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이자 앱 | | 모바일버전
뉴스 > 경제 > 경제일반
  • 작게
  • 원본
  • 크게

40여년의 교직경력, 18년 교장을 맡아온 리정출교장의 인생스토리

[흑룡강신문] | 발행시간: 2023.06.21일 14:03
  "올해 4월에 퇴직을 했어요. 천근짐을 내려놓은 듯 가벼워요."

  초여름의 따스한 해빛이 교정을 비추는 5월말의 어느날, 녕안시조선족중학교에서 리정출교장을 만났다. 얼핏 보아도 체구에 비해 많이 야위여진 모습이였다.



녕안시 조선족중학교 1층 학교현관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리정출 교장

  "체중이 5킬로정도 빠졌어요..." 먼 곳을 응시하며 차분히 이야기하는 그의 모습에서 40년간의 교직생활과 18년이라는 짧지 않은 교장직을 맡아온 영광과 그동안 겪어온 피타는 노력과 수많은 고뇌를 느낄 수 있었다.

  성급 우수 담임교원의 영광을 지니다

  리정출교장의 고향은 치치할시 태래현 서광촌이다. 1963년생인 그는 1981년에 우수한 성적으로 오상사범학원 일본어전업에 입학하였다. 3년간의 학업을 마치고 졸업을 앞둔 1983년 그해에 그는 교원을 초빙하러 간 녕안조중 교무주임의 눈에 들어 녕조중으로 오게 되였다. 당시 자신이 살던 치치할시 태래현 서광촌과 1400여리 상거한 녕안이라는 낯선 고장에 오는 것이 선뜻 내키지는 않았으나 당시 흑룡강성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조선족들이 가장 많이 집거해있는 녕안과 우리성에서도 한창 호황을 맞으며 두각을 보이던 녕안시조선족중학교에 취직하여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고 싶었다. 녕안시조선족중학교는 목단강시조선족중학교와 같은 해인 1945년에 설립된 78년의 력사를 가지고 있는 가장 오래된 민족학교이다. 리정출선생이 녕안과 맺어진 인연이 오늘날까지 장장 40여년을 이어온 것이다.



  “당시 녕안시조선족중학교에 저를 포함하여 13명의 교원이 배치를 받았습니다. 첫해 봉급이 31.50원이였습니다. 후날 일련의 일들로 인해 같은 해에 함께 배치받았던 교원들이 하나둘씩 빠져나가 나중에는 13명 중에 저 혼자만 남게 되였습니다.” 리정출교장은 그때를 회억하면서 서글픈 웃음을 지어보였다.

  12명의 신입교원들이 하나둘씩 전부 하해하였다는 것은 격변기의 당시 상황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개혁개방이 불어닥친 이곳 녕고탑(녕안시의 옛날 명칭)에도 연해지역으로, 외국으로 나가는 풍조로 인해 많은 인재들이 류실되였던 것이다. 10여년 교령을 지닌 교사들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교단을 떠나던 시기였다.

  그러나 리정출교장은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누군가는 이끌어가야 하는 하늘아래 가장 영광스러운 직업인 민족학교 인민교사사업에 대한 열애와 학생들의 초롱초롱한 눈길을 외면할수가 없었다는 것이 굳건히 교사직을 감당해낸 유일한 원인이라고 하였다.

  1983년 졸업분배 첫해부터 그는 반급 담임을 맡았다. 어찌보면 그에 대한 신뢰가 그만큼 컸다는 반증이기도 하였다. 학교에서도 가장 말썽꾸러기 반으로 이름을 날릴 정도의 아이들과 애숭이 새교사와의 만남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참다운 자세로 학생들의 신뢰를 얻어내기 위한 첫걸음을 내디디기 시작했다. 사랑으로 아이들을 보듬어주자. 그는 마음을 다잡고 “자전거방문”을 결심하였다. 골치거리 학생들을 중심으로 가정방문의 길을 선택하여 실천에 옮겼다. 학생들의 리력을 료해하고 적시에 맞는 교육을 진행하려면 가정방문 외에는 별도리가 없었다. 그때부터 그는 한학기의 토요일과 일요일 시간을 모두 바쳐 전 학급 60여명 학생들의 가정을 루계로 두번이나 가정방문을 하였다.

