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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10명 중 한 명 이상 한국 떠나 제3국행

[기타] | 발행시간: 2013.09.29일 04:06

북한 병사들이 지난 20일 신의주와 중국 단둥 국경지역인 압록강변에서 탈북자 감시 등을 위한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탈북자 2만5000명 시대.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들이 다 국내에 정착해 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많은 탈북자가 한국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영국·캐나다 등 제3국으로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 떠나고 있어서다.

이 같은 ‘탈남(脫南)하는 탈북자들’의 규모는 아직 정확히 파악되지 못하고 있다. 유엔난민기구(UNHCR)의 지난해 말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북한 국적의 망명 신청자는 총 2137명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여행비자 등을 통해 개인적으로 건너간 뒤 현지에 눌러앉은 탈북자까지 합하면 3000~4000명에 달할 것으로 탈북자단체들은 추산하고 있다. 실제로 망명했다가 다시 한국에 돌아온 탈북자들은 “영국 런던과 캐나다 토론토에만 각각 1000명 이상의 탈북자가 살고 있다”고 전한다. 탈북자 10명 중 최소한 한 명 이상은 한국을 뒤로한 채 제3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셈이다.

“2등 국민으로 취급받기 싫었다”

탈북자들의 ‘탈남 엑소더스’는 2007년부터 본격화했다. 함북 청진에서 2005년 탈북해 온 김명진(53)씨는 “유럽에 가면 정부에서 돈도 많이 주고 엄청 큰 집도 제공해 주며 월급도 한국보다 훨씬 많이 받을 수 있다는 소문이 당시 탈북자들 사이에 급속히 퍼져 나갔다”고 전했다. 특히 영국의 경우 망명이 받아들여지지 않더라도 최소한 4~5년은 대기상태로 머무를 수 있다는 얘기가 돌면서 지난 몇 년간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영국 정부가 지난해부터 우리 정부에 신원조회를 요구하며 심사를 강화하자 벨기에·네덜란드·덴마크·노르웨이 등이 새로운 망명지로 부상했다. 캐나다도 미국이 가깝고 여행비자가 필요 없다는 이유로 인기를 모았지만 올 들어 규제가 강화되면서 망명 신청자가 급격히 줄었다. 지난해 캐나다로 나갔다가 이달 초 돌아온 김춘자(49·여·가명)씨는 “예전에는 난민 신청을 하면 5년 체류증이 나왔는데 올해부터 3개월짜리로 바뀌어 캐나다에 더 이상 머물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탈북자들이 망명을 시도하는 이유는 뭘까. 무엇보다 한국 사회의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게 탈북자들의 공통된 얘기다. 3년 전 영국 망명을 신청했다가 지난해 다시 돌아온 박금례(53·여)씨는 “탈북자들은 한국에 오기까지 최소한 서너 번은 목숨을 걸어야 한다. 두만강을 건널 때도, 중국에서 숨어 지낼 때도, 중국을 벗어날 때도 보다 인간다운 삶을 위해 기꺼이 죽음의 사선을 넘었다”며 “이 때문에 한국보다 더 나은 곳이 있다면 얼마든지 모험을 할 마음의 준비가 돼 있는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박씨는 “같은 민족인데 한국에서 2등 국민 취급을 받는다는 불만도 적잖게 작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조선족만도, 심지어 흑인만도 못한 대접을 받는다는 느낌을 종종 받는다. 탈북자라는 이유만으로 같은 일을 해도 임금을 적게, 그리고 늦게 받기 일쑤”라며 “그럴 바에야 차별받지 않는 곳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2008년 탈북 후 중장비 운전을 하고 있는 김민식(52)씨도 “막상 한국에 와 보니 내가 가진 기능이나 능력이 거의 쓸 데가 없었다. 내가 이렇게 능력이 없는 사람이었나 싶은 상실감이 컸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도희윤 피랍탈북인권연대 대표는 “북한 사회주의 체제와는 달리 한국은 철저하게 자본주의 사회라서 기본적으로 적응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며 “반면 유럽은 사회민주주의 체제니까 적응이 쉽지 않겠느냐는 막연함 기대감도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자녀 교육도 주된 탈남 요인으로 꼽힌다. 초등학교 5학년 딸을 둔 김춘자씨는 “내가 좀 희생하더라도 아이에게 영어라도 제대로 가르쳐 주자는 생각에 망명을 결심했다. 우리 아이만큼은 2등 국민으로 취급받지 않도록 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최근엔 나이 든 탈북자들의 망명 신청이 크게 늘고 있다. 노인 복지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는 캐나다가 대표적이다. 토론토의 경우 탈북자의 절반 이상이 60세 이상 노인이다.

