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강명구 교수의 반쪽 시골생활] 서양의 침대식 ‘올림텃밭’… 침대의 이부자리 일일이 개지 않듯 관리 편리해
4월 되어 집 뒤 장독대 근처에 심은 높다란 홍매와 벚꽃이 피고 지면 장관이다.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라고 조지훈의 시 한 소절을 은근히 자랑 삼아 전자우편으로 김세걸 박사에게 보내니 두보 시 한 구절로 답이 왔다. “한 점 꽃잎에도 봄이 가는데, 만 점 꽃잎이 바람에 지누나.” 이런 봄은 황홀하지만 감당하기 어려워 맞이하기가 두렵기까지 하다. 그러나 텃밭이 주는 봄의 아름다움은 첫아이가 태어나 우리 부부에게 선사하던, 혹은 사랑하며 늙어가는 부부의 변함없는 항심(恒心)의 아름다움이니 가히 반쪽 시골생활의 최고봉이랄 수 있다.
완만한 야산 비탈을 야트막한 엘(L)자형으로 깎아 돌 축대를 쌓고 만든 집 뒤편의 텃밭은 원래 이렇게 정겨운 곳이 아니었다. 무너질까 두려워 배수를 위해 돌 축대 뒤로 적잖은 양의 자갈을 넣고 나니 비가 오면 야산의 물이 축대 배후를 타고 모여 텃밭 자리가 반쯤 물구덩이가 되었다. 배수로를 만들어 물을 빼줘도 습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책을 보고 생각해낸 것이 오늘과 다음번에 연이어 소개할 ‘올림텃밭’이다.
우리에게는 낯설지만 영미에서는 그들 말로 ‘레이즈드 베드’(Raised Bed)라 부르는 흔한 텃밭 형태다. 침대를 사용해 잠자리를 바닥으로부터 띄우듯, 밭 가장자리에 20~30cm의 낮은 담을 쌓아 사람 다니는 길로부터 띄워 높이는 것이다. 이에 비한다면 우리네 전통 텃밭은 요 깔고 자듯이 맨땅을 갈아 직접 경작하는 방식이다. 제각각 장단점이 있지만 내가 굳이 이 방식을 택한 이유는 텃밭을 단순히 채소를 가꾸어 먹는 장소가 아니라 정원의 한 부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서양에서는 텃밭을 ‘채마정원’(Vegetable Garden)이라 부른다. 낮은 박스 형태로 구획된 텃밭은 실제로 밭보다는 화단에 가까운 느낌이 든다. 밭 중간중간에 향내 진한 꽃이나 허브를 몇 포기 심어놓으면 아름답기도 하거니와 해충 방지도 된다. 정원 구조물을 세워 군데군데 장미나 인동 등 넝쿨식물이라도 올리면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올림밭의 장점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올려붙이니 배수가 잘된다. 많은 작물들은 토양도 촉촉해야 하지만 동시에 물 빠짐이 아주 중요하다. 앞으로 소개할 것이거니와 올림밭을 지속적으로 덮어줘 풀 나는 것도 방지하고 습기도 유지한다. 흔히들 김매기 두렵고 물 주기 귀찮아 검은 비닐로 좁은 밭을 덮는데 내 눈엔 보기 흉하다. 겨울에 바람에 찢긴 비닐이 날리면 흉가가 따로 없다. 넓지 않은 텃밭이라면 그것이 짚이든 마른 풀이든 낙엽 부순 것이든 골고루 일정하게 덮어주면 기능적일 뿐 아니라 정갈하고 아름답다.
올림밭의 또 다른 장점은 일단 만들어놓으면 관리가 수월하다는 것이다. 방바닥에 이부자리 펴고 개는 것보다 침대보 정리하기가 수월한 이치다. 가꿔야 할 곳과 그렇지 아니한, 사람 다니는 길이 구분되니 집중 관리할 곳의 우선순위가 정해짐에 따라 ‘분할지배’(Divide and Rule)가 가능해진다. 나의 경우 사람 다니는 길은 근처 목공소에서 얻어온 대팻밥으로 푹신하게 깔아 5성급 텃밭 길을 누리는 호사도 부려봤으나 지금은 일주일에 한두 번 끈 달린 예초기로 5분 내로 말끔하게 면도해준다. 내가 출근길에 면도하듯이. 더 나아가, 만일 여러분이 (내가 그리했듯이) 지속적으로 텃밭을 덮어주는 방식을 택한다면 올림밭은 매해 밭을 새로 갈아엎는 경운의 피곤함에서 경작자를 해방시킬 것이다. 봄이 되면 여러분의 꿈이 그냥 큰 노고 없이도 현실이 되는 것이다.
어떠신가? 혹하지 아니하셨는가? 기대하시라. 다음번에는 만드는 방법을 소개할 것이다. 개봉박두.
아주대 사회과학대학 행정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