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이자 앱 | | 모바일버전
뉴스 > 정치 > 한국
  • 작게
  • 원본
  • 크게

남북 이산가족문제 해법…이벤트성 상봉이 능사가 아니다

[온바오] | 발행시간: 2013.09.11일 21:05
일천만이산가족위원회 이상철(李相哲) 위원장

남북한 당국은 이벤트성 극소수 인원의 상봉행사는 그만해야

신청자 전원을 대상으로 전면적인 생사소재 확인부터 실시하라!

▲ 일천만이산가족위원회 이상철 위원장 민족의 최대 명절인 추석이 다가오고 있다. 햇곡으로 송편을 빚어 조상에게 예를 갖추는 차례를 지내고 성묘도 하며, 바쁜 일상으로 평소에 자주 못 만났던 온 가족이 고향집에 모여 오순도순 정담을 나눈다. 민족의 대이동으로 추석을 전후한 귀성길과 귀경길은 교통 체증으로 몸살을 앓는다. 요즘은 고속도로와 철도 항공 등 교통이 잘 발달되어 예전에 비해서 큰 불편은 많이 해소되었다.

그러나 불과 십수년전만 하더라도 명절날 고향에 가기 위하여 기차표를 구하려고 역전에서 밤을 새며 예매하기도 했다. 질서요원이 긴 장대 막대기로 줄을 세우며 밀고 당기는 등 표를 구하기 위해 북새통을 이룬 것이 엊그제 같다. 이것이 뉴스로 방송이 되기도 했고, 언제쯤에나 편안하게 고향에 다녀 올 수가 있을까 불평인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이들을 한없이 부러워 한 사람들이 있었으니 고향을 북에 두고 온 실향민들이었다. 나의 부모님도 고향이 황해도인데 “고향 갈 수 있는 표를 예매하고 구할 수 있다면 나는 하루 이틀이 아니라 보름 한달도 저렇게 줄을 서 있겠다”며 갈 수 있는 고향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를 부러워 한탄하시며, 갈수 없는 고향의 부모님을 생각하시는 듯 뒤돌아 눈물짓는 모습을 뵌 적이 있다.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고향, 일본의 압제로부터 해방되고 이어서 남과 북은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으로 갈라지고, 대한민국에는 1950년 김일성의 기습남침으로 6.25전쟁이 발발하였다.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으로 38선을 기점하여 남과 북은 분단되었고 대량 이산가족이 발생하였다.

통계를 보면 북에 고향을 두고 월남한 동포가 6.25이전에 350만명, 6.25이후 정전협정 때까지 150만명, 도합 약 500만명이 월남하여 남북 1천만명의 이산가족이 발생 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북5도청 발표를 보면 지금 대한민국에는 고향을 이북에 둔 실향민과 그 가족의 수를 847만명으로 발표하고 있다.

한편, 60년의 세월이 흐른 오늘날 이북에서 태어나 월남한 생존자는 약70만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생명은 유한한데 앞으로 10여년만 지나면 월남한 실향1세대는 거의 사망한다고 보면 맞을 것이다. 죽기전에 고향선영에 가서 그동안 하지 못한 불효를 용서하시라며 조상님께 술잔이라도 올리고 싶은 것이 이분들의 소박한 소망이다. 이산가족 문제의 해결은 국가의 책무이자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역사적 사명이다.

남북 이산가족문제는 1971년 8월 12일 대한적십자사가 북한적십자사에게 이산가족찾기 회담을 제의하면서 논의되기 시작하였다. 1972년에 남북은 국제적십자위원회 심인사업본부에서 권장하는 내용인 첫째 생사와 주소의 확인, 둘째 서신교환, 셋째 상봉과 방문, 넷째 원하는 지역으로의 재결합, 다섯째 기타 인도적 문제에 대한 순서로 본회담의 의제로 논의하기로 합의 하였었다.

그러나 이 의제는 번번이 북측에서 일방적인 정치적 요구를 제시하는 등 비타협적으로 이를 고수함으로써, 150여 차례 각종 적십자회담을 진행하여 왔음에도 본회담의 의제에 이르지 못하고 40년이나 흘렀다. 그동안 남북적십자회담은 이산가족 문제의 실질적 해결에 관한한 항상 되돌이표가 되어서 근본적 문제 해결을 외면하고 원점에서 시작되고 있음을 유감스럽게 생각하며 이를 지적하고자 한다.

