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uter=Newsis 톰 펄롱 페이스북 운영 책임자(맨 앞). SNS가 개인정보 유출의 통로가 되고 있다.
미국 워싱턴 주 시애틀에 사는 직장인 브렌다 씨는 얼마 전 인터넷에서 자동차 가격을 알아봤다. 그런데 그 이튿날부터 중고차 중개인과 자동차 영업소가 발송한 홍보 이메일이 그녀에게 쇄도했다. 이메일에는 그녀가 원했던 SUV 차량과 희망가가 주로 소개돼 있었다. 그녀는 "어떻게 내가 원하는 모델과 가격을 알았는지 놀라웠다. 휴대전화에도 메시지가 온다"라고 말했다.
스무 살의 대학생 수전 씨도 최근 웃지 못할 일을 겪었다. 미혼이고 자녀가 없는 그녀에게 아기 용품, 아기 보험 등 육아와 관련한 상품 안내 이메일이 쏟아졌다. 그녀는 "얼마 전 친한 언니가 아기를 낳아 선물로 딸랑이를 사주려고 쇼핑몰 사이트에 딱 한 번 접속한 적이 있다. 그때 내 정보가 노출된 모양이다"라고 말했다.
위의 두 사례 모두 개인정보가 유출되면서 벌어진 일이다. '데이터 브로커'라고 불리는 개인정보 수집업체들이 브렌다와 수전 씨의 정보를 빼내 기업에 판매한 것이다. 이렇게 거래되는 개인정보는 이제 이름과 나이 등 단순한 인적사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데이터 브로커들은 개인의 구매 욕구, 재정 여건, 사회적 지위 등 수천 가지 고급 정보를 손질해 판매한다.
구체적이고 세분화된 정보일수록 당연히 가격이 높다. 또 특정 분야에 특화된 업체의 정보일수록 가격이 더 비싸게 책정된다. '리즈플리즈닷컴'(www.leadsplease.com)은 암ㆍ당뇨ㆍ우울증을 앓는 환자들의 이름과 이메일 주소, 처방받은 약 종류 등의 정보를 보유하고 있다. 리즈플리즈닷컴이 제공하는 정보의 가격은 다른 개인정보 업체들의 정보보다 훨씬 비싸게 거래된다. 'ALC데이터'(www.alcdata.com)는 신용 점수별로 분류한 질병 이력자의 보고서를 만들어 판매한다.
개인정보 수집업체를 인터넷에서 찾아내는 일도 어렵지 않다. 현재 미국에는 포화상태라고 해도 될 만큼 개인정보 수집업체가 많다. 기업 처지에서는 이 개인정보가 자신이 팔려는 물건을 기다리는 고객이 되므로 불특정 다수를 위해 홍보전을 하는 것보다 이들 업체의 정보를 이용해 타깃 마케팅을 하는 것이 시간과 돈을 더 절약할 수 있다. 이처럼 개인정보를 수집해놓은 업체와 이들 정보가 필요한 수요가 맞아떨어지며 개인정보 판매 시장은 날이 갈수록 커진다.
업체가 많아지면서 경쟁도 심해졌다. 이 때문에 정보 가격은 점점 떨어지고 있다. 나이ㆍ성별ㆍ주소 등 기본 정보의 가격은 1인당 겨우 0.0005달러(약 0.57원) 수준에 불과하다. 소득 수준이 높거나 구매 이력이 많은 사람들의 정보는 조금 더 가치 있는 정보로 취급되며 1인당 0.001달러(약 1.13원)까지 받을 수 있다. 대량 구매하면 할인도 가능하다. 가령 기업이 개인정보 5만~10만 건을 한꺼번에 구매할 경우 0.14달러(약 159원)만 받는다. 이렇게 형성된 미국 개인정보 거래 시장은 대략 1조8000억원대에 이른다.
미국 개인정보 거래 시장 1조8000억원
ⓒAP Photo 6월17일 홍콩 쇼핑몰의 스크린에 나온 에드워드 스노든의 모습. 홍콩에 머물고 있는 스노든은 미국 정보기관의 개인정보 수집 실태를 폭로했다.
