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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한달, '무사귀환' 바램이 '극락왕생'으로…

[기타] | 발행시간: 2014.05.17일 11:49

세월호 침몰 사고 한달이 되는 16일 팽목항 등대길의 모습. 사진=이하늬 기자

[현장] 모두 떠나가는 진도… 변하지 않는 것은 '정부의 방치'뿐

15일 밤, 진도체육관 앞에서 말도 안 되는 '축하'가 오갔다.

"나왔다면서요? 축하해요. 고생 많았어요"

"우리만 나와서 어떻게 해. 미안해요"

"아니야, 갈 사람은 가야지. 우리 애도 곧 나오겠지 뭐…"

실종자 가족 안아무개씨는 담배를 빼물었다. 7년을 끊었던 담배다. 사고 한 달, 이제 남은 실종자는 20명.

확실히 한달 전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종일 세월호 속보만 나오던 뉴스도 이제는 지방선거, 사건사고를 다루기 시작했다. 한 가족은 "배 기울어진 영상 그만 좀 나왔으면 좋겠어. 뭐 좋은게 있다고 허구헌 날 보여줘. 속만 답답하지"라면서도 "아니 우리애가 아직 못 나왔는데 선거고 구원파고 다 무슨 소용이야"라며 TV에서 등을 돌렸다.

진도 실내체육관은 휑하다. 체육관 밖에 줄지어 있던 천막들 절반 이상이 철수했다. 네댓 곳 있던 급식소도 두 곳으로 줄었다. 체육관 안도 마찬가지다. 기온은 올라갔는데 체육관 공기는 오히려 냉랭했다. 한 실종자 가족은 주변을 둘러보며 "오늘 더 썰렁해져버렸어. 어제 다섯 나왔지. 오늘 또 셋 나왔고. 다 가버렸네"라고 말했다.

남아있는 이들은 점점 초조해진다. 이제 가족들을 지배하는 감정은 슬픔이나 분노가 아니다. 홀로 남겨지는 것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이다. 정부가 제안한 이동식 주택이 불만스러운 것도 이런 이유다. 한 단원고 학부모는 "안 그래도 외로운데 거기면 따로따로 지낼 거 아니야. 그럼 더 외롭지"라며 "안 간다고 했어. 여기 있을거야"라고 말했다.

팽목항도 조용하긴 마찬가지다. 어느덧 '무사귀환' 말은 잘 보이지 않았다. 대신 '극락왕생'이라고 적힌 등이 바다로 향한 등대 방파제에 걸렸다. 가족도, 봉사자도 떠난 팽목항에는 목탁 소리만 울려 퍼졌다. 방파제 난간에 묶인 노란 리본에 적힌 글자들은 벌써 빛이 바랬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언제 거기 글귀가 적혀져있나 싶을 정도였다. 그나마 선명한 글씨들은 비교적 최근