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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호 “창작열정 식었을 때 일가족 자살 뉴스에 울컥, ‘사랑으로’ 만들었죠”

[기타] | 발행시간: 2012.06.16일 00:00

방송 화면의 3분의 2를 차지하던 그의 몸집이 반으로 홀쭉해졌다. 선글라스를 끼고 카페 안으로 들어오는 그의 모습은 지난 세월의 흔적을 깡그리 무시할 만큼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체격도 체격이지만, 윤기가 흐르는 그의 보드라운 얼굴 피부에서 어떤 ‘변화’가 읽혔다.

‘혈색이 좋아 보인다’고 하자, 그는 “술 끊고 25㎏ 뺐다”고 자신감 넘치는 대답을 내놓았다. “2년간 25㎏ 뺐으면 대단한 노력 아니에요? 하하. 어느 날 너무 피곤하고 힘들어서 병원에 갔더니 덜 먹으면 된다고 해서 아침엔 계란 한 개, 점심엔 공기밥 3분의 1, 저녁엔 야채 샐러드로 식단을 바꾸고, 운동도 병행했죠. 제가 술도 좋아해서 한번 마시면 14시간 동안 마시는 두주불사(斗酒不辭)형인데, 그걸 끊었으니….”

이주호(57). 이정선, 한영애 등과 함께 4인조 혼성 포크그룹 ‘해바라기’의 일원으로 활동하다, 솔로 데뷔 이후엔 ‘행복을 주는 사람’ ‘모두가 사랑이에요’ ‘사랑의 시’ ‘어서 말을 해’ ‘사랑으로’ 등 소위 주옥같은 히트곡을 쉴새없이 쏟아낸 포크계의 ‘전설’이다.

그의 노래는 늘 ‘국민 가요’로 수렴됐다. 중·고교 졸업식엔 언제나 ‘그날 이후’가 단골 레퍼토리였다. 기타 좀 친다는 이들에게 그 능력을 보여주는 곡으론 어김없이 ‘내 마음의 보석상자’가 선택되곤 했다. 전국민을 하나로 모을 때, 그리고 노래방 마지막 곡으로 어떤 곡을 고를지 난감할 때, 보편타당한 곡으로 ‘사랑으로’가 무리 없이 선택되어지는 상황은 그의 노래가 지닌 숨은 진가(眞價) 중 하나다.

지난 12일 그가 30여 년간 살아온 서울 강남구 삼성동 자택 근처 한 카페를 찾았을 때, 두려움이 앞섰다. 방송에선 늘 묵묵히 노래만 하던, 그래서 그는 대화에서도 무응답 내지 단답형으로 일관할 것이라는 선입견이 쉽게 지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능숙한 달변가였다. 친근한 삼촌과 나누는 듯한 대화로 시작된 인터뷰는 삶의 의미와 가치를 탐구하는 철학자와의 만남으로 귀결되고 있었다. 그는 음악만큼 멋있는 사람이었다. 올해 듀오 ‘해바라기’는 결성(1982년) 30주년을 맞았다. 이주호는 30주년 기념 소감으로 “굳이 특별한 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우리는 늘 양지와 음지를 오가며 끊임없이 노래해왔고, 또 노래할 것”이라고 했다.

―술 끊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요.

“원래 저는 맥주 한잔도 못마시는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공부하듯 조금씩 마셔대니 어느 순간 익숙해지더라고요. 결국엔 아무리 먹어도 취하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지요. 더이상 몸이 받쳐주질 않으니, 결국 술을 끊어야 했어요. 술을 끊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술잔 밑에 진실이 있더라고요. 많이 마시면 안 된다는 진실이었죠. 무엇이든 과하면 다친다는 사실을 정확히 알려준 거예요. 지난 2년간 끊은 게 술만은 아니에요. TV도 끊고 비만도 끊었죠. 2년 전 방송에서 내 모습을 보니까 정말 해도 너무 했더라고. 하하. 그래서 3일 굶고 2일 먹는 식으로 총 27끼를 굶으니까 뭔가 표가 나기 시작했어요.”

―요즘은 어떻게 지내시나요.

“계속 운동요법과 식이요법을 통해 건강을 관리하고 있고 이달 말쯤 새 음반을 낼 계획이에요. ‘캠퍼스 러브’라는 제목으로 앨범 두 장을 선보이는데, 한 장은 이달 말, 나머지 한 장은 가을쯤에 나와요. 신곡이 7개씩(두 장 모두 14곡), 기존곡이 5개가 수록될 거예요. 해바라기의 21세기 버전 작품쯤으로 봐주시면 될 것 같아요.”

