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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놀고 즐기는 연변조선족의 장미로 물든 3.8 부녀절

[조글로미디어] | 발행시간: 2015.03.08일 23:28

겨울은 아직 물러가지 않고 추위는 샘을 내고 있는데 따뜻한 햇살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마음에는 이미 봄이 오고 있다. 자연이 소생하는 3월은 생명을 잉태하는 여인을 의미하기도 한다. 유엔이 정한 세계 여성의 날 3.8절을 맞아 장미로 물들었던 중국 연변에서의 3.8부녀절을 다시 떠올려 본다.

매년 3.8 부녀절이 다가올 때면 나는 더욱 분주히 일해야 했다. 연변의 방송국에서 사회교육프로인 여성시대 프로를 만들다 보니 각 분야의 우수한 여성들을 생방송에 모시고 방송을 했다. 방송 애청자들은 꽃바구니나 명절축하 메시지를 보내주기도 하고 자기가 농사를 지은 고추로 고춧가루를 보내주기도 했으며 각양각색의 떡을 만들어 보내주기도 했다. 3.8절에 조선말 방송과 텔레비전에서는 조선(북한)의 <여성은 꽃이라네>라는 노래를 수없이 반복해서 틀었다.

평소 중국의 한족여성과 조선족여성들은 차이점이 있다. 한족가정에서 가사는 남편들의 몫이다. 퇴근하면 한족남자들은 앞치마를 두르고 주방에 들어가서 저녁밥을 부지런히 준비한다. 그 집의 아내는 텔레비전을 시청하거나 집밖에서 아는 이들과 수다를 떨거나 책을 보거나 게임을 하거나 여하튼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

하지만 조선족여성은 한족여성들과 같은 직장에 다니더라도 가사와 육아도 해야 한다. 퇴근하면 조선족여성들은 가족을 위한 밥상을 준비하느라 바쁘게 보낸다. 조선족남성들은 밖에서 술을 마시거나 논다. 집에 있더라도 텔레비전을 보면서 부엌에는 얼씬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단 하루, 3월 8일 부녀절만은 예외다. 많은 조선족 남자들도 3월 8일 하루만은 아침밥을 짓고 반찬을 만들어 소박한 아침상을 아내한테 바친다. 여유가 있는 조선족 남자들은 아내한테 선물을 사주거나 현금을 봉투에 넣어주거나 꽃을 선물하기도 한다. 연변에는 이런 설이 있다. <3.8절 하루를 아내한테 잘하는 남편은 일 년이 행복하고 그렇지 못한 남편은 일 년이 괴롭다>

연변에서의 3.8부녀절은 동창이나 친구들이 건너뛸 수 없는 명절이기도 하다. 3월의 거의 절반을 여성들은 술을 마시거나 노래방에서 자기의 18번을 부르고 또 부른다. 나도 언젠가 친구들과 3.8절을 보내다가 찜질방에서 잠들어 외박한 적이 있다.

중국에서는 3월 8일은 지정된 기념일이다. 3.8 부녀절을 맞아 부서별로 모임을 가지고, 그 다음에는 전 방송국 직원들이 식당으로 가서 거하게 한 상 차려먹고 2차로 노래방까지 간다. 3월 1일부터 노래방이나 식당은 예약을 안 하면 들어갈 수도 없기 때문에 3.8절은 업주들이 고대하는 명절 중 하나이다.

3.8절 선물도 변화를 겪었다. 직장에서 처음에는 여성들에게 3.8절 선물로 생리대를 주다가 나중에는 기념품을 주기 시작했고 그 후에는 인민폐를 주었다. 2원부터 시작해 5원으로 다음에는 100원, 300원, 500원을 주었고 좀 더 여유가 있으면 상품권을 덤으로 주기도 했다.

3월 8일은 연변에서 장미가 가장 많이 팔리는 날 중 하루다. 센스 있는 직장의 책임자들은 장미 한 송이와 예쁜 엽서 한 장을 부하 여직원들의 책상에 아침 일찍 갖다 놓기도 한다. 번화한 길거리나 노래방 문 앞에는 장미를 파는 장사꾼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는데, 한 잔 거나하게 마신 남자들이 여성들에게 꽃 한 송이씩 사서 선물하는 것은 예사로운 일이다. 그날만은 저녁 늦게 아내가 장미 한 묶음을 들고 집에 들어가도, 술에 만취해 들어가도, 새벽에 들아가도 남편들은 너그럽게 대해준다. 노래방에서 어찌나 흥이 났던지 집에 들어갈 때 장미꽃은 이미 너덜너덜해지기 일쑤였다.

연변에서는 3.8부녀절을 맞이하여 우수한 여성들을 표창하는 행사를 해마다 하는데, 상금과 상패를 주는 것은 물론이고 급여도 올려주고 북경을 관광할 수 있는 기회도 주었다. 표창을 받은 여성들은 각 지역에 다니면서 순회강연을 하기도 했다.

지금 한국에 나와 있는 중국조선족은 70여만명이고 거의 절반의 비중을 차지하는 여성들은 여전히 3.8절날 가족끼리 친구끼리 동창끼리 모여서 대림, 구로, 안산, 수원 등지에서 먹고 마시고 즐기고 있다.

중국에 있을 때는 어느 나라에서나 다 우리처럼 3.8절을 보내는 줄 알았고, 한국은 우리보다 더 화려하게 치를 줄 알았다. 한국에 와서야 비로소 3.8절이 국가적 명절도 아니고 여성운동을 떠올리게 하는 조금은 비장한 날이라는 것을 알았다. 연변에서의 3.8절은 먹고 놀고 즐기는 데 그쳤다는 아쉬움이 있다. 앞으로 한국에서 3.8절이 문화가 서로 다른 여성들이 모여서 서로의 삶과 문화를 공유하고, 새로운 여성의 파워를 만들 수 있는 날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박연희 조선족 재한동포문인협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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