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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기 25 ] 엄마의 온돌 (3)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19.11.11일 16:00
연길 세집

2017년 8월 24일

어렸을 적부터 나는 겁이 꽤 많았다. 특히 밤이 되면 변소에 가기를 그렇게 무서워했다. 그래서 항상 엄마가 아니면 아버지가 ‘보초’를 서주어야 했다. 캄캄한 시골의 재래식변소에 앉아있으면 자꾸 누군가가 뒤에 서있는 것 같고 당장이라도 밑으로부터 뭔가가 올라올 것 같은 공포감이 들었다. 그래서 한밤중이라도 화장실에 가야겠다 싶으면 렴치불문하고 아버지 아니면 엄마를 깨웠다. 간혹가다 아버지가 술을 마시고 깊은 잠에 빠져있으면 영낙 없이 엄마를 깨울 수밖에 없었다. 그런 시간들은 꽤 오래동안 이어졌다.



2017년 8월, 작자 김현철(중)의 엄마(오른쪽)과 김현철의 고모 연길 세집에서

그러다가 고중에 가고 대학에 간 뒤 방학이면 집에 돌아오게 되는데 장이 안 좋은 탓으로 엄마가 해준 음식들을 과하게 먹으면 밤에 화장실에 갈 때가 많았다. 내가 화장실에 갈 때마다 아버지가 롱담 삼아 “보초 서달래?”하구 해서 내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지금 내 나이 몇살입니까?”하며 웃군 했다 그런데 간혹가다 내가 말없이 조용히 화장실에 갔다 나올 때면 엄마가 마당에 서있군 하였다. 왜 나왔냐고 물으면 그냥 엄마도 화장실에 가려고 나왔다며 둘러 대군 하였다. 엄마는 내가 무서워할 거라 생각하고 ‘보초’ 서주러 나온 것이였다. 결국 엄마에게는 아직도, 언제까지든 내가 겁이 많은 아들로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무뚝뚝하게 뚜벅뚜벅 집으로 들어갔지만 마음은 따뜻했다. 누군가가 다 큰 나를 지켜주려 한다는 게 싫지 않았다. 그게 엄마니까 더욱 그랬다.

이제는 내가 엄마를 지켜줘야 할 때인데 나는 그저 이렇게 엄마 옆에서 지켜보고만 있다. 치료에 아무 도움도 없이 그저 이렇게 지켜만 보고 있다. 오늘도 엄마는 팔다리를 주물러보며 근육이 다 빠지고 물렁물렁해진 것 같다며 허구프게 웃었다. 짧은 두달 동안 무려 8키로그람이나 감량되였으니 기운이 있을 리가 없다. 먹고 싶은 게 많은데 자꾸 눌리우는 느낌이 들어서 못 드시겠단다. 완벽한 수술이 아니더라도 큼직하게 생긴 덩어리만은 좀 떼여내서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주면 안되나 하는 도깨비 기와장 번지는 생각도 들었다. 안타깝다.

엄마의 아빠트

2018년 1월 11일

누룽지얘기가 나오니 생간 난다. 대학시절 기숙사생활을 하면서 저녁이면 늘 배가 고팠다. 라면도 먹고 싶고 이것저것 먹고 싶은 것이 참 많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기를 끈 것은 누룽지였고 엄마가 직접 가마에 붙여 만든 누룽지는 단연 최고였다. 엄마는 가마밥을 할 리유가 없었지만 나한테 누룽지를 말려부쳐주기 위해 일부러 가마밥을 앉혔다. 심지어 그 무더운 여름에도 말이다. 그렇게 매일매일 모아서 어느 정도 모아지면 택배로 학교에 부쳐주군 했다. 그런데 그 인기 있는 누룽지는 불과 이삼일 만에 바닥이 나군 했다. 엄마에게 그대로 말해줄 수는 없었다. 아니면 또 매일매일 고생스럽게 가마밥을 해야 되나까. 그 맛을 잊을 수 없다. 그것이 그저 간단한 누룽지만이 아니였음을 오늘 더 실감하고 있다.

고중시절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엄마는 늘 내가 학교에 들고 갈 짐꾸레미에 온갖 잡다한 음식들을 쑤셔넣군 하였다. 돼지고기 졸임, 고소기 졸임, 혹시 터지면 가방안의 옷을 더럽힐 수도 있으니 아예 절인 후 말리워서 넣어준 적도 많았다. 그걸 끌고 학교까지 가는 길은 결코 쉽지 않았다. 기숙사까지 가면 큰일을 해낸 것 마냥 성취감을 느낄 정도였다. 땀을 훔치며 엄마에게 “도착했습니다.”하고 전화를 하면 엄마는 늘 기쁨 반, 아쉬움 반이였다. 한 학기가 더 지나야 다시 볼 수 있다는 아쉬움, 물건을 용케도 메고 기숙사에 도착했다는 데 대한 기쁨, 엄마는 그 멋에 살아오셨다. 힘든 것도, 외로운 것도, 서러운 것도, 오직 이 아들을 향한 사랑 하나만으로 굳건히 이겨내셨다.