  그의 자전거방문은 대뜸 학부모들의 감동을 자아냈다. 학부모들과 손잡고 아이들의 적성에 맞게 교육을 이끌어가니 아이들의 눈빛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교사인 그에게 있어 이번 학기의 “자전거방문”실천은 그에게 신뢰의 중요성과 인성교육의 단맛을 보게 하였다. 담임경력 6년이 되던 해인 1989년 교사절을 맞으며 그는 녕안조중에서 유일하게 성급 우수담임으로 당선되여 표창받았다. 이는 오늘날까지 녕안조중력사에서 전무후무의 영예이기도 하였다.

  리정출교장은 교직에 몸담그는 동안 연변대학 본과 함수 및 동북사범대학 연구생과정을 마쳤다.

  공청단 서기에서 정교처 주임으로 발탁

  1989년 새학기를 맞으며 그는 학교 공청단서기로 발탁되였다. 학교의 공청단조직이나 학생회는 학생들을 위한 단체이기에 학생들의 심리특징에 맞는 활동을 전개하는 것이 가장 필요하다. 생각을 굳힌 그의 첫시작은 학생간부 배양이였다. 또한 례의교양도 선도하여 녕조중 만의 특유의 교정문화를 창출해냈다. 휴지 한장 찾아볼 수 없는 깨끗한 교정, 오는 손님들과 선생님들에게 깍듯이 인사를 올리는 학생들의 자각적인 행위는 학교에 생기를 불어넣었고 학생들의 몸에서 빛을 뿌렸다.



  3년후인 1992년 9월부터 그는 학교 정교처 주임직을 맡게 되였다. 정교처는 담임사업과 학생사업을 주관하는 부서로서 학교의 일상 골치거리를 해결하는 부문이기도 하였다.

  사업의 수요에는 무조건 복종을 하여온 그였지만 이 사업의 분량만은 어깨가 뻐근해났다. 하루가 멀다하게 들이닥치는 사건들에 정말 손을 놓고싶을 만큼 힘에 부쳤다. 그만큼 그 세월에는 학생들의 악성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던 혼돈의 시절이기도 하였다. 그의 발길은 가정방문, 병원, 공안국, 법원에 이르기까지 닫지 않은 곳이 없었다. 원칙적인 문제에서 양보를 모르는 그에게는 “호랑이 선생님”이라는 별명까지 붙어졌다. 문제 아이들을 엄하게 다스리지 않으면 주위의 아이들에게도 안좋은 영향을 미치게 되는 상황에서 취한 부득이한 행동때문이 아니였을가 싶다.



그의 고집과 일솜씨는 드디여 사람들의 인정을 받게 되였다. 심지어 오해를 했던 일부 학생이나 학부모들도 그의 일처사에 긍정의 찬사를 보냈다.

  인간세상은 모순으로 충만되여 있다. 또한 존경과 신뢰는 결코 하늘에서 떨어지는것이 아니다. 학생들에 대한 크나큰 사랑을 가슴에 품고 멀리 서서 앞을 내다보며 오늘의 모순을 처리하는 리정출교장의 책임감 넘치는 모습에서 사람들은 보석같이 반짝이는 교육자의 인성을 발견하게 된것이다. 하기에 그에게는 교장이라는 막중한 직무가 임명되였을 때 사람들은 아주 당연한것으로 받아들였으며 무한한 믿음과 아낌없는 축하의 박수를 보냈다.



  “매 학생마다 모두 하나의 진귀한 재부이고 무한한 가능성을 안고 있다. 학생들의 잠재력을 충분히 발굴하여 전면적이고 개성있는 인재로 자라나게 하여야 한다. 그러자면 사랑으로 키우고 진정으로 감화하며 지혜로 계발하고 인격으로 훈도하며 아름다운 미래를 끈질긴 노력으로 나아갈줄 아는 하나하나의 희망과 비전으로 충만된 생명체들을 배양해내야 한다.”

  리정출선생이 교원수첩 첫페이지에 쓴 내용이다.

  그는 자신이 쓴 내용을 말보다 행동으로 실천해가고 있었다.