―여전히 창작 활동이 왕성하시네요.

“여전히 상대방 눈빛을 보고 제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뭘 좋아하는지 느끼니까 영감은 수시로 떠올라요. 그게 세상 아닌가요? 기자님 눈 안에 세상이 있듯, 제 안에 세상이 있죠. 세상 안에 제가 있고, 제 맘 안에 세상이 있는 셈이에요. 그러니 온통 영감 덩어리 아니겠어요? 엄밀히 말하면 살아있는 것 자체가 영감이죠.”

이주호는 일견 ‘한국의 엘턴 존’으로 비유될 수 있다. 엘턴 존이 피아노만 앞에 있으면 언제든 5분 안에 뚝딱 ‘대니얼(Daniel)’ 같은 곡을 만들 수 있다고 말한 것처럼 이주호 역시 기타만 있으면 훌륭한 멜로디를 금세 뽑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즉석 멜로디 창작은 이주호의 작곡 능력을 단박에 알려주는 신호이기도 하지만, 타고난 그의 예민한 감성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일례로 서울 종로의 악기사에 기타를 사러 갔다가 외투 안에 있던 ‘사추기’라는 가사를 꺼내 읽고 ‘필(feel)’을 받아 새 기타로 멜로디를 즉석에서 입힌 곡이 ‘이젠 사랑할 수 있어요’다.

―감성은 계속 살아 꿈틀거리는 모양입니다.

“지금도 예민해요. 너무 날카로워서 요즘은 수양을 할 정도예요. 지금도 동네 놀이터를 한바퀴 돌면서 나무와 흙 냄새를 맡고 새로운 감성들을 느끼죠. 어릴 땐 굉장히 내성적이고 말도 없는 스타일이어서 가만 놔두면 죽어 있는 느낌이 날 정도였어요. 저는 늘 자연에 대한 생각이 깊었어요. 바람을 느끼면서 바람 안의 향기를 글로 적었고, 그 안에서 삶을 생각하고 그랬어요. 그래서 곡도 중 2년 때 처음 썼어요. 제목도 ‘인생의 길’이었죠. 똑똑한 사람은 혼자 일하지만, 현명한 사람은 함께 일한다는 뜻이 들어있는 곡이었는데, 그 나이에 그런 생각을 할 만큼 조숙했어요.”

―그룹 ‘해바라기’로 시작했는데, 듀오로 나설 때도 ‘해바라기’란 이름을 사용했습니다.

“첫 출발은 1977년 이정선, 한영애, 김영미, 저 이렇게 4명이서 시작했어요. 주 활동 무대가 서울 명동 가톨릭 회관이었는데, 주로 창작품을 노래했죠. 그 회관에는 노래 무대가 여럿 있었는데, 그 중 해바라기홀에서 주로 서다 보니 그룹명이 됐고, 나중에 솔로로 나설 때도 (이)정선이 형에게 허락을 얻어 그대로 사용하게 됐어요. 해바라기라는 이름엔 신앙, 숭배, 의지의 꽃말이 있어서 더 마음에 들었어요. 저는 그룹에서 계속 머물고 싶었는데, 제대하고 나서 보니 그룹이 해체돼서 어쩔 수 없이 솔로로 나섰어요.”

―듀오 ‘해바라기’ 초기 시절의 음악들은 대중성과 실험성에서 모두 호평받았습니다.

“저는 당시 블루스나 재즈에서 보여지던 12소절 반복 패턴에서 벗어나는 음악을 하고 싶어 했어요. 많은 습작들을 만들다 보니 기승전결이 갖춰진 멜로디를 만들게 됐고, 노랫말을 표현하는 것도 더 심플해지고 그렇게 발전해갔죠. 특히 사랑하면서 생기는 많은 변화들 속에 변화하지 않는 그 어떤 것들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싶은 욕심이 컸어요. 메시지 속에 숨은 철학들을 애써서 만든 작품은 3집까지였던 것 같아요. ‘사랑은 언제나 그 자리에’(3집) 이후부터는 할 얘기도 없고 그래서 그냥 설렁설렁 노래하며 일했던 것 같아요.”

―창작의 열정은 그 이후 다시 불타오르지 않았다는 뜻인가요.

“한동안 그랬었죠. 그러다 1988년 어느 날 서울 공항동에서 자살한 가족 뉴스를 접했어요. 자살을 시도했는데, 세 살짜리 막내만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에 잊었던 감정들이 하나씩 돋아나기 시작했죠. 1986년도에 이미 써놓은 가사가 있었는데, 이 사건을 보고 급하게 멜로디를 만들어 가사에 붙였더니 너무 잘 맞더라고요. 그게 1989년에 발표된 ‘사랑으로’였죠.”

