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행 민족지행 행장 남해금씨의 이야기
(흑룡강신문=하얼빈)“조선족들의 금융거래에 편리를 도모하고 민족경제발전에 저그마한 힘이라도 기여하는것이 저의 리상이였습니다. 마침내 그 리상을 실현할수 있는 기초를 마련하여 가슴이 뿌듯합니다. ‘민족은행’의 설립은 우리 조선민족의 경사로운 일이면서도 우리 사업에 대한 편달로 됩니다. 우리 ‘민족은행’은 생존을 고객들에게 의거하고 리윤을 고객들에게 의거하며 발전을 고객들에게 의거한다는 리념하에 고객들을 위하여 봉사할것입니다.”목단강시 서안구 장안가 조선족민속거리에 자리를 잡은 중국은행 민족지행 남해금행장의 자부심에 넘치는 말이다.
1988년에 흑룡강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하고 중국은행 목단강분행에 몸을 담근 그날부터 남해금씨는 자신의 업무수준을 제고하기 위하여 모든 정력을 기울였다. 금융관리에 관한 여러가지 서적들을 탐독하고 선배들에게서 허심히 배웠으며 업무를 익숙히 장악하기에 노력하였다. 그는 선후로 출납원, 저축원, 회계, 저축검사원, 자금결산원 등 직무를 맡아하면서 부단히 업무수준을 제고하였다. 그는 능란한 업무수준으로 하여 수차 중국은행 흑룡강성분행의 전성 업무검사, 새 시스템과 새로운 업무측험, 관리방법 제정 등 사업에 참가하여 호평을 받았다.
지도부의 인정을 받은 남해금씨는 2001년부터 선후로 중국은행 목단강시분행 평안지점 주임, 중국은행 목단강시분행 영업부 부주임, 중국은행 목단강시 유림지행 부행장, 중국은행 목단강시 문화지행 행장 등 직무를 담당하였다. 령도직무를 맡은 남해금씨는 직원들의 업무수준을 제고시키는 한편 고객들을 위한 편리를 도모하면서 거래처를 넓혔다.
그리고 은행이 조선족집거구에 있는 우세를 리용하여 조선족운동회, 중소학교운동회, 로인절, 3.8절 등 조선족 집체활동때마다 참가하여 선전을 따라세워 경제효익과 사회효익을 높여 저금률이 해마다 배로 상승하였다. 하여 그가 책임진 분행은 수차 목단강 은행업계 문명규범복무 10대 우수복무창구, 성급은행업계 문명시범창구, 성은행업계 청년문명호 칭호를 수여받았으며 그도 련속 7년간 시급은행업계 선진개인, 청년업무능수, 우수공산당원 등 칭호를 수여받았고 또 경제사 자격증서를 따냈다.
남해금씨의 머리속에는 일찍 한가지 웅심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조선족의 편리를 도모하고 조선족의 금융리재를 위하여 복무할수 있는 민족은행을 세우는것이였다.
목단강시 시내구역 조선족 인구는 약 3만명에 달하며 이중 절반이상이 서안구에 집중해있다. 목단강시는 매년 국외 조선족이 중국은행을 통해 송금되는 외화총액이 무려 6000만딸라에 달한다. 대부분 젊은이들이 외지에 나가있다 보니 집에서는 로인들이 은행에 다니며 인출, 저금을 하게 되였는데 한어를 잘못하는 로인들이 상당한 불편을 겪게 되였다. 이 정황을 감안한 남해금씨는 조선족집거구에 민족은행을 세울 필요성을 느꼈다. 그는 다년간 세밀한 시장조사를 하여 가능성보고서를 작성하여 수차 상부에 제기하였다. 상부에서는 연구토론을 거쳐 마침내 조선족집거구인 서안구에 중국은행 민족지행을 설립하기로 결정하고 행장을 경쟁초빙하기로 하였다. 남해금씨는 종합적인 업무실력과 다년간의 령도경력이 인정을 받아 마침내 중국은행 민족지행의 행장으로 초빙되였다.
민족은행은 현재 국내외송금업무, 개인저금, 개인소비 대출, 리재, 인터넷은행 등 업무를 전면 가동하고 제반 업무와 관련간판, 안내문을 우리 글로 표기하고 홀 경리 등 여러 부서에 조선족직원들을 배치하였다. 남해금씨는 모든것은 고객들을 위하여 복무한다는 리념하에 조한 두가지 문자로 된 홍보문을 배포하고 행동이 불편한 로인, 금융리재를 잘 모르는 고객들에게 량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오늘도 조선족들의 금융리재를 위하여 열심히 뛰고있는 남해금씨는 3년후 또 하나의 ‘민족은행’을 세우는것이 꿈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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