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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교 대학생들 “편입도 어렵고…3류대 졸업꿈조차 박탈”

[기타] | 발행시간: 2012.06.01일 10:22

[문닫는 대학, 절규하는 학생] 피해자 210명 손해배상 소송

구조조정 대학 학생들 어디로…장학금 등 날아가 학비 부담

졸업장 없어 취업 더욱 막막…평판 좋은 대학선 입학 거부

학교가 사라진다. 세상이 알아주는 대학은 아니다. ‘부실대학’이라는 손가락질도 받았다. 그러나 학생들은 그 대학에서 자신의 꿈을 키웠다. 정부는 대학 구조조정을 명분으로 지난해부터 본격적인 부실대학 퇴출작업에 들어갔다. 대학은 사라져도 대학생은 남는다. 그들은 무슨 일을 겪고 있는 걸까. 편집자

■ ‘폐교생’은 어디로 김태식(21)씨는 아무 일이든 닥치는 대로 하고 있다. 다니던 대학이 폐교된 뒤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진녹색 축구장이 그립지만 당장 먹고살기 바쁘다.

10대 초부터 가족 도움 없이 혼자 축구를 해왔다. 공부를 잘하진 못했다. 축구 실력도 최고 수준은 아니었다. 그래도 대학은 나와야 취업이 가능했다. 장학금, 기숙사비, 축구부 회비까지 지원해준다는 전남 강진 성화대에 축구 특기생으로 입학했다.

지난 2월, 대학이 문을 닫았다. 청천벽력이었다. 편입을 택한 친구들도 있었다. 그러나 성화대가 제공했던 장학금 등의 혜택은 어차피 사라진다. 김씨는 편입을 포기했다. 학비를 감당할 수 없었다.

“대학만 졸업했으면 회사라도 갈 텐데 이렇게 되니까 뭘해야 될지도 모르겠고….” 김씨는 오는 8월 군에 입대하기로 했다. 그는 험한 말도 했다. “죽이고 싶을 정도로 원망스러워요.” 원망은 대학, 재단, 정부, 그리고 세상을 향해 있다.

같은 대학을 다녔던 조수진(가명·21)씨는 올해 초까지 매일처럼 인근의 목포·해남 시내로 나갔다. 교육과학기술부의 폐교 결정을 되돌리고 싶었다. 시민들에게 폐교 반대 서명을 부탁했다.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았다. “비리 학교는 사라져야지.” 오히려 손가락질하는 이들도 있었다.

재단 비리는 조씨의 잘못이 아니었다. 지치고 상처입은 조씨는 더이상 학교에 나가지 않았다. 편입도 하지 않았다. 요즘엔 지인의 소개로 사무보조 일을 하고 있다. 대학 전공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편입했어도 폐교생의 처지는 편치 않다. 한성철(가명·20)씨는 성화대에서 항공정비를 전공했다. 새로 옮긴 학교엔 재단 비리 문제가 없다. “공부에 전념할 수 있어 좋다”면서도 한씨는 한숨을 내쉬었다. 학비 때문이다.

성화대는 더 많은 학생을 끌어들이려고 장학금 혜택을 남발했다. 그런 일이 부실 경영으로 이어진 측면도 있다. 교과부는 부실 경영을 문제삼아 폐교를 결정했지만, 학생들은 편입 이후 등록금 부담이 늘었다. 한씨는 성화대의 갑절에 이르는 등록금을 내고 있다. “섬에 사는 부모님이 비싼 등록금 뒷바라지하는 걸 보면 마음이 무거워요.” 한씨가 말했다.

성화대 학생 210명은 지난 2월, 학교법인과 이사장,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지난 30일이 첫 변론기일이었다. “이 가운데 편입을 포기한 학생이 30%, 편입 뒤 인상된 학비·생활비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학생이 30%, 졸업을 했어도 (폐교생 출신이라는 이유로) 취업 등에서 불이익을 당하는 학생이 40%를 차지한다”고 소송을 맡은 이주헌 변호사는 설명했다.

■ 빨간 줄 그어진 인생 부실 대학 퇴출은 2009년 4월 교육과학기술부가 ‘대학선진화위원회’를 꾸리면서 시작됐다. 정부는 지금까지 ‘경영부실 대학’ 17곳, ‘학자금 대출 제한 대학’ 47곳을 선정했다. 이들 ‘퇴출 후보 대학’ 가운데 성화대와 전남 순천 명신대가 지난 2월 처음으로 직권 폐쇄됐다. 경북 안동의 건동대는 자진폐교 신청을 한 상태다. 폐교 이유는 부실·비리 경영이었다. 경영부실 대학 등에 선정됐던 성화대·명신대는 지난해 초, 총장의 교비 횡령까지 드러나면서 폐교가 확정됐다.

