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김영삼 전 대통령이 28일 오전 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故서석재 전 의원 빈소에서 조문을 마친 뒤 옛 민주계 인사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5선 국회의원과 총무처장관을 역임한 故 서석재 전 의원은 대표적인 상도동계 정치인으로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비서로 정치에 입문해 대부분의 정치인생을 김 전 대통령과 함께했다. 고인은 74세의 나이로 26일 12시 분당 서울대병원에서 숙환으로 타계했다. 유족으로는 미망인인 전순달 여사와 2남 3녀의 자녀가 있다. chocrystal@newsis.com
【서울=뉴시스】박주연 기자 = 한국 정치사의 거목인 김영삼 전 대통령(YS)은 그 위상에 걸맞게 다양한 기록을 남겼다.
YS는 1954년 만 25세의 나이로 3대 국회에서 자유당 후보로 출마, 최연소 국회의원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YS는 당시 "기쁜 생각보다 걱정이 앞선다. 젊은이의 대표라는 자부심도 이따금씩 가져보지만 내가 자칫 잘못하다가는 앞으로 젊은이들의 길을 가로막아버리게 되지 않을까 염려된다"며 "앞으로 4년 동안 순순히 공부하는 시간으로 작정하고 있다"는 소감을 밝혔다.
YS의 최연소 국회의원 당선 기록은 깨지지 않은 현재진행형이다. 아직 누구도 YS의 기록을 깨지 못 했다.
의원직 제명도 헌정사상 최초였다. 제1야당의 당수로서 뉴욕타임스와 한 인터뷰를 통해 민중혁명으로 팔레비왕정 체제가 무너진 것을 언급하며 한국도 이러한 전철을 밟지 말라고 경고한 것이 발단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1979년 9월29일 김영삼 의원에 대한 제명 방침을 정했고, 같은 해 10월4일 여당의원 159명이 '김영삼 의원 징계안'을 10분만에 기습 처리했다.
YS는 자신의 의원직 제명에 대해 "나는 오늘 죽어도 영원히 살 것"이라며 "25세에 국회의원이 돼 7선의 최다선 의원인 나는 의회민주주의의 신봉자이며 국민과 더불어 떳떳이 가게 됐으니 여한이 없다"고 말했다.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유명한 발언도 이때 나왔다.
YS는 한동안 최장 단식 기록도 보유하고 있었다. 그는 신군부의 서슬이 퍼렇던 1983년 5월 가택연금된 후 23일간의 단식투쟁을 벌였다.
YS는 5·18 3주년을 맞아 민주회복, 정치복원 등 민주화 5개항을 내걸고 단식에 들어갔으며 전두환 정권은 YS가 단식을 한 지 1주일이 지나자 그를 강제로 병원에 입원시켰다.
하지만 YS는 병원에서도 단식을 계속했다. 이를 통해 가택연금 해제를 얻어냈다. 이 단식은 추후 민주화 투쟁의 기폭제가 됐고, 직선제 개헌으로 이어졌다.
이후 2007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당시 민주노동당 문성현 전 대표가 26일, 천정배 의원이 25일간 단식, YS의 기록을 갈아치웠다.
헌정사상 최다선 기록도 YS가 보유하고 있다. YS는 1954년 3대 국회때 자유당 의원으로 첫 등원한 이래 14대 대통령으로 당선되기 전인 1992년까지 3·5·6·7·8·9·10·13·14대 의원으로 활동, 9선을 기록했다. YS와 함께 김종필 전 의원(JP), 박준규 전 의원이 9선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대한민국에 첫 문민시대를 연 것도 YS의 기록이다. YS는 3당합당을 거쳐 1992년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YS는 재임기간 중 금융실명제와 공직자 재산공개제도를 도입하고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을 수사하는 등 경제와 정치 민주화를 일궈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군 평시작전통제권 회수, 최초 남북정상회담 합의와 추진도 이 시기에 이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