  말보다 행동이 앞서다

  2005년 10월에 녕안시조선족중학교 교장으로 발탁된 그의 앞에는 희망보다 곤난이 더 첩첩했다. 학생수의 격감, 교사대오의 교단 리탈에 잇따른 사회의 불신과 의심이 만연되고 있었고 교원들의 사업열성이 식어가는 저조기였다. 설상가상으로 학교는 몇백만원에 가까운 채무로 아주 어려운 시기에 처해있었다.

  선자리 답보는 죽음을 의미한다. 그는 우선 교사들의 “형상수립공정”을 틀어쥐였다.

  “교사들이 할수 있는 일을 령도들이 우선이 되여야 하며 일반교사들이 할수 없는 일도 령도들은 해야 한다”는 강력한 조치였다.

  “하루가 비뚤면 당직 령도의 문제이고 일주일이 비뚤면 교장의 문제이다”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학교이미지를 흐리우는 “술문화”에 대해서도 엄격한 상벌제도를 도입했다. 리정출교장의 강력한 추진하에 라태하던 자태들도 자취를 감추고 학교의 일상은 긴장하고 박력있는 분위기로 바뀌게 되였다.

  녕안시에서 개최한 중소학교문체예술절에서도 녕안조중에서 대표로 선보인 조선민족무용을 바탕으로 한 집체무와 집단태권도 표현이 장내를 들썩였다. “녕안조중 최고!” 라며 엄지손가락을 내흔들 정도의 절찬을 받았다.

그뿐만아니라 2016년부터 중소학교 유치원 통일관리를 하기 시작하면서 교내 문체예술절도 두차례나 성대하게 거행하였다. “화합의 장, 축제의 장”을 주제로 열린 예술절은 대렬부터 시작하여 구류시합, 문화예술절목까지 완벽하게 선보였다. 유치원 아이들이 선보인 장고춤, 소학교에서 선보인 상모춤, 중학교 학생들이 선보인 현대힙합 등 많은 문예절목들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고 절찬을 받았다. 교장으로 부임된지 짧은 기간내에 “화합의 장”을 이루어낸 크나큰 성과였다.



  “교사형상공정”은 말 그대로 교사들의 교학교수질 제고로 이어졌다. 그는 중학교 90여명 교사들의 업무수준제고에 물심랑면의 지지와 성원을 아끼지 않았으며 “자아조혈공능”을 한시도 늦추지 않았다. 교원들뿐만아니라 학생들도 시합에서 늘 특등상을 거머쥐였다. 특히 조선어, 한어, 일어 웅변대회에서 특등상을 거머쥔 학생은 거개가 녕조중 학생들이였다.



  교장으로 부임된 3년간 그는 직접 교학일선에 앞장서서 고중2학년과 3학년의 일본어과임 및 학년주임을 겸하면서 일반 교원들에게 본보기를 보여주었다. 평일에는 매주 15시간이나 되는 시간을 들여 일어를 가르쳤을뿐만아니라 교장으로서 처리해야 할 업무들도 차질없이 진행했고 저녁에는 밤늦게까지 교안을 작성하느라 휴식할 시간이 따로 없었다. 리정출교장의 솔선수범하에 전교 교원들의 공동노력은 풍성한 성과를 안아왔다.

  리정출교장이 직접 배워준 김분선학생이 대학 시험에서 일본어 150점 만점의 성적을 따안았다.

  2006년부터 중점대학입학선과 일반대학점수선에 든 학생이 전해에 비해 두배나 껑충 뛰여올랐다. 같은 해에 녕조중에서는 목단강시 문과장원을 배출해냈으며 대학입시 각 학과목성적도 흑룡강성 평균치를 훨씬 초과하였다.



  2007년에도 마찬가지로 목단강시 문과수석을 배출해냈고 북경대학입학점수선에 든 학생이 3명이나 되였다.

  2008년에는 중점대학 입시선에 든 학생이 16명에 달했고 2009년에는 김려화학생과 강혜련학생이 선후로 전성조선족수험생들 중 문과, 리과성적이 눈에 띄이게 높았고 같은 해에 김려화학생은 북경대학에 입학했다,

  2010년부터 2017년도에 이르기까지 해마다 우수한 성적을 따내는 수험생들을 속출해냈고 2018년에 남영화학생은 643점이라는 우수한 성적으로 문과장원의 영예를 거머쥐였고 북경대학에 입학하였다.