탈북자들의 탈남 러시가 이어지면서 이들의 망명을 주선하는 브로커들이 활개를 치기도 했다. 탈북자들 사이에 정보가 공유되면서 악덕 전문 브로커의 폐해 사례는 점점 줄었지만 최근엔 망명 신청자 스스로 브로커가 되는 경우도 심심찮게 발생하고 있다. 도희윤 대표는 “몇백만원을 모아 출국해도 브로커에게 다 주고 나면 남는 돈이 없는 상황에서 해당 국가에서 지원금을 받을 때까지 버티기 위해 한국에 있는 탈북자 모집에 나서게 된다”며 “마치 다단계 판매나 부동산 떴다방처럼 이뤄지는 이 같은 유인책에 적잖은 탈북자가 빠져들고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실용적이고 지속적인 지원체계 갖춰야

하지만 영국이나 캐나다에서의 삶도 다 만족스러운 건 아니다. 이들 나라에서도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탈북자도 적잖다. 5년 전 가족들과 함께 영국 맨체스터로 건너갔다가 지난해 재입국한 이명자(55·여)씨는 “막상 가 보니 당초 기대했던 것과는 크게 달랐다. 말도 안 통하고, 무엇보다 외로웠다. 늙어 죽을 때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 싶었다”며 “현실이 기대와 어긋나는 걸 경험하면서 그래도 한국이 낫다는 판단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씨는 “영국에 정착한 탈북자 중 절반 이상은 현지 생활에 불만족스러워했다. 주로 식당 등에서 뼈빠지게 일하면서 생활하는데, 한국보다 결코 나은 삶이 아니라며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털어놓곤 했다”며 “하지만 다시 한국에 들어가는 것도 결코 쉽지 않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전했다. 이씨는 “영국에 있을 때도 한국에 있는 탈북자들이 ‘정말 살 만하느냐’는 문의를 많이 해 왔는데, 그때마다 ‘절대 오지 마라’며 말렸다”고 소개했다.

그렇다고 한국으로 돌아온 탈북자들의 만족도가 높은 것도 아니다. 중학생 자녀 2명을 캐나다에 두고 지난해 홀로 귀국한 최민옥(42·여·가명)씨는 “아이들은 계속 공부를 시키고 싶어 혼자 왔는데, 생활비 벌기도 쉽지 않고 사는 게 너무 힘들어 솔직히 괜히 돌아왔다 싶다”고 말했다.

도희윤 대표는 “최근 국내 복지 수요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탈북자들의 상대적 불만과 박탈감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탈북자들은 한국 사회에 지나친 기대를 갖기 쉬운데, 이를 현실적으로 바로잡아 주려는 정부의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탈북 후 조사기관 2개월, 하나원 3개월을 거친 뒤 더 이상의 도움 없이 곧바로 한국 사회와 마주해야 하는 현실에서는 탈북자들이 한국 사회에 제대로 정착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도 대표는 “하나원을 나온 탈북자들은 사우나도 혼자 못 가고 마트에서 쇼핑도 할 줄 모른다. 그러다 보니 더욱 현실적 좌절감에 휩싸이게 되는 것”이라며 “탈북자 정착 지원 시스템이 현실 생활에 곧바로 유용하게 적용될 수 있는 것들을 가르쳐 주는 체제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나원 교육으로만 끝낼 게 아니라 시·도 지방자치단체에서도 탈북자들을 대상으로 실용적인 교육이 이어져야 한다는 주문도 제기된다. 고기만 갖다 줘서는 탈북자들의 불만이 줄어들 수 없는 만큼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줘야 한다는 주장이다. 도 대표는 “탈북자 2만5000명도 제대로 포용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2500만 명의 북한 주민을 껴안아 통일 한국으로 나아갈 수 있겠느냐”며 “정부도 하나원 교육체제를 보다 실용적으로 개편하고 이후에도 전문 상담사 등을 통해 조언해 주는 제도를 확대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박신홍 기자 jbje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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