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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집처럼 느낀다는 것

[온바오] | 발행시간: 2016.10.27일 15:55
소피 바우먼(Sophie Bowman)

[Korea.net]처음 한국에 왔었던 8년 전, 나는 ‘내가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다면 어떨까’하고 생각했다. 한국어를 잘 하게 된다면 내 외모가 좀 다르더라도 한국인들과 잘 섞일 수 있지 않을까 하고 해서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후 나는 한국으로 이사를 왔다. 이제 나는 이전에 상상했던 것과 같이 한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었고, 한국인들은 내 한국어 실력에 감탄했다. 꽤 기쁜 일이었다. 한국인들이 내 한국어 실력에 놀란다는 건 곧 그들이 내게 친절하게 대한다는 의미였으니까.

그러나 다시 5년이 지난 지금, 상황은 좀 달라졌다. 내 한국어 실력이 퇴화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완벽한 건 아니지만 나는 여전히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한국어로 표현할 수 있고, 심지어 열띤 토론에서도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 전화상으로는 외국인이라는 티를 내지 않을 자신도 있다. 나랑 통화하는 사람들은 내 말투가 조금 이상하다고는 느낄지언정 내가 외국인이라고 생각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어가 능숙하다고 해서 한국인처럼 여겨지는 건 아니다. 밝은 갈색 머리에 초록색 눈인 나에게 한국에 완전히 녹아 든다는 것은 항상 불가능한 일처럼 여겨진다. 상점이나 각종 행사장에서, 그리고 대학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면 나는 항상 “한국어 진짜 잘하시네요!”라는 말을 듣곤 한다. 분명 칭찬이겠지만, 안타깝게도 이 말을 듣는 나는 그리 기쁘지 않다. 예전에 이 말이 기쁘지 않았던 이유가 아직 부족한 한국어에 대한 자의식 때문이었다면, 이제는 그 말이 사람들과의 소통을 가로막는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내 한국어 실력에 놀란 한국인들은 대개 내가 하고 싶어 하는 말보다 내가 한국어로 말을 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에 주목한다. 그리하여 5년 전이나 지금이나 나는 여전히 한국에 완전히 섞이지 못한 채 한국어와 한국 사람들과 잘 어울리도록 행동하는 방법을 공부하고 있다.

어딘가에서 집 같은 느낌을 받는 것은 내가 그곳에 잘 섞였으며, 그 곳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졌다는 걸 의미한다. 한국에서 내가 이 느낌을 받는 건 주로 학교에 있을 때이다. 대학 내에는 상당히 많은 수의 유학생과 교환학생들, 관광객들이 있기 때문에 내가 ‘눈에 띄는’ 존재일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교에서 느낄 수 있는 이 편안한 느낌도 완전하지는 않다. 그곳을 ‘집’처럼 느끼는 내 느낌이 언제 무너져 내릴지 모른다. 가령 얼마 전 학교에서 만난 한 무리의 남학생들은 나를 지나쳐가면서 자기들이 아는 영어를 아무렇게나 주워섬겼다. 그 순간, 학교를 집처럼 여기던 내 느낌은 무참히 깨져버렸다. 어쩌면 독자들은 이 상황이 매우 특수하다고 할지도 모른다. 그 사람들이 아주 특별히 공격적이거나 무례한 것이었다고. 그러나 소외감을 일으키는 것들은 아주 평범한 곳에, 가까운 곳에도 있다. 한국인들이 정의하는 ‘한국’이 바로 그것이다. 동아시아인처럼 생기지 않는 사람은 외국인이거나 타지 사람이라는 인식―그리하여 ‘우리’가 아니라는 전제―은 이곳에서 5년을 살아온 내게 꽤나 큰 고통이었다. ‘외국인’이라는 딱지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단지 ‘다수’ 혹은 ‘타지 사람’의 개념이 상당 부분 사라진 곳을 상상하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교과서에서 말하는 그 환상적인 ‘우리’라는 단어에 내가 들어갈 자리가 없다 해도, 나는 내가 이곳에 있는 것이 이상하지 않게 여겨지길 바란다. 적어도 내 학교에서만큼은 나도 평범하게 섞여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한국에 처음 도착했을 당시 나는 참 순진했던 것 같다. 한국어 실력만 향상된다면 여기서 겪는 모든 불편함이 없어질 줄로 믿었으니 말이다. 하루는 번역가이자 교수이신 안선재 수사(영문명 Brother Anthony)와 점심을 먹기 위해 택시를 탔는데, 택시 기사가 “국적이 어디에요?”하고 물어본 일이 있었다. ‘어디서 오셨어요?’가 아닌, 국적을 문제 삼는 약간 독특하다고 할 만한 질문이었다. 안선재 수사는 기사님 쪽으로 몸을 틀더니 조용하지만 확실하게 대꾸했다. “나 한국 사람이야.” 1980년에 한국에 온 이후로 안선재 수사는 한국으로 귀화했고, ‘안선재’라는 버젓한 한국식 성명도 가진 분이었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 내게 교수님의 대답은 예상 가능한 것이었지만, 그래도 나는 내 앞에서 전개되는 상황이 흥미로웠다. 그리고 안선재 수사께서 이런 상황을 얼마나 자주 겪었을지 궁금해졌다. 70대에 접어든 지금까지도 교수님은 아직도 국적에 대한 질문을 받는다. 당신 인생의 거의 절반을 한국에서 살았음에도 말이다.

