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의 전격적인 압수수색이 있기 직전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실에서는 각종 문건들이 파쇄기를 통해 사라지고 있었다. 이 의원 측 보좌진은 문을 걸어 잠근 채 압수수색에 맞서는 동시에 각종 자료의 폐기에 나선 것으로 해석된다.
28일 오전 7시 50분쯤 서울 여의동 국회 의원회관 520호실에선 의원실 출입문이 안으로 굳게 잠겨 있었다. 압수수색이 시작되기 20분 전이었다. 의원실 안에서 어떤 상황이 벌어지는지 복도에서 볼 수 없도록 의원실 창문의 가림막도 모조리 내려져 있었다.
이 시간 같은 진보당 소속으로 복도 맞은편에 위치한 오병윤 의원실과 김재연 의원실의 문도 닫혀 있었다. 기자들이 수차례 출입문을 당기며 취재를 시도했지만 묵묵부답이었다.
기자들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이냐” “지금 의원실 안에서 무슨 일이 진행 중이냐”고 묻자, 이 의원실 관계자가 나와 “지금은 말씀드릴 수 없고, 나중에 정식으로 입장표명을 하겠다”면서 다시 안에서 문을 잠갔다. 하지만 가림막 틈새를 통해 의원실 내부를 들여다보니 안에서는 황급히 각종 문건들을 확인하고, 나르고, 파쇄하는 일련의 작업들이 진행되고 있었다.
의원실 관계자 대부분은 내부에서 빠른 속도로 책상 사이를 오가며 문서들을 하나씩 확인해 나갔고, 일부 직원은 문서들을 의원실 내부에 있는 파쇄기 안에 집어넣었다. 그러고는 문서가 제대로 파쇄되는지를 지켜봤다. 몇몇 사람은 침울한 표정으로 의원실 안에서 서성거렸다. 이렇게 20여 분이 흘렀고, 8시 10분쯤 국정원과 검찰 수사관 20여 명이 들이닥쳤다.
국정원 수사관계자는 이 의원실 앞에서 수차례 문을 두들겼지만 안에서는 소란스러운 소리만 들릴 뿐 문을 열지 않았다. 그렇게 5분 정도가 흘러 국정원에서 강제로 출입문을 따고 진입하려고 하자, 안에서 출입문을 열었다. 국정원 측은 압수수색 영장을 제시하면서 “관련 증거자료 확보를 위해 현장인 ‘이석기 의원실’에 들어가겠다”고 말했고, 의원실은 “진보당 쪽 변호사가 오기 전까지는 누구도 들어올 수 없다”며 버텼다. 국정원 측은 압수수색용 박스를 들고 의원실 내부까지 들어가는 데는 성공했지만, 의원실 내부에서 압수수색의 적법성 여부를 따지며 저항해 문건 압수 등 압수수색 강제집행은 오전 11시까지 이뤄지지 못했다.
의원실 압수수색 소식이 국회 의원회관 전체로 퍼지자, 100여 명의 국회 관계자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 의원과 같은 당 소속인 오병윤·김재연·김미희 의원 등이 곧 도착했다. 이어 진보당 관계자 10여 명이 몰려와 “국정원 직원들 집을 압수수색 해야 한다” “공안탄압이자 또 다른 긴급조치”라고 고성을 질렀다.
현일훈 기자 on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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