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한 곳을 향해 보고 가는 류현진과 마틴 김. 류현진의 성적과 인기가 상승되면서 마틴 김에 대한 관심도 커졌지만, 누구보다 류현진은 마틴 김의 존재에 대해 고마움을 한껏 드러낸다.(사진=순스포츠 홍순국 기자)
만약 올시즌 류현진한테 통역 일을 돕는 마틴 김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어떠했을까. LA다저스 입단 후 통역 문제로 잠시 고민에 빠지기도 했던 류현진은 원래 구단에서 정해준 통역 대신 다저스에 입단할 때부터 밀착해서 자신을 도운 마틴 김을 떠올렸다.
마틴 김은 이미 다저스 마케팅 담당 직원이었고, 한인 관련 업무 총괄을 맡고 있는 터라 그를 통역으로 빼오기는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그러나 류현진은 자신을 편하게 해주고, 인정해 주고, 보호해주는 ‘마틴 형’이 절실히 필요했고, 다저스 구단과 류현진, 마틴 김의 합의 하에 마틴 김은 올시즌 류현진의 통역을 돕기로 결정하게 된다.
류현진이 다저스 라커룸에 가장 빨리 적응한 비결은 그의 노력도 있었겠지만, 마틴 김의 도움이 절대적이었다. 이미 다른 선수들과 친분을 유지하고 있었던 마틴 김이 류현진과 선수들의 가교 역할을 자처하며 류현진이 선수들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적극 도왔던 것이다.
영어가 필요할 때는 물론이고 영어를 못하는 히스패닉 선수들과는 스페인어로 류현진의 의사소통을 도왔다. 코칭스태프의 지시사항을 류현진에게 제대로 전달하는 것도 마틴 김의 몫이었다.
더그아웃에서 선수들과 종종 시트콤을 찍는 류현진과 그런 그를 편하게 돌봐주는 마틴 김. 한 마디로 절묘한 궁합을 선보이는 그들이다.(사진=순스포츠 홍순국 기자)
11월 1일, 서울 광장동 쉐라톤워커힐에서는 류현진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류현진의 기자회견 전, 15분 동안 마틴 김은 LA다저스 마케팅 담당 직원으로 먼저 인터뷰에 응했다. 기자들의 관심은 마케팅 업무보다 통역 일에 쏠릴 수밖에 없었다.
마틴 김은 기자회견 내내 류현진과 관련된 얘기를 차분히 설명하면서 ‘통역’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정확히 표현해냈다.
“나는 통역 전문가가 아니다.”
마틴 김은 자신의 일이 단순히 언어를 바꿔서 전달하는 통역이 아닌 선수의 뜻이 제대로 전달되게 하는 일이었다고 말한다. 즉 선수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히 꿰뚫어 그 의미를 왜곡되지 않게 전하는 게 자신의 주업무였다고 말한 것이다.
“나는 류현진의 입보다는 귀가 되려고 했다.”
마틴 김은 한국에서 온 루키 신분의 선수를 위해 주변 분위기, 즉 류현진에 향하는 시선과 말들을 종합해서 류현진에게 전달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류현진이 라커룸의 분위기를 제대로 파악하고, 코칭스태프의 시선이 어떠한지를 알고 있어야 선수단 생활이 여유롭게 돌아갈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틴 김은 “중요한 얘기는 류현진에게 빠짐없이 전달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식을 못 먹을 때는 마틴 형이 사다준 도시락 먹었다.”
류현진은 원정 다닐 때 식사를 어떻게 해결했느냐고 묻는 질문에 위와 같이 설명했다. 즉 마틴 김은 단순히 통역만 돕는 일이 아닌, 류현진의 식사도 챙겨야했다. 원정 경기 다닐 때마다 맛집 정보를 꿰뚫는 것은 물론 한식당이 없는 지역에서는 비슷한 음식이라도 공수해 류현진의 컨디션을 살리려 애썼다.
신시내티 원정 경기 중에 만난 추신수와 류현진, 그리고 마틴 김. 마틴 김은 개인적으로 추신수의 팬이기도 하다.(사진=순스포츠 홍순국 기자)
메이저리그를 경험해 본 한국 선수들은 대부분 통역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다. 박찬호, 김병현, 서재응을 비롯해 추신수도 마이너리그 시절에는 통역과 관련해 고충이 컸다.
선수의 눈과 귀가 되기도 하지만, 선수의 사생활을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 통역이다. 그렇다보니 관계가 좋을 때는 한없이 좋지만, 간혹 관계가 틀어지게 되면 걷잡을 수 없는 ‘늪’에 빠지는 것도 선수와 통역이다.
그런 점에서 류현진은 ‘행운아’이다. 자신의 입과 귀가 돼주는 것은 물론 때론 형으로, 친구로, 그리고 멘토처럼 존재했던 마틴 김이 그를 ‘대단한 선수’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그 옆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9월, 신시내티로 원정 경기를 온 류현진과 마틴 김이 추신수와 삼겹살 파티를 하고 있을 때, 마틴 김이 류현진을 살뜰히 챙기는 것을 본 추신수가 이런 말을 던졌다.
“현진아, 나한테 마틴 같은 분이 통역을 도와주셨다면 내가 1년은 먼저 메이저리그에 올라섰을 거야.”
류현진이 구단에서 제안한 통역 대신 마틴 김을 선택한 부분은 ‘신의 한수’임이 분명했다.
내년 시즌에도 두 사람의 '마이웨이'를 볼 수 있을까. 류현진과 마틴 김이 보여준 '더블플레이'를 2014시즌에도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사진=순스포츠 홍순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