▲ [자료사진] 일천만이산가족위원회가 있는 이북5도청

남북이산가족의 첫 상봉은 1985년 9월 20일에 있었다. 1984년에 이뤄진 북한의 대남 수해물자 제공이 물꼬를 터 준 계기가 되었다. 서울과 평양에서 남북예술단 교류가 있었고, 이산가족 고향방문단 남측 35가족과 북측 30가족 등 65가족의 만남이 성사되었다. 이후 이산가족 상봉은 2000년 6월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이에 채택한 ‘6.15 남북공동선언’에 따라 시작되었다.

2000년 8월15일 제1차 상봉을 시작으로 지난 2010년 11월을 마지막으로 18차례 상봉 행사가 있었다. 1988년 상봉신청자 등록을 시작한 이산가족정보통합센터에는 지난 7월말일 현재 128,824명이 신청하였고, 그중 46.5%인 59,960명이 사망했으며, 생존자는 72,864명. 생존자중 90세 이상이 9.3%인 6,763명, 80대가 40.5%인 29,484명, 70대가 30.6%인 22,308명, 60대가 11.4%인 8,330명으로 70대 이상이 80.4% 이다.

남북의 경색에 따라 3년여 동안 중단되었던 이산가족상봉 행사가 이달 25일부터 30일까지 개최된다. 박근혜 대통령께서 8.15 광복절 기념사에서 제의한 바에 따라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금강산에서 열기로 합의한 남북이 그 실무적 절차를 현재 진행해 가고 있다. 지난시절 이산가족 상봉은 6.15남북공동선언에 따라 인도적 차원에서 설과 추석 명절을 기해 시범적으로 실시하기로 합의했었다.

그러나 시범적 행사를 하기로 합의해 놓고서 본격적인 상봉 행사는 꿈도 꾸지 못하는 기형적 행태를 오늘날 까지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상봉은 재결합이 전제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상봉자 중에 한 가족도 재결합을 이룬 적이 없다. 지금의 상봉방식은 2박3일 만남동안 상대측 가족과 잠을 함께 잘 수도 없고, 감시자 없이 자유스러운 상태에서의 대화도 할 수 없으며, 말 그대로 잠깐의 면회에 불과한 상봉이다. 그래서 상봉행사 후에 남는 상봉자들의 후유증은 더욱 심각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다시 만나지 못할 기약없는 이별로 인한 상실감으로 엄청난 심적 갈등을 겪으며 괴로워하다 돌아가신다고 한다.

상봉행사장에서 이루어지는 감격스러운 상봉장면을 TV화면으로 지켜보면서 가슴 울컥하고 눈시울이 뜨거워짐을 느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때 시청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산가족 문제가 잘 풀려 가는구나 하는 쪽으로 자연스레 착각하는 상황이 되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여지껏의 상봉방식은 이산가족 문제의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2000년 이후 김대중, 노무현정부 10년을 지나오면서 16차례 1,600명의 신청자가 상봉을 했다. 상봉 때마다 북한은 상봉을 댓가로 쌀 비료를 요청했고, 김대중, 노무현정부는 인도적 지원을 핑계로 쌀과 비료를 1조6천억원 어치나 북에 퍼주었다. 그때 한 가족이 만나는데 10억원 정도의 현물을 지급한 것이다. 이것은 정말 잘못된 이산가족 대북정책이었다.

앞으로 인도적 차원의 지원을 위해서는 동서독의 프라이카우프 방식을 적극적으로 고려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통일 전 서독정부는 1963년부터 1989년까지 26년동안 무려 33,755명의 동독 정치범을 교회나 민간이 주도하는 사업으로 비밀리에 진행시켜 34억6400만 마르크의 현물을 주고 데려왔다. 1인당 데려오는데 우리돈으로 약5천3백만원 가량이었다. 김대중, 노무현정권 당시에 1인당 10억원씩의 쌀과 비료를 주고도 면회에 불과한 상봉행사를 한 그때와 극명하게 대비된다.

우리는 박근혜정부가 개성공단의 재가동을 위한 북한과의 회담에서 원칙과 국제적룰을 요구하며 지켜내 오늘의 남북관계가 새로이 정립되는 것을 보면서 이산가족문제의 해결에도 원칙을 지켜 해결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 이산가족문제는 서두른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눈앞의 상봉행사에 집착하지 말고 인도주의 원칙과 근본적문제 해결의 원칙하에 차근차근 원칙을 지켜내며 해결해 갈 것을 주문하고 싶다.