이들은 개인정보를 어떻게 수집할까? 주로 인터넷에 접속한 기록을 도중에 가로채는 경우가 많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가 가장 많이 이용되는 통로다. 예를 들어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 '차를 사려고 한다. 누가 좋은 모델 좀 추천해줘'라는 글을 올릴 경우 그는 누가 봐도 차를 사려는 예비 고객이다. 개인정보 수집업체는 이런 구체적인 정보를 뽑아내 데이터로 만들어 기업에 판매한다.
특정 회사가 보유한 개인정보를 빼내 전문업체에 파는 경우도 있다. 버라이즌 같은 미국의 대형 이동통신업자들은 구글, 페이스북 등을 통해 확보한 가입자의 위치나 여행 정보, 웹 서핑 습관 등과 관련된 정보를 개인정보 업체나 쇼핑몰 등에 판매한다.
심지어 정부 관련 기관이나 정보기관에서 개인정보가 업체에 유출되기도 한다. 최근 전 CIA 요원인 컴퓨터 전문가 에드워드 스노든(29)은 미 국가안보국(NSA)이 프리즘(PRISM)이라는 전자 감시 프로그램을 통해 구글ㆍ페이스북ㆍ애플 등 9개 IT 회사 서버에서 일반인의 정보를 수집했다는 내용을 폭로했다. 이 기업들이 북미 데이터센터에 축적한 정보량은 실로 엄청나다. 전 세계 24억명에 달하는 인터넷 이용자 대부분의 정보가 테러 방지라는 명분 아래 미국 정보국에 흘러간 것이다. 한 정보 전문가는 "나와 당신의 정보도 이미 국가정보국에 있다고 보면 된다"라고 말했다.
국가기관에서 유출된 메가톤급 정보들이 기업에 넘어가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미국에서 국가 기밀을 취급하는 사람 5명 중 1명은 민간인이다. NSA의 개인정보 수집 및 감시 실태를 폭로한 에드워드 스노든도 민간 컨설팅 회사 직원 신분이었다. 스노든은 영국 일간지 <가디언>과의 비디오 인터뷰에서 자신이 가진 정보 접근권에 대해 "업무를 진행하면서 개인 이메일 주소만 확보되면 직원 누구나 감청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 특정인이나 회계사, 연방대법원 판사나 심지어 대통령까지도 감청할 수 있었다"라고 밝혔다. 국가정보국(DNI) 자료에 따르면 2012년 현재 미국의 비밀취급권자는 491만7751명이며 이 중 21.6%인 106만5787명이 정부와 계약을 맺은 민간업체 직원이다. 만약 이들 중 누군가가 특정 업체로부터 돈을 받고 개인정보를 몰래 유출한다면 미국인은 물론 전 세계인의 개인정보가 무방비 상태로 오픈되는 것이다.
스노든의 폭로 이후 미국인들은 개인정보 보호에 더욱 민감해졌다. 마치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가 점점 현실이 되는 것은 아닌지 미국인들은 불안하다. 뉴욕 주의 고등학교 교사인 스텐턴 씨(35)는 "이번 감시 시스템 뉴스를 보니 나와 가족들이 마치 유리로 된 집에 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매일 이용하는 아이패드, 페이스북에 가끔 올리는 가족들 사진, 혹은 친구와 대화를 나누는 휴대전화에서 누군가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끔찍하다. 내가 모르는 누군가가 나를 자세히 안다는 것은 불쾌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시민들을 달래고자 "정보 수집 대상은 미국인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그의 발언은 엉뚱한 곳으로 불똥이 튀었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과 중국 등이 들고일어난 것이다. 독일 정부는 미국 정부에 의해 독일 국민의 프라이버시가 얼마나 침해받았는지에 대해 조사 중이다. 유럽연합(EU) 국가들도 미국에 공식 해명을 요구하며 전방위 압박을 가한다. 미국 정부는 이래저래 당혹스러워졌다.
김영미 국제문제 전문 편집위원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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