이제 엄마는 밥이 아닌 누룽지를 불려서, 끓여서, 거기에 마늘을 갈아서, 보기만 해도 맛 없을 정도 아닌 음식을 약처럼 드셔야 한다. 드시기도 싫고 어렵게 드시고 나면 새벽까지 고통스럽게 지내다가 기진맥진하여 잠시 눈을 붙이신다. 이제 엄마에게 밤잠이 따로 없고 아프거나 아프지 않을 때가 따로 없다. 엄마에게는 정신적, 육체적으로 아픈 시간들 만 남아있다. 그리고 엄마가 그토록 사랑했던 아들은 옆에서 지켜보기만 할 뿐 어떤 도움도 못 주고 있다.

엄마, 그 곳에도 달래가 있나요?

2018년 8월 10일

엄마, 오늘도 이렇게 조용히 불러봅니다. 엄마가 가신 지가 넉달 좀 더 됩니다. 그런데 갈수록 엄마가 더 생각 나네요. 날씨가 화창한 날 어딘가에서 예쁜 꽃을 보거나 푸르싱싱한 풀들을 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어제 밤에도 제 꿈에 나타나서는 역시 아무 얘기 없으셨지요. 엄마와 나는 아직도 엄마의 치료법에 대해 진지하게 상의하고 있더군요. 그런데 엄마는 아무 대답이 없이, 표정으로만 얘기하시더군요. 엄마의 목소리를 듣기가 왜 이렇게 어려울가요? 그렇게도 할 말이 많으실 엄마인데 왜 아무얘기 없이 절 보고만 계시는가요?

며칠전에는 낮잠을 자다가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서 무작정 일어나 엄마가 달래를 캐던 그 자리로 갔습니다. 엄마가 달래를 캐던 그 곳에는 풀들이 높이 자라있더군요. 멀리서 그 쪽을 바라보았습니다. 하얀 모자를 쓴 엄마가 잽싼 솜씨로 달래뿌리에 칼질하는 모습이 어렴풋이 보이더군요.



달래 캐는 엄마

이른 봄, 들꽃이 필가 말가 하는 그 들에서 엄마는 달래를 잘도 골라냈지요. 이제 다시 그 곳에는 가지 말아야지, 못 가겠지 하고 생각했었는데 그 날은 오직 그 곳만 가고 싶더군요. 이제 이렇다 저렇다 결심 같은 것을 하지 않겠습니다. 마음이 내키면 가고 가기 싫으면 가지 않고 1년 채 안되는 시간 동안 엄마가 좋아했고 환히 웃으며 갔었던 그 곳들, 그게 어디든 마음이 시킨 대로 찾아가 엄마의 모습을 찾겠습니다.

8월 4일 날엔 엄마가 그토록 가슴 절절히 사랑하던 손자 라빈이의 두 돌 되는 날이여서 기념사진을 찍으러 갔었습니다. 처음엔 협조를 잘해 칭찬을 받으며 순조롭게 찍다가 어느 순간엔가 떼 질을 쓰며 전혀 협조를 안하더군요.



환히 웃으시며 사진을 찍던 그 날

바로 1년전, 엄마랑 아버지랑 우리 세 식구가 같이 라빈이 첫돌 사진 찍던 그 날이 많이 생각났습니다. 비가 많이 내렸지요. 정말 폭우가 쏟아지다 싶이 했습니다. 며칠 뒤 사진들을 찾으러 가는 날에도 폭우가 쏟아졌습니다. 엄마는 그 날 즐겁게 사진을 찍으셨지만 마음속에는 큰 걱정이 있었죠. 사진 찍기 바로 전날, 큰병원에 가서 정밀 검사를 받아보라는 통지를 받으셨으니까요.

라빈이가 떼 질 쓰는 모습을 보며 엄마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엄마가 있었다면 손자를 잘 다독이여 활짝 웃게 했을 텐데 말이죠. 그럭저럭 사진촬영을 마쳤지만 자꾸 1년전 첫돌 사진 찍을 때가 생각났는지 안해도 사진콘셉트(개념)들이 그다지 맘에 들지 않는다며 돌아오는 내내 기분이 처져있더군요. 그게 불과 1년전 인데 지금 그렇게 활짝 웃던 엄마의 모습이 사진 속에만 담겨져있네요.

그 날 오전엔 또 제가 존경하는 한 기업가의 장례식에 참석하게 되였습니다. 사업수완도 대단하시고 자선공익 사업에도 엄청 많이 참여하시고 주의 사람들, 지어 생면부지의 어려운 이웃들에게도 통 큰 베품을 실행해온 멋진 분이셨습니다. 5년전 직장암 말기로 진단을 받으셨지만 시종 락관적인 정신과 강인한 의지로 하루하루를 시간과 경주하며 치렬하게 살아오신 분입니다.

돌아가시기 전날, 마지막으로 그 분 병문안을 갔는데 저를 알아보시더군요. 의식은 그대로 인데 페기능이 약화되여 참으로 힘들어보였습니다. 장례식장에는 수많은 화환들이 배렬되여있었고 간결하지만 격이 높은 추도회가 거행되였습니다. 추도곡도 아리랑으로 대체하더군요. 참으로 마음 아픈 리별이였지만 참석자들의 진심이 느껴졌습니다.