북한은 지금껏 이산가족문제를 그들의 정치적, 경제적 목적에 따라 연계해 왔다. 이번에도 금강산관광 재개를 위한 회담과 연계하려는 강한 속내를 드러냈다. 남은 생존자 7만2천8백명이 지금과 같은 행태로 100명씩 상봉행사를 한다면 700년이 걸린다는 산술적 계산이 나오는데 이래서야 되겠는가. 남북한 당국은 민족적 양심에 따라 이산가족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하여 신청자 전원을 대상으로 전면적 생사확인을 시급히 시행하길 바란다.

지금 상봉신청자들의 분포로 볼 때 10여년 후면 생존해 계실분이 별로 없을 것 같다. 이산가족문제 이제 시간과의 싸움이다. 지금과 같은 상봉행사는 이산가족들의 고통을 덜어 주기는커녕 이산가족문제의 본질을 해결하는데 방해만 되고, 그만큼 이를 해결할 시간만 늦추는 폐해만 끼친다는 사실을 직시하기 바란다.

뉴스조회 이용자 (연령)비율 표시 값 회원 정보를 정확하게 입력해 주시면 통계에 도움이 됩니다.

남성 0%
10대 0%
20대 0%
30대 0%
40대 0%
50대 0%
60대 0%
70대 0%
여성 0%
10대 0%
20대 0%
30대 0%
40대 0%
50대 0%
60대 0%
70대 0%

네티즌 의견

첫 의견을 남겨주세요. 0 / 300 자

관심 많은 뉴스

관심 필요 뉴스

사진=나남뉴스 뺑소니 혐의를 받고 있는 트로트 가수 김호중이 국과수에서 음주 소견을 받았음에도 무죄 가능성이 제기돼 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현재까지 김호중이 접촉사고를 일으키기 전 술을 마신 것으로 의심되는 정황이 계속해서 포착되고 있다. 먼저 지난 17
1/3
모이자114

추천 많은 뉴스

댓글 많은 뉴스

1/3
연변 ‘관광의 날’ 주제활동 및 안도문화관광체육시즌 가동

연변 ‘관광의 날’ 주제활동 및 안도문화관광체육시즌 가동

연변조선족자치주문화라지오텔레비죤방송및관광국과 안도현인민정부에서 주최한 ‘중국 관광 행복한 생활’ 2024년 5.19 중국 관광의 날 연변 주제활동 및 안도현장백산문화관광체육시즌 가동식이 안도현장백산대관동문화원에서 펼쳐졌다. 가동식에서 올해 주급 ‘관광으

여러 민족 녀성들 손잡고 민족음식문화 꽃피워가다

여러 민족 녀성들 손잡고 민족음식문화 꽃피워가다

장춘조선족부녀협회 문호실 회장: 새 불꽃 더 많이 피워가기를 기대 장춘조선족부녀협회 문호실 회장(좌2)이 시버족떡을 맛보며 식자재와 제작법에 대한 소개를 듣고 있다. /정현관기자 찍음 “비빔밥을 한번 직접 비벼서 먹고 싶었습니다. 오늘 이렇게 그 꿈이 이루어져

흑룡강성 특색식품 생산판매련결 및 투자유치설명회 개최

흑룡강성 특색식품 생산판매련결 및 투자유치설명회 개최

5월 17일, 2024 '3품' 전국행 흑룡강성 특색식품 생산판매련결 및 투자유치설명회가 할빈에서 개최되였다. 이번 행사는 공업정보화부 2024 '3품' 전국행 계렬행사의 하나로서 흑룡강성의 특색식품과 중국식품소비대성(자치구, 직할시)이 생산판매련결을 전개하도록 촉진

모이자 소개|모이자 모바일|운영원칙|개인정보 보호정책|모이자 연혁|광고안내|제휴안내|제휴사 소개
기사송고: news@moyiza.kr
Copyright © Moyiza.kr 2000~2024 All Rights Reserved.
모이자 모바일
광고 차단 기능 끄기
광고 차단 기능을 사용하면 모이자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모이자를 정상적으로 이용하려면 광고 차단 기능을 꺼 두세요.
광고 차단 해지방법을 참조하시거나 서비스 센터에 글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