  2011년 리정출선생은 전국중소학교 외국어교사의 최고상인 원예사(园丁)상 영예를 수여받았다.2012길림신문사에서 주최한 동북3성 범위의 좋은선생님에 선정되였다.2013년 목단강시 모범 교장에 당선되였다.

  2021년도에는 형완예학생이 631점이라는 놀라운 성적으로 전성조선족중학교 문과장원의 영예를 거머쥐였고 2022년도에도 중점대학 입학률이 23.3%에 달했고 일반 본과대학 입학률이 80%에 달했다.

  2010년 리정출교장은 “녕안시 10대공복”으로 선발되였다. 리정출 교장의 “10대공복”은 전시 교육계통의 유일무이한 사례였고 조선족으로서 현재까지도 유일하게 이 칭호를 받은 장본인으로 자리매김하고있다. 굳이 당선된 리유를 말하자면 리정출교장은 어깨에 짊어진 중임을 사명으로 간주하고 창조적인 사업자세로 맡은바 사업을 과감히 추진하여 저조기의 진통을 겪고있던 학교를 “교풍이 바르고 학풍이 농후한” 훌륭한 집단으로 부상시켰다. 동시에 학교를 집으로 간주하며 일년을 하루와 같이 학교건설과 발전에 심혈을 쏟아부었으며 그의 노력으로 학교는 면모가 일신하여 사회와 학부모 그리고 사생들의 한결같은 절찬을 받았다. 그뿐만아니라 전성에서 유일하게 우수학교 단체상을 받은 단위이기도 하다.

  녕안시조선족중학교는 78년의 빛나는 력사의 흐름과 함께 오늘날까지 7000여명의 초중졸업생과 5000여명의 고중졸업생을 배양하였으며 북경대학, 청화대학, 상해복단대학 등 명문대학과 국가 중점대학에 900여명의 학생들이 입학하였다.

  교정건설의 일등공신

  교수질이 담보되고 교학수준이 올라가자 리정출교장의 정력은 교정건설에 돌려졌다. 공사를 시작하려면 자금이 필요했다. 학생들로 하여금 마음껏 뛰놀고 배우며 성장할 수 있는 량호한 학습환경과 생활조건을 위한 리정출교장의 자금마련 “동냥”이 시작되였다.

  우선 그는 2006년부터 시작하여 녕안시조선족중학교 학우회와의 친목교류를 시작하였다. 북경, 상해, 심천학우회를 선후로 설립하고 녕안조중학교발전기금회를 설립하였다. 또한 녕안시 정계, 상계와 사회지명인사, 학부모들로 구성된 녕안조중교무위원회도 설립하였다.

  리정출교장의 솔선수범하에 학우들과 사회 각 계층에서 지원의 손길들이 이어졌다. 멀티미디어교실, 어음교실, 실험실, 도서실, 미술전람실, 학생활동실, 교원사무실, 종합활동실,학교기숙사 등 시설들을 전부 새로 수건 및 장식하였으며 원래 학교의 낡은 쇠창문을 전부 플라스틱 창문으로 인테리어를 하였고 학교정원출입문을 비롯한 학교교실, 교무실 출입문을 현대식 문으로 일신시켰다. 동시에 학교 교정의 지면을 사면인행도로로 재포장하였다. 이러한 재건축과 수건에 든 총 자금이 무려 500여만원에 달했다.



  2009년까지의 변화가 학교의 내부시설을 개변시켰다면 2010년부터는 전체 학교 면모를 일신하는 설계도가 펼쳐졌다.



  정부의 지지와 학부모들의 대폭적인 지지를 받은 그는 200여만원의 자금을 쟁취하여 학교 전체 외벽면을 최신식으로 일신시켰으며 불황을 겪어오던 6층 학생기숙사를 철저히 개조하여 학생과 학부모들의 눈높이를 훨씬 넘어서는 “주택식 기숙사”로 탈바꿈시켰다.



  리정출교장의 인솔하에 녕안조중의 새로운 면모는 계속되였다.

  2014년부터는 건축면적이 4800평방미터에 달하는 실내 체육관과 도서관, 종합활동실, 교내 민속관, 조선족 유치원 등을 일체화한 종합청사 건설에 들어가 2년만에 완공되여 입주까지 마쳤다. 투자한 자금만 해도 1500여만원에 달했다.

