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가(刘佳)는 호북 지원 군대의료팀의 90후 간호사이다. 12년 전 문천지진 때 훼손된 학교 건물에 갇혀있던 류가는 해방군의 구조를 받아 구출되였다. 12년 후 군대 사무직 간호사가 된 류가는 자원하여 무한에 갔다…
“저에게 당년의 은혜에 보답할 기회를 주세요.”
2008년 문천지진 때 류가가 다니던 중학교는 훼손이 심각했다. 교통이 막혔고 통신이 중단되였으며 그와 그의 친구들은 무력한 상태로 평생에 걸쳐 가장 잊지 못할 하루 동안의 낮과 밤을 보냈다.
류가는 그때를 회상하면서 “그 당시 먹을 것도 없었고 매우 추웠습니다. 제가 정확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해방군이 와서 운동장에 텐트를 쳐주었고 음식을 가져와 우리에게 주면서 우리를 위로해주었어요. ‘괜찮으니 무서워 마세요.’라고 말이죠. 지금 다시 생각해도 너무 따뜻합니다. 이 은혜를 마음속 깊이 간직해두었답니다. 그때 생각했어요, 앞으로 무엇을 하고 또 어떤 직업을 선택하면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을가 말이예요.”라고 말했다.
이런 보은의 마음을 품고 류가는 대학교를 졸업한 후 륙군군의대학 서남병원의 문직인원(文职人员)에 합격하면서 최초의 그 꿈을 실현하였다. 그리고 돌발적인 전염병 발생상황에 직면하여 그는 두번이나 자원신청서를 제출하여 무한에 갈 것을 청했다.
“해방군의 일원으로서 이것이 바로 제가 늘 하고 싶었던 일입니다! 저에게 당년의 은혜에 보답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십시오!”
“최선을 다 하기만 한다면 아쉬움은 남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갓 무한에 왔을 때, 모든 것이 생각만큼 그렇게 순조롭지는 않았다.
류가는 “처음 막 왔을 때는 머리띠를 하고 ‘홍색구역(红区)’에 들어가서 십여분도 안되면 머리가 터질듯이 아파나서 다시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며 “당시에 저는 정말 너무 실망했어요. ‘다른 사람들은 다 할 수 있는데 왜 나는 안될가?’ 방호복을 랑비하고 동료들에게 페를 끼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라고 말했다.
“한 환자분께서 우리가 저녁 직발을 서고 있을 때 심장이 갑자기 멈췄어요. 저에게는 충격이 상당히 컸습니다. 그날 돌아와서 련속 며칠밤 머리속에 갑자기 그 환자분의 얼굴이 떠오르는거예요. ‘내가 좀 더 힘을 낼 수 있지 않았을가, 그랬다면 그를 살릴 수도 있지 않았을가…’”
그 일이 있은 후 의료팀의 심리전문가가 류가에게 심리교육을 진행했다. 나이 젊은 류가는 자신이 문득 성장했음을 느꼈다. “제 생각에 모든 의료일군들 모두 한차례 심리교육 과정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느낍니다. 생명이 위급한 환자를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말입니다. 우리가 최선을 다 하기만 한다면 아쉬움은 남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꿈꾸던 그대들의 모습으로 성장했어요.”
발걸음이 빠르고 동작이 빠르고 말하는 속도가 빠르다. 이는 류가에 대한 사람들의 첫인상이다. “분투가 없으면 청춘이 아니다.” 이는 류가가 방호복에 적어놓은 선언이다.
요며칠 각 지방의 호북 지원 의료팀들이 륙속 철수하면서 부분적 코로나19 환자들이 류가가 소속된 무한태강동제병원에 집중되였다. “마치 지뢰를 밟으면서 출근한다는 기분이 조금 들기도 합니다. 증상이 좀 중한 환자들이 여기로 오다보니 우리도 매일 더 바빠지고 있습니다.” 비록 쉴틈 없이 바쁘지만 류가의 마음속에는 열의가 차넘친다.
해방군에 의해 구출되여서부터 지금은 군대의 문직인원으로 다른 사람들을 돕기까지, 류가의 성장은 그야말로 모든 사람들이 함께 지켜보았다.
무한으로의 역행을 선택한 류가는 어릴 때 꿈꾸었던, 군대에 입대하여 보은하려던 꿈을 실현하였을 뿐만 아니라 특별한 ‘선물’을 수확하기도 하였다. –그것은 바로 입당이다!
“문천지진 때 저는 해방군의 도움을 받아 구조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무한에 지원오면서 제가 또 해방군의 신분으로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게 되였습니다. 그야말로 노래가사에 나왔던 대로 말이죠. ‘저는 커서 그대들이 되였어요!(长大后我就成了你!)”
한분한분의 평범한 역행자들 모두 영웅입니다!
정의를 위해 앞으로 나아가주어 감사합니다!
곤난 앞에 용감하게 앞장 서주어 감사합니다!
류가, 그대는 훌륭합니다!
/래원: 인민일보 편역: 김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