‘내가 살아가는 동안에/할 일이 또 하나 있지/바람부는 벌판에 서 있어도/나는 외롭지 않아…’로 시작하는 ‘사랑으로’는 금세 국민 합창송이 됐다. 이주호는 “3집 이후 사랑의 의미가 좀 식상할 때, ‘사랑으로’로 다시 사랑의 샘물이 솟아나는 걸 느꼈다”며 “연인에 대한 사랑이 초창기에 많았지만, 점점 휴머니즘에 입각한 사랑이 늘어났다”고 했다.

―듀오 ‘해바라기’ 시절엔 유독 멤버 교체가 잦았습니다.

“그랬죠. 유익종, 이광준, 심명기, 강성운까지 호흡을 맞췄고, 그들과 재회도 한번씩 했네요. 유익종과는 1집과 3집에서, 이광준은 2집, 4집, 5집에서 다시 만났죠. 강성운과는 현재 14년째 같이 활동하고 있어요. 중 3년 때, 해바라기 3집만 1000번 들었다는 마니아 중의 마니아죠. 제가 리더인 줄 아는 사람들은 멤버가 바뀔 때마다 제 성격을 들먹이곤 했어요. 하지만 그건 사실과 달라요. 저는 오로지 작품만 쓰고, 음악에만 몰두했을 뿐이에요. 다른 멤버들이 원하는 솔로 활동이 생길 때마다 멤버가 교체됐을 뿐이었죠.”

‘해바라기’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듀오 멤버인 유익종은 이전에 ‘그린 빈스’에서 활동했다. 유익종은 이 팀이 해체되자 곧바로 진천에 내려가 돼지를 키울 계획이었으나, 이주호가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한다’며 그를 만류, 해바라기 멤버로 합류시켰다. 길거리에 나앉게 생긴 이광준을 다시 멤버로 들인 것도 이주호의 노력 덕분이었다. “제가 어느 라디오 방송에서 MC가 왜 이렇게 멤버가 바뀌냐고 물을 때, ‘참 자유인의 모습이 아닌가’라는 대답을 한 적이 있어요. 저랑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그만두고, 또 와서 하고 싶으면 하고 그런 거죠. 어차피 시작은 끝을 향해 달려가고, 만나면 또 헤어지는 법이니까요.”

―음색에 진정성이 투영된 것이 ‘해바라기’ 음악의 가장 큰 특징인 듯합니다.

“제가 만든 노래는 제 영혼의 표현이니까요. 전 제 노래 ‘사랑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처럼, 진짜 사랑하며 노래하고 싶어요. 제 자신만 생각하면 사는 게 그리 어렵지는 않을 거예요. 남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 길바닥에 앉아있는 사람도 그냥 두고 볼 수 없는 거죠. 그게 제 운명이고 팔자인 것 같아요.”―수많은 히트곡만 보면 인기로 먹고사는 ‘톱스타’의 길을 걸었을 법한데요.

“처음부터 상업적인 진로를 모색하지 않았어요. 일부러 외롭지 않으려고 그런 거죠. 뭐랄까요. 제 인생이 좀 더 풍요로워질 수 있도록 제게 공간의 미학을 배려했다고 할까요? 오르면 오를수록 고독해지는 게 인생 순리예요. 그래서 해바라기는 가요순위 프로그램에서 1위를 해 본 적이 없어요. 시작부터 1등한 사람은 내리막길밖에 없잖아요. 내려가는 아픔은 올라가는 고통보다 견딜 수 없이 힘든 일이에요. 죽을 때까지 올라가는 기회를 제 스스로 얻고 살기 위해 그랬을 수도 있고요. 인기라는 건 장대 끝에 매달린 날계란 같은 거예요. 그래서 얻는 것에 목숨 걸지 말자는 주의로 지금까지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 거예요.”

그가 평생 ‘포크’라는 장르에 집착하는 것은 포크가 자연에 가장 가까운 음악이기 때문이다. 나무와 철로 구성된 기타는 꾸미지 않은 자연의 소리를 쏙 빼닮았고, 그의 감성을 매만지는 촉매제로 존재해왔다. 그는 “나무로 된 악기로 연주를 하다 보니까, 어느덧 말하지 않는 세상에서 영원한 자연의 벗이 된 것 같은 기분”이라고 했다. 자연에서 건져낸 순수한 사랑의 메아리. 음악을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면 이는 전적으로 그의 공로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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