  2016년과 2017년도에는 700여만원이나 되는 자금을 투자하여 교정 내 운동장을 합성수지 잔디로 표준화시켰다.

  리정출교장은 부임 전 학교에 묵혀있던 빚도 전부 청산하였고 학교와 송사를 벌이던 부동산 소송도 그의 손에서 깔끔하게 해결되였다. 목단강시 시정부 령도들과 정치협회인대 령도들도 특별히 새로운 변화를 가져온 녕안조중을 단체로 여러차례 방문하였다.

  녕안시조선족중학교 교정건설의 자금해결에 리정출교장의 살을 깎아내는 희생이 뒤받침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리정출선생이 교장을 맡으면서 녕안시조선족학교는 수많은 영예와 성적을 안아왔다.

  전국올림픽교육시범학교 등 국가급 집체영예 3차, 성급문명교정(校园), 가장 아름다운 성급 교정도서관, 성급의무학교건설공정선진학교 등 성급영예를 6차례 수상했다. 이외에도 2012-2017년도 연속 6차례 목단강시교육사업모범단위 등 목단강 시급집체영예를 20여차례 수상하였다.

  리정출교장에 대한 교원들의 평가

  리정출교장의 안내로 둘러본 유치원은 그야말로 “동화와 궁전의 세계”를 련상케 하였다. 목단강시를 비롯하여 그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유치원의 교육 시설과 설비들이 즐비하게 갖추어져 있었다.

  녕안시조선족유치원 강려화원장은 “리정출교장선생님은 유치원이 잘 운영되여야 학교의 미래가 담보된다고 항상 강조하십니다. 가끔은 소학교나 중학교의 눈치를 볼 정도로 유치원 건설을 항상 우선으로 생각합니다.” 라고 소개했다.



  현재 녕안시조선족유치원에는 대반과 소반 아이들로 이루어진 130여명의 아이들이 등원하고 있다.



  “리정출 교장선생님이 우리 소학교를 위해 수많은 노력을 하셨습니다. 덕지체미로가 전면 발전한 훌륭한 소선대원들을 배양하기 위해 저희들도 부단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올해 새로 임명된 녕안시조선족소학교 김희 교장은 이렇게 말하면서 리교장에 대한 존경과 긍정의 마음을 표현했다.



  녕안시조선족소학교에는 현재 1학년부터 6학년에 이르기까지 160여명의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다.

  중앙민족대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에서 연구생공부를 마치고 한국 삼성회사에서 출근을 하다가 2017년 3월에 녕안조중 조선어문교원으로 초빙되여온 연변출신의 안예화 선생님은 “리정출교장선생님은 부드러우면서도 엄격하신 분입니다. 평소에는 말수가 적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간단명료하게 교원들의 우점과 단점에 대해 중점을 잘 짚어 조언을 해주십니다. 저처럼 물 설고 낯 설은 녕안에 와서 교학에 몸담그고 있는 선생님들에게도 명절때마다 따뜻한 안부와 맛있는 식사도 대접해주시는 마음이 따뜻한 분이시고 리교장선생님이 학교에 계시면 정말 든든한 느낌입니다”라며 리교장에 대해 이야기했다.

  현재 녕안시조선족중학교 초중부에는 100여명의 학생, 고중부에는 194명의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다.

  녕안시조선족중학교 서철송 교육담당 부교장은 “저는 녕안조중에 분배받은 후 리정출교장선생님과 같은 숙소에서 함께 동거동락하면서 생활했습니다” 라고 소개하면서 “리정출교장선생님은 철저한 사업광이며 완미주의자입니다. 학교의 교장직을 맡고나서부터는 가정일이고 뭐고 다 뿌리치고 아침 일찍 출근하고 저녁에도 제일 늦게 퇴근하시는 분이 바로 리정출교장입니다” 라며 리교장에 대한 감복을 표시했다.

  “교장직에서 제가 자그마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원인은 바로 저를 믿고 지지해주고 저의 뒤를 묵묵히 따라와준 교원들과 학생들 그리고 학우들과 유지인사들, 특히 당과 정부의 지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40여년이라는 긴 세월을 교육사업려정에 바친 리정출교장의 겸손한 자아평가이다.

  리정출교장의 뒤를 이어 한대성 부교장(조선족)이 신임 교장으로 발탁되였다.

