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0원권 4만4000장 만들어… 2억2000만원어치 유통]
CG전공 살려 혼자서 제작, CCTV 없는 가게서 주로 써… 수퍼 주인의 신고로 붙잡혀
8년 동안 5000원권 위조지폐 4만4000여장을 만들어 사용해 온 김모씨의 작업실에서 경찰이 압수한 위조지폐들. /뉴스1
"오늘도 열심히 돈 벌어 올게." 경기도 성남에 사는 김모(48)씨는 지난 8년간 아내와 두 아이에게 이렇게 말하고 집을 나섰다. 그러나 그는 돈을 벌지 않고 '만들었다'. 서울 광진경찰서는 5000원권 위조지폐 4만4000여장(2억2000만원)을 제작, 유통한 혐의로 김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7일 밝혔다.
2002년 초 사업에 실패해 신용불량자가 된 김씨는 공사판을 전전하며 일자리를 수소문했지만 나이 때문에 재취업이 어려웠다. 대학에서 컴퓨터그래픽을 전공한 김씨는 2005년 3월 집 근처에 작은 지하 사무실을 얻어 컴퓨터와 컬러프린터, 재단기를 갖다 놓고 위조지폐를 혼자서 만들기 시작했다.
김씨는 치밀했다. 1만원권 지폐는 소액의 물건을 구매할 때 의심을 살 수 있어 피했고, 1000원권 지폐는 거스름돈을 너무 적게 받게 돼 5000원권을 택했다. 실제 지폐와 가장 비슷한 종이를 구했고, 숨은 인물 그림까지 재현했다. 지폐에 지문이 안 묻도록 항상 수술용 장갑을 끼고 작업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유전자 분석에도 걸리지 않았다.
김씨는 서울이나 지방의 특정 지역에 2∼3일 동안 머물며 한곳에서 위폐 200여장 정도만 사용했다. CCTV가 달려 있지 않고 주로 노인이 운영하는 동네 수퍼마켓, 철물점 등을 노렸다. 껌, 테이프, 작은 나사 등 500원 정도 되는 물건을 구입한 후 거스름돈을 챙기는 수법이었다. 아내에게는 지방 공사장에 간다고 했다.
김씨는 2005년 발견된 5000원권 위조지폐의 65.1%인 4775장을, 지난해 발견된 5000원권 위폐의 95.5%인 4239장을 유통했다. 김씨는 서울 광진구 자양동 수퍼 주인 황모(62)씨에게 꼬리를 잡혔다. 황씨는 올해 1월 김씨가 껌 값으로 내고 간 5000원권 지폐를 은행에 갖고 갔다가 위조지폐라는 이야기를 듣고 지폐 번호를 따로 적어 뒀다. 황씨는 5일 오전 김씨와 비슷하게 생긴 사람이 또다시 5000원을 내고 껌을 사가자 지폐 번호를 대조해봤고, 가운데 번호가 일치하자 경찰에 신고했다. 국가정보원·국과수·한국은행·한국조폐공사 등이 8년 추적에도 잡지 못했던 범인은 수퍼 주인의 신고로 마침내 붙잡혔다.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