그날 이후 나는 다시 한 번 ‘내가 정말로 한국을 완전히 내 집이라고 느낄 수 있을까, 한국에 섞여들 수 있을까’하는 고민을 시작했다. 해외여행에서 인천공항으로 막 돌아왔을 때 ‘아, 이제 집이다’라고 생각하다가도 나는 곧 그 느낌에서 튕겨져 나올 수밖에 없었다. 한국인과 외국인을 분리한 여권심사 줄은 내게 내 비자상태가 ‘외국인’임을 상기시켰기 때문이다. 이런 일은 일상 속에서 훨씬 더 비일비재하다. 나는 내 외모가 ‘한국인’ 같지 않음을 곧잘 까먹지만, 나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그렇지 않다. 길거리에서, 슈퍼마켓에서 들리는 ‘외국인’이라는 단어……. 사람들은 실제 대화 속에서 나를 가리켜 그 단어를 사용하기도 하고, 핸드폰 메시지로 그 단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이 외에 아기 엄마가 아기에게 날더러 ‘헬로우(Hello)’라고 인사해보라고 하자 아이가 운 적도 있었고, 슈퍼마켓에서 마주친 학생들이 내 옆을 지나가며 내게 ‘징그럽다’고 한 적도 있었다. 최근에 와서 이런 일들은 확실히 줄어들었다. 그러나 그건 내 일정이 집과 도서관을 오가는, 그리하여 만나는 사람들만 계속 보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최근 들어 나는 산 가까운 곳에 자리 잡은 한국의 시골 동네로 이사 가고 싶다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사람이 얼마 없는 시골 마을에서 이웃들과 모두 알고 지내면 더 이상 외부인이 아닐 수 있을까 하는 다소 이상적인 희망 때문이다. 만약 마을 사람들 모두가 나를 알고, 나 또한 그들을 모두 아는 ‘이웃사촌’이 된다면, 내가 사랑하는 이 나라를 완전히 내 집이라고 여길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역시 영국이나 한국이나 도시에서만 사는 건 좀 아쉽다. 어찌되었든 나는 내가 정말 서울 거리를 내 집으로 느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문제에 대해 시간만이 대답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내가 진짜 바라는 것은 나 같은 사람들이 한국에 점점 더 많아져서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 것이다. 이게 정말 가능해질지는 시간만이 답해줄 수 있을 테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이것만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나는 정말로 한국을 내 집이라고 느낀다. 영국 출신인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 이상하게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모든 것은 보기 나름이지 않나. 내가 한국을 집이라고 느끼는 순간은 한국에 있을 때보다는 한국인들과 함께 있을 때이다. 일전에 난생 처음 가본 미국에서 집 같은 느낌을 받은 적이 있는데, 그 또한 내 주위에 한국인들 혹은 한국계 미국인들이 모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내가 받은 집 같은 느낌, 집의 느낌은 분명히 그 곳의 공간성보다는 내 주위 사람들에게 더 큰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한국을 집처럼 느낀다는 것은 아마 한국이라는 국가와의 연관성 보다는 그 사람이 내가 느끼는 바를 얼마나 이해해주느냐가 중요한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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