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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을 지키는《못난 나무》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13.03.25일 14:51
화룡시 남평진 용화소학교 김상화교장의 이야기

중앙텔레비죤프로를 통해 농촌소학교에서 근무하는 교원들의 선진사적을 시청할 때마다 필자는 내 고향의 김상화(金相华)교장을 머리속에 떠올리군 한다. 그것도 그럴것이 그의 사적이 텔레비죤에 나오는 선진인물들 사적과 별반 차이가 없기때문이다.

알뜰한 살림군

김상화교장은 1960년에 당시의 명칭으로 화룡현 용화공사 상화(上化) 1대에서 태여났다. 고향의 고중을 졸업하고 농촌에서 몇년간 일하다가 1983년 3월에 상화대대의 촌학교에 초빙되여 길고긴 교육생애를 시작하게 되였다. 상화소학교는 공사마을에서도 30리나 떨어진 농촌마을에 있었는데 그의 집은 학교에서도 7리나 떨어진 오지마을이라 자전거를 타고 출근할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는 학교에 발을 들여놓아서 지금까지 언제나 제일 먼저 출근하고 제일 마지막사람으로 퇴근한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변함이 없이.

가난한 촌소이기에 겨울에 난로불화목을 장만하는것은 큰 일이였다. 지난 세기 80년대 후반, 당시 학급담임을 맡았던 그는 학부모들의 소수레를 빌어가지고 산과 강가로 다니며 나무를 주어 겨울철 난로화목을 장만하군 하였다. 그리고 교원이나 학생이나를 막론하고 리발을 청들면 무조건 알뜰히 리발해준다. 이런 일들을 지켜보면서 사람들은 참으로 학교의 《알뜰한 살림군》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동네의 학부모

여기에 김상화교장의 많은 사적가운데서 세가지 사실만을 간추려서 간단히 적어본다.

1983년, 23세 새파란 청춘때부터 그는 학생들에 대한 사랑이 많기로 소문이 있었다. 그가 가르치는 3학년 한 학생이 이외로 팔이 골절되여 학교에 나올수가 없게 되였다. 그는 주동적으로 매일밤마다 한두시간씩 한달가량 자기 집에서 2리 떨어진 그 학생의 집에 찾아다니면서 그날그날 배운 지식들을 보충수업해주었다. 하여 그 학생은 정상적인 학습생활을 유지할수가 있었다.

1988년 3월 향중심소학교에 전근된후다. 그의 학급에는 10여리 길을 통학하는 고아가 있었는데 가난하기가 이를데 없었다. 입은 옷은 더 말할나위도 없고 점심밥도 굶는 형편이였다. 하여 상화교원은 그 학생에게 소비돈도 주고 옷도 사입히는 동시에 학교지도부에 반영하여 향민정부문의 도움으로 이 어린이를 무상으로 향에서 꾸리는 식당에서 점심밥을 먹게 하였고 후에는 향경로원에 들수 있게 하여 무난히 소학교를 졸업하게 하였다.

2008년도 봄, 30리 밖에서 아버지와 함께 생활하며 뻐스로 통학하는 한 남학생이 아버지가 불시에 뇌출혈로 쓰러져 화룡시병원에 입원하게 되였다. 이때에도 그는 주저없이 학생을 집에 데려다 한달간 함께 생활하면서 보살펴주었는데 토요일과 일요일이면 그 학생을 뻐스나 택시에 태워 병원에 가서 아버지를 만나도록 배려해주었다.

학생에 대한 이런 지극한 사랑은 자기 자식에 대한 사랑과 한점 다를바 없었다. 남성으로서, 안해가 출국하고 홀로 있는 《외토리》로서 이는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하여 사람들은 친절하게 김상화교장을 가리켜 《동네의 학부모》라고 부른다.

고향의 파수군

《사람은 도시로 나가고 소는 산골로 몰라》는 말이 있듯이 많은 사람들이 이 두메산골을 떠났는데 김상화교장은 왜 가난한 농촌학교를 떠나지 못한걸가? 사실 그에게도 고향을 떠나 사업할 기회가 여러번 있었다. 향정부에서도 그의 인품과 사업능력이 마음에 들어 향의 단서기사업을 해줄것을 요구해왔고 그후 교육사업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연구에서 일정한 성과를 올리자 규모가 큰 소학교들에서 교도주임으로 와줄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떠나지 않았다. 아니 떠날수가 없었다.

그의 고향에 대한 사랑은 남달랐고 고향소학교에 대한 사랑은 더욱 대단했다. 600명도 넘는 사람들로 복작거리던 마을에 이젠 50여명밖에 남지 않았다. 마을도 한산하고 학교도 따라서 한산하다. 전성기의 200여명으로부터 현재는 5명의 학생에 8명의 교직원이 있을뿐이다. 하지만 이 낡고 보잘것 없어보이는 소학교가 전 연변에서도 비교적 일찍 세워진 학교로 올해엔 100주년을 맞이하게 되였다. 이렇듯 유서깊고 공헌이 많은 학교를 마지막까지 지키는것을 그는 자기의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페교되는 마지막 순간까지, 학생 한명이 남더라도 가르침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것이 그의 드팀없는 다짐이다. 실로 고향을 지켜선 믿음직스러운 《파수군》임에 틀림이 없다.

《부유한》 교장님

사실 김상화교장의 로임은 도시학교나 학생이 많은 학교에 비기면 비교도 되지 않을만큼 적다. 그 상황이 얼마나 절실했으면 그의 안해가 《도시학교에 들어가 학교문을 지키더라도 이곳을 뜨자》고 했겠는가? 하지만 그는 언제나 가난하다는 생각이 없이 《부유》하게 살아왔고 또한 살아가고있다.

30년 동안의 교원생애를 살아오면서 그에게는 실로 많은 영예의 꽃다발이 안겨졌다. 《화룡시(현)우수교사》, 《우수주제반회》, 《우수지도교사》, 《사상품성과우수교사》… 이외에도 2003년 학생이 40여명밖에 안되는 학교에서 《화룡시농촌소학교 한어품성과 교수연구토론회》를 성공적으로 조직하여 시교육국과 진수학교 및 형제학교의 령도와 교원들의 호평을 받았다. 그리고 비록 작고 가난한 학교이기는 하지만 퇴직교원들에 대한 관심은 큰 학교에 못지 않다. 해마다 년말이면 화룡시, 연길시 등지에서 생활하고있는 로교원들을 모시고 위문활동을 조직하군 한다. 하여 퇴직한 교원들은 《효성스러운 후배덕분에 만년을 즐겁게 보내고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못난 나무가 산을 지킨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잘생긴 《못난 나무》도 산을 지킬수 있다. 고향의 소학교를 굳게 지키고있는 김상화교장이 바로 이런 잘생긴 《못난 나무》이다. 그는 경제적으로 부유하지 못하다. 하지만 고향의 학교에 대한 사랑이 가슴에 넘쳐나고 고향의 인간과 고향의 산천에 대한 사랑이 가슴에 넘쳐나니 그 누가 그를 가난하다고 하랴! 그는 실로 내 고향의 자랑찬 《못난 나무》이다.

/신기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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