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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림시 음악계의 귀재-김인덕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12.03.07일 08:20

-악기 만능통 김인덕을 찾아


길림시에서 드럼의 일인자로 손꼽히는 김인덕, 그는 다루지 못하는 악기가 없는 사람으로 소문나있다.<<악기라는건 하나만 통하면 다른것도 다 다루게 되여있어요.>>라고 겸손히 말하는 김인덕씨,그는 음악에 대한 열정하나만으로 자수성가한 사람이다.


1965년 심양 어느 농민의 가정 6남매중 막내로 태여난 김인덕,그는 손풍금을 다루는 큰형의 영향을 받아 어려서부터 악기에 취미를 붙이게 되였다.가족이 심양에서 길림시 고점자로 이사를 하게 되여 고점자홍위학교을 다니는동안 하루도 쉼없이 손풍금 연습에 열중했다.김인덕은 그냥 손풍금이 좋아서였지 특별한 리유는 없었다고 솔직한 얘기를 털어놓는다.소위 큰 포부도,리상도 목표랄것도 없이 그는 손풍금에 미친 시골아이였을 따름이였다.


그리고 중학교를 한족학교로 진학하면서 어슴프레 농촌의 현실속에서 음악을 계속하자면 어렵겠구나,스승없이 독학으로는 한계가 있다는걸 느꼈다.


그러나 결국 그는 시대의 행운아였다.고중을 중퇴한 그해는 1984년, 길림시조선족문화관에서 예술단을 조직하면서 민간에서 인재를 모집하게 되였다.시험에 통과되여 그는 예술단에서 기타를 배우게 되였고 문화관 예술단에서 음악전업 선배들의 가르침속에 눈이 번쩍 띄였다.예술단에서 일을 하는 3년기간은 그의 음악인생에서 사뭇 중요한 단계였다.


그리고 1987년 화학섬유공장 예술단 업무단장에 정식으로 초빙되여 도시호구로 변하게 되였다.당시 농촌호구가 도시호구로 바뀌어 철밥통을 안게 되였다는것은 보통일이 아니였다.일대 경사였다.그의 집에서는 3일간 큰 잔치를 벌였다.


하지만 김인덕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았다.3년후 섬유공장에 과감히 사표를 제출한 그는 심천으로 가는 기차를 잡아탔다.


당시 중국에서 음악을 하는 사람들은 광주,심천바닥으로 집결된 현실,유명한 음악인 최건도 당시 심천에 있었다.심천에서 모 악대 드럼을 맡은 김인덕,일본,대만,싱가폴에서 온 악대의 음악인들과 접촉하면서 그는 자신의 부족함을 느꼈다.길림시에서 드럼 하나는 내노라 자부했던 그였지만 자신은 아직 멀었다는걸 지각했다.직성적이고 솔직한 외국 음악인들은 현장무대에서 바로바로 그의 부족함이나 미흡함에 대해 지적까지 해주었다.한없이 감사할 따름이였다.그제야 드럼을 알것같다는 심경이였다.


그리고 1년반뒤 그는 다시 길림으로 내려올 생각을 하게 되였는데 드럼을 위주로 한 음악학원을 할 사업구상이 무르익고 있었다.


길림에서 김인덕은 성인들을 상대로 드럼학습반을 꾸렸다.그러나 학생래원이 적어서 문제였다.밥먹고 살길이 우선인 그로서는 학교의 학생들을 상대로 학생반을 내오기로 했고 이렇게 견지한 덕분에 오늘까지 왔다.1995년에 시작해 1999년 정식으로 김인덕음악학원 간판을 내걸고 발전해오기까지 어언간 12년,이젠 음악교실 두개에 음악교원 6명,학생들이 100명을 넘긴다.


음악학원에서 가르치는 악기종류는 드럼, 전자풍금,피아노,섹소폰,새납,피리,퉁소 등 다양하다.


학습반을 꾸릴 초창기만 해도 악기가격은 혀를 내두를 정도로 비싸 제대로 갖추지 못햇던적이 있다.새납가격이 3천원이였는데 그때는 도저히 엄두를 내지 못했었다.그의 수중의 악기중 가장 력사가 긴것은 새납이다,심양에 있는 음악선배가 세상을 뜬후 선배의 손에서 30년,닳고닳은 새납을 물려받아 또 그의 손에서 15년 세월이 흘렀다.하지만 새납이 제대로 소리를 낼수 있는 까닭도 이렇게 춤과 땀이 배여 세월덕분이라고 김인덕은 우스개를 떤다.


먹고 사는데 정신 없었던 시절,이젠 그 시절도 옛말같다.그동안 조선족사회와 동떨어져살았다며 김인덕은 2010년부터 무엇인가 나도 조선족의 한사람이라는 사실을 지각하고 조선족음악인으로서의 사명에 대해 사색하기 시작했다.그는 사물놀이 악기를 큰 형한테서 빌려 짊어메고 길림시 송화강예술단을 찾아갔다.대환영속에 김인덕은 송화강예술단의 예술고문직을 맡고 그후 송화강예술단의 각종 행사무대를 기획했다.


김인덕은 작년년말에 길림시조선족군중예술관에서 주최하고 길림신문사 길림기자소에서 협찬하는 <우리 동네 얼씨구>프로그램에 동참,아리랑양로원에 봉사를 다녀왔다.이날 동참한 여러 사람들과 조선족음악에 대해,음악인에 대해 많은 얘기를 해보기는 몇십년만에 처음 있는 일이였다.


길림시 조선족음악인으로서 향후 음악인 동아리를 무어 많은 행사를 조직해 더욱 보람있는 음악인의 길을 갈것을 김인덕씨는 사색중이다.


김인덕음악학원에 종래로 조선족학생이 없다는점도 김인덕씨의 큰 아픔이다.민족악기인 세납,퉁소,소피리를 대물림할 조선족제자가 없다는것이 너무나 안타깝다.


음악학원 김인덕원장 련락전화:138-4421-8581


김인덕음악학원 QQ공간:1309296564

드럼의 일인자 김인덕

김인덕음악교실

편집/기자: [ 차영국 ] 원고래원: [ 길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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