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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카메라 옆에는 누가 있을까?

[기타] | 발행시간: 2012.06.15일 14:40

예능 프로그램 카메라 옆에는 작가가 있다. 에프디(FD)도 있고 매니저도 있다. <무한도전>과 <1박2일>을 보고 알았다. 드라마 카메라 옆에는 음향감독, 조명감독, 스크립터, 엑스트라의 동선을 맞추는 일명 반장까지 포진해 있다. 다큐멘터리 카메라 옆에는 누가 있을까? 단출하지만 멋진 그림을 상상했다. 황량한 들판에서 며칠이나 피사체를 기다리는 말 없는 카메라맨일까? “선배 춥죠” 말하며 커피잔을 내미는 조연출일까? 좀 더 고독해지면 좋겠고, 때맞춰 독수리라도 한 마리 날아주면 더할 나위 없다. 아무 것도 모를 때는 그럴 줄 알았다.

 어느 해 여름 우리는 수리생물학 다큐를 찍으려고 케냐의 마라강 앞에 있었다. 몇분 후면 생태계에서 가장 위대한 장관을 목격할 터였다. 강 너머에는 황소만 한 와일드비스트(누) 수천 마리가 서성이고 있었다. 강만 건너면 그들이 몇 달 먹을 수 있는 풀로 가득한 초원이다. 그런데도 놈들은 강 앞에서 주저한다. 50m 폭이나 한길 남짓한 깊이 때문이 아니다. 물 속에는 며칠을 굶주린 악어가 숨어 있다. 살기 위해 건너야 하고, 살기 위해 덮쳐야 하고, 우리도 월급 받으니 찍어야 한다.

 우리가 탄 지프는 강에서 200m쯤 떨어져 있었다. 강둑 바로 앞 좋은 자리를 찾았지만 뒤로 물러났다. 예민한 초식동물은 지프 때문에 강 건너기를 포기할지도 모른다. 무리의 선두가 건너기 시작하면 떼를 지어 강으로 덤벼들 것이고, 정신없는 틈에 다가가 카메라를 돌릴 계획이었다.

 시동도 껐다. 서너시간을 꼼짝 않고 기다렸다. 적도의 태양이 머리 꼭대기에 있었다. 가끔 불어오는 바람도 후텁지근할 뿐이었다. ‘아, 이것이 다큐 피디들만 누리는 절대 고독의 순간인가’ 싶었다. 어디선가 승합차 한 대가 다가오더니 우리 옆에 멈춰 선다. 가이드가 운전하는 차에는 관광객이 타고 있었다. 서양 청년 둘이 망원경을 꺼내 강을 살핀다. ‘어’ 하는 사이에 3대가 더 왔다. 이번에는 중국 관광객들이다. 쏼라쏼라 떠들다가 누군가의 제지를 받았다. 경찰이다. 와일드비스트의 도강을 방해하는 관광객을 감시하는 경찰이다. 경찰이 허락하기 전에는 누구도 강가에 다가서지 못한다. 초조해졌다. 승합차가 서른 대를 넘었다. 아프리카 초원 한복판에 랠리 출발선이 만들어졌다. 좋은 자리에 차를 대는 가이드는 팁을 많이 받을 것이다.

 텀벙 하는 소리가 강둑 너머에서 들렸다. 흙먼지가 올라온다. 벌써 수십 마리가 뛰어들었을 텐데 보이지 않으니 애가 탄다. 거만하게 몸을 젖히고 있던 경찰이 그제서야 몸을 일으켰다. 운전대를 잡은 서른 명의 가이드가 경찰의 손을 주시했다. 비장한 표정의 우리 가이드는 “트러스트 미”(나만 믿어라)를 반복한다. 누군가 먼저 시동을 걸었나 싶었고, 경찰이 손가락을 까딱했던 것 같기도 한데 어느새 승합차 서른 대가 강을 향해 내달린다. 내 몸도 출렁한다. 망원렌즈에 이마를 찧었다. 고독을 원했던 피디의 카메라 옆에는 티셔츠를 벗어 빙빙 돌리며 환호하는 유럽 젊은이와 다시 소리를 지르기 시작하는 중국인 아저씨들이 있었다.

 그래서 잘 찍었냐고? 다행히 도강의 장관도 담았고 먹이를 덮치는 악어도 놓치지 않았다. 관광객은 물론 모두 화면 밖으로 내몰았다. 다큐 카메라 옆에 고독 따위는 없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김형준 교육방송 다큐멘터리 피디

- 한겨레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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