대학 구조조정은 노무현 정부 때도 추진됐다. 당시엔 같은 재단에 속한 큰 대학이 부실·비리 대학을 흡수하는 방식을 택했다. 학생들은 편입학 절차를 거치지 않고 소속 대학만 바꿨다. 학업을 포기하는 일도 거의 없었다. 직권 폐쇄 방식을 통해 대학 구조조정에 나선 것은 이명박 정부가 처음이다.

교과부는 폐교 학생들이 인근 지역의 유사 학과로 편입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런 절차를 보장하는 법적 근거는 따로 없다. 현행법에 보장된 폐교생의 권리 같은 것은 없다. 교과부 관계자는 “대학마다 사정이 다른데 일률적으로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것은 불필요하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폐교 학생들이 편입학을 통해 학업을 이어가는 경우는 많지 않다. 명신대에서는 31.3%, 성화대에서는 51.6%만 편입학을 선택했다. 폐교 여부의 갈림길에 서 있는 건동대 스포츠과학부 학생 18명에게 <한겨레>가 설문조사를 한 결과, 5명만이 “어느 대학으로든 편입하겠다”고 밝혔다. 5명은 “학업 대신 취업을 택하겠다”고 말했다. 경영부실 대학의 퇴출이 선량한 대학생들의 퇴출로 이어지는 형국이다.

중·고교 시절 학업 성적이 높지 않았던 이들에겐 지방의 이름없는 대학이 취업의 유일한 지렛대다. 건동대 스포츠과학부 박철수(가명·22)씨는 스포츠 치료 등 자격증만 11개를 땄다. 학점 평균은 4.0이 넘는다. 고등학교 때 못한 공부까지 더 열심히 했다. 인근 대학에는 그의 전공을 특성화한 곳이 없다. 폐교 결정이 내려진다면 어찌해야 할지, 박씨는 벌써부터 걱정이다.

건동대의 한 교수는 솔직하게 말했다. “많은 재학생들이 스스로 ‘3류 대학’에 다닌다고 생각하는 거 맞아요. 대신 (자격증 취득 등) 소박한 꿈을 갖고 남 못지않게 성실히 학교생활을 하죠.” 그 자신도 실직의 위기에 서 있는 교수는 얼굴을 찌푸렸다.

■ 정글의 법칙에 스러지는 학생들 건동대 사회복지학과 최세연(가명·22)씨는 폐교하더라도 별로 상관없다는 생각이다. “처음부터 학교에 애착이 없었어요.” 최씨는 오히려 인근 안동대로 편입될 수 있을까 기대하고 있다. 기대가 충족될지는 미지수다. 폐교 출신 학생의 편입학 허용은 해당 대학의 재량이다. 건동대 학생들 사이에선 “안동대는 (건동대 학생들을) 안 받을 것”이라는 소문이 퍼져 있다. 실제로 올해 초, 전남대는 폐교된 성화대·명신대 학생에 대한 특별 편입학을 허용하지 않았다. 결국 폐교생들은 편입학에 성공해도 지방의 또다른 이름없는 대학을 다니게 될 가능성이 높다. 등록금 부담은 늘지만 ‘스펙 상승’을 기대하긴 어렵다.

임희성 한국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폐교되는 대학에 문제가 없다고 볼 수는 없지만, (부실·비리를 이유로) 지방대를 폐교하면 지역과 수도권의 양극화가 더 심해진다”며 “미국·일본에 견줘 우리나라는 인구 1인당 대학 수가 적으므로, 대학 수를 줄이기보다는 각 대학의 정원을 함께 줄이는 방향으로 구조조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강남훈 전국교수노동조합 위원장(한신대 교수)은 “이명박 정부는 학생들이 상처를 덜 받는 방식을 고민하지 않고, 정글에나 적용할 수 있는 가장 나쁜 방식으로 무계획적인 퇴출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지난 30일, 건동대 학생들은 교육과학기술부가 있는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를 찾아 자진폐교 반대 시위를 벌였다. 150여명의 학생과 20여명의 교수·학부모는 “학생들의 학습권과 인권을 무시한 채 대책 없는 구조조정만 일삼는 교과부를 규탄한다”고 외쳤다.

- 한겨레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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