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해 공룡이 멸종했을 것이라는 주장은 지난 20여년 동안 유력한 가설로 꼽혀 왔다.
소행성이나 혜성은 지구 표면에 떨어지거나 대기권에 끌려 들어와 공중 폭발하면 자연 재난을 일으킨다. 외계의 물체가 지구에 충격을 주어 장기 재난이 발생하고 이것이 지구의 역사를 바꿔왔다는 것이 외계충격설이다.
그러나 공룡의 멸종과 같은 지구사적 대사건이 아니라 고구려와 신라의 건국, 거란과 몽골의 한반도 침략, 임진왜란 등도 모두 외계의 충격에 의한 것이라면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한 발짝 더 나아가 불국사, 석굴암, 성덕대왕신종 등의 걸작들이 삼국통일의 영광을 기념하거나 불국토를 향한 염원을 담은 것이 아니라 외계충격에 따른 자연 재난을 없애달라는 기원의 소산이라면?
이 같은 파격 주장을 내놓은 이는 재야사학자나 자연과학자가 아니다. 진단학회장, 역사학회장, 학술단체연합회장을 거쳐 국사편찬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가 논증한 것이다.
저자는 20여년 전부터 조선 중기의 전란과 민생 피폐로 혼란을 겪은 역사의 원인을 밝혀보려고 애쓰다가 외계충격설을 접하게 됐다고 한다.
외계충격설을 열쇠로 삼아 한국사 수수께끼를 풀어보려고 시도할 수 있었던 토대는 꼼꼼하고 방대한 정사의 기록. 조선왕조실록, 고려사, 삼국사기에 나타난 자연 재난 현상과 역사적 사건의 연결고리를 찾아냈다.
조선 중기에는 270여년 동안 대량의 유성이 지구 대기권에 돌입한 사실이 기록돼 있다. 삼국사기나 고려사에도 계절적 재난과 달리 외계충격으로 해석될 만한 자연현상과 재난의 기록이 나타난다. 이는 역사의 변동 요인으로 작용해 민란이나 왕조의 교체 등을 가져왔다.
단군신화는 외계충격의 공포가 낳은 천둥번개 신을 주제로 한 창세 신화의 하나이며, 북방식 고인돌도 외계충격에 놀란 사람들이 피난처로 세운 거석문화로 해석된다.
자연 재난에 주목해 한국통사를 쓰면서 시야도 확장됐다. 여진, 거란, 몽골, 돌궐 등 북방 유목민족의 남하가 자연 재난과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왜구가 발호한 것이나 전국시대가 시작된 것도 자연 재난과 무관하지 않다.
저자는 사료에 나타난 자연 재난 기록을 씨줄로 삼고 동아시아 여러 민족의 움직임을 날줄로 삼아 우리 역사를 새로 엮은 내용을 '새 한국사-선사시대에서 조선 후기까지'란 제목의 책으로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