  “새로 임명된 교장선생은 참 젊고 유능한 분입니다. 앞으로 녕안조중을 더욱더 휘황찬란하게 빛내리라 굳게 믿고있습니다” 리정출교장이 신임교장에 대한 소개이다.

  학교내부를 둘러보던 중 때마침 음악교실에서 녕안시조선족중학교 교가 노래소리가 흘러나왔다. 리정출교장은 발길을 멈추고 경건한 모습으로 노래를 따라부르고 있었다.

  “녕고탑 력사는 말하려는가 목단강 물결도 환호하는가

  슬기로운 겨레의 기백을 담아 미래의 동량들 노래부른다

  아- 녕조중 우리의 녕조중 우리의 녕조중

  민족의 자랑 영광에 빛나라.”

  우렁찬 녕조중 교가의 음악장단은 아담한 사합원(四合院) 교정을 감돌아 푸르른 창공을 향해 멀리멀리 울려퍼졌다.

  출처:흑룡강신문

  편집:김선화

뉴스조회 이용자 (연령)비율 표시 값 회원 정보를 정확하게 입력해 주시면 통계에 도움이 됩니다.

남성 76%
10대 0%
20대 0%
30대 12%
40대 53%
50대 12%
60대 0%
70대 0%
여성 24%
10대 0%
20대 0%
30대 12%
40대 6%
50대 6%
60대 0%
70대 0%

네티즌 의견

첫 의견을 남겨주세요. 0 / 300 자

- 관련 태그 기사

관심 많은 뉴스

관심 필요 뉴스

영원한 '오빠', 그리고 '가황' 나훈아가 가수 생활 은퇴를 밝혀 화제가 되고 있다. 27일, 인천 연수구 송도컴벤션시아에서 나훈아는 데뷔 58년 생활을 마무리하는 단독 공연을 펼쳤다. 그는 이날 "이제 진짜 마이크를 내려놓는다"며 팬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오후 3
1/3
모이자114

추천 많은 뉴스

댓글 많은 뉴스

1/3
'빙설의 꿈, 하나로 잇는 아시아'... 2024년 할빈시조선족중소학생 랑독대회 개최

'빙설의 꿈, 하나로 잇는 아시아'... 2024년 할빈시조선족중소학생 랑독대회 개최

도리조선족학교 초중부 김가영, 소학부 하의연 학생 특등상 아성조중 두사기, 오상시조선족실험소학교 강봉혁 학생 1등상 2025년 제9차동계아시안게임과 할빈빙설문화의 풍채 및 2024년 세계독서의 날을 맞아 최근 할빈시조선민족예술관, 할빈시교육연구원민족교연부,

중국 의학계, 인재 육성∙AI 접목한 교육 강화에 박차

중국 의학계, 인재 육성∙AI 접목한 교육 강화에 박차

"현대의학은 단일 질병에서 동반 질환으로, 질병에 대한 관심에서 건강에 대한 관심으로, 즉각적 효과에서 장기적 효과로, 개체에서 단체로 전환되고 있습니다. 의료 업무는 '질병 치료 중심'에서 '환자 중심'으로, 더 나아가 '사람과 인류 중심'으로 전환돼야 합니다.

중국 로동절 련휴 겨냥, 소비 진작 위한 다양한 활동 전개

중국 로동절 련휴 겨냥, 소비 진작 위한 다양한 활동 전개

지난 21일 하북성 석가장시 정정(正定)현의 한 야시장에 사람들이 북적이는 모습을 드론 사진에 담았다. (사진/신화통신) 중국 정부가 로동절(5월 1일) 련휴를 앞두고 소비 진작을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하아동(何亞東) 중국 상무부 대변인은 25일 상무부 정례브리핑

모이자 소개|모이자 모바일|운영원칙|개인정보 보호정책|모이자 연혁|광고안내|제휴안내|제휴사 소개
기사송고: news@moyiza.kr
Copyright © Moyiza.kr 2000~2024 All Rights Reserved.
모이자 모바일
광고 차단 기능 끄기
광고 차단 기능을 사용하면 모이자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모이자를 정상적으로 이용하려면 광고 차단 기능을 꺼 두세요.
광고 차단 해지방법을 참조하시거나 서비스 센터에 글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