공의 기내식 시리즈 중 9탄은 구마모토현의 향토음식인 ‘다이피엔’. 메이지 시대에 일본에 온 화교가 전한 음식이지만 완탕 대신 일본식 당면을, 오리 알 대신 달걀을 넣어 일본 음식으로 탈바꿈시켰다. ‘제이(J)급 창작구르메’ 시리즈 등은 일본 식재료를 100% 활용해 만든 창작요리 시리즈다.
카타르항공은 6시간 비행에도 기내식을 2회 제공하는 걸로 유명하다. 미슐랭 스타 셰프도 4명 메뉴개발에 참여한다. 중동지역 항공사답게 모든 기내식은 ‘할랄푸드’(이슬람 율법에 따라 가공 처리된 음식)다. 돼지고기가 들어간 음식은 없다.
핀에어(핀란드항공)는 기내식을 더 돋보이게 하는 장치를 들여왔다. 접시와 컵 등의 식기류다. 핀란드 대표 디자인 브랜드인 ‘마리메코’의 식기에 기내식이 담겨 나온다. 전 노선에 ‘마리메코 포 핀에어’ 컬렉션 제품이 제공된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소리가 있다. 맛깔스러운 음식이 우아한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을 입었다. 비즈니스클래스에 제공되는 순록등심스테이크는 여행객들에게 독특한 인상을 남긴다. 인천국제공항에서 출발하는 헬싱키행 비행기에는 비빔밥이나 불고기 등도 서비스된다.
에어인디아는 기내에 들어서자마자 진한 카레 향이 진동하고, 가루다인도네시아항공은 나시고렝(인도네시아식 볶음밥) 등의 메뉴가 있다. 홍콩을 대표하는 캐세이패시픽항공은 정통 홍콩 스타일로 만든 돼지고기, 중국식 닭튀김인 유린기, 콘지(죽 요리) 등을 서비스한다. 홍콩의 유명 중식당의 요리를 그대로 옮겨와 서비스하기도 한다. 완탕면, 사천 탄탄면, 쌀국수 등 면 요리의 종류가 많다. 에어프랑스는 이코노미클래스에서도 샴페인을 마실 수 있어 여객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자국의 고유한 음식이 있는 나라는 기내식도 특별하다.
미슐랭가이드 스타 셰프가 개발한 기내식은 주로 일등석이나 비즈니스석에 제공된다. 고급 요리가 즐비하다. 카타르항공의 일등석에는 고급 식재료인 캐비아와 푸아그라, 농장에서 숙성시킨 최고급 치즈 등이 재료로 쓰인다. 수백만원대의 와인도 서비스된다. 싱가포르항공 일등석의 커피는 콜롬비안 수프리모, 케냐 에이에이(AA), 자메이카 블루마운틴 등 고급 원두커피다. 캐세이패시픽항공은 스페인 햄인 이베리코 초리소, 랍스터 샐러드 등이 제공된다. 중국항공 비즈니스석에는 성게알 젤리 등이 서비스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