남의 일 같지 않더군요. 엄마가 아플 때에도 여러 번 조언을 구했던 분입니다. 그 분 아드님을 보는 제 마음이 참으로 먹먹했습니다. 어떻게 기억하셨는지 그 분 안해 되는 분이 엄마의 문안을 하더군요. 순간, 많이 놀랐습니다. 물론 엄마의 가슴 아픈 소식을 담담하게 전해야 하는 시간이였지만 엄마를 한번도 본 적 없는 그 분이 어디서 얼핏 들은 엄마의 얘기를 가슴에, 념두에 두고 저한테 문안했다는 것이 참으로 의외였고 마음이 따뜻했습니다.

며칠 동안 그 분이 눈앞에 선했고 그 때마다 엄마가 같이 떠오르더군요. 일류의 병원이 아닌 고향의 호스피스병원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생을 마감한 자그마한 침대에 누워 진통제만 피부 속으로 주입하며 최후의 영별을 기다려야 했던 엄마가 마음이 아팠고 초라하게 치러진 엄마의 고별식도 마음이 아팠고 의식이 없는 것 같았던 엄마의 그 최후의 시간들이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을 것 같은 예감이 들어서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마지막 순간, 애써 눈을 떠서 이 아들을 응시하며 운명하신 그 순간들이 자꾸만 제 심장을 긁어놓습니다. 얼마나 힘드셨을 가요? 얼마나 버티기 힘드셨을가요? 얼마나 저희들을 두고 가기가 싫으셨을가요? 얼마나 절망적이였을가요? “세월아 너만 가거라~!”하며 엄마가 집에 혼자 있을 때 부르던 그 노래에 얼마나 많은 아픔들이 들어있었을가요? 문이 두개인 랭장고를 어루만지면서 이 아들에게 보내 줄 수많은 먹을거리들과 뜻대로 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그 생각들을 반복하면서 얼마나 가슴이 먹먹했을가요? 병문안을 온 한 사람 한 사람을 출입문으로, 창문으로 손 저어 배웅하면서 얼마나 살고 싶으셨을가요? 그 사람들에게 따뜻한 밥 한끼를 대접하며 평범한 미래를 함께 얘기할 수 있다면 좋겠는데 하는 생각을 꿈꾸며 얼마나 입술을 깨물며 서러움을 참으셨을가요?

며칠전, 라빈이와 안해를 차에 태우고 놀러 나갔다가 하마트면 큰 사고가 날 번했습니다. 굽인돌이를 도는데 순간 다른 생각을 했다가 빠른 속도로 직진해오는 중형 차량의 경적소리를 듣지 못한 채 회전하고 말았습니다. 다행히도 상대 운전사가 반응이 빨라 핸들을 돌려 제 옆으로 휙― 하고 스쳐지나가더니 앞에 차를 세운 채 내려서는 저를 향해 화를 내더군요. 당연히 제 잘못이 크니 공손하게 잘못을 구했습니다.

얼마나 위험한 상황이였나 하는 생각에 한동안 심장이 쿵쿵 거렸습니다. 그러면서 순간적으로 엄마가 생각나더군요. “아, 엄마가 우리를 돌봐주고 있구나.”귀를 스칠 듯 속력 있게 스쳐지나며 들려오던 그 소리가 꼭 마치 엄마의 재빠른 움직임처럼 느껴졌습니다. 엄마, 그 날 엄마가 돌봐주신 거 맞으시죠? 우릴 내려다보고 있는 거 맞으시죠? 엄마, 제가 죄송합니다. 엄마가 아끼는 사람들을 위해 제가 시시각각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되는데 말이죠. 정말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많이 명심할 것을 약속드릴게요.

요즘은 짬만 나면 집 옆 공원에 나갑니다. 아주머니들을 보면 또 나이를 예측해봅니다. 누구든지 요즘은 늘 그 사람의 나이가 궁금합니다. 며칠전 만났던 80세 되는 한 교수님이 얘기해주신, 유엔에서 발표한 나이 기준에 따르면 엄마의 나이는 아직 청년에 속하더군요. 전세계 인류의 평균 수명이 그렇게 늘어났나 하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적어도 아시아의 기준에 맞춰도 엄마의 나이는 중년이죠. 에누리 없이 중년입니다. 인생의 가장 전성기에 처해있을 나이인 셈이죠.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그래서 너무 안타까울 땐 이런 생각을 합니다. 엄마 나이 53세, 내 나이 33세, 그러니까 적어도 앞으로 20년까지는 엄마에게 너무 미안해하지 말자. 엄마만큼 한 나이를 살 때까지는 그저 엄마처럼 열심히 사는 것으로, 그래도 되는 것으로 생각하자. 그리고 그 이상이 부여된다면 그 때 가서 다시 생각하자… 이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이나마 편해집니다. 엄마, 저 그래도 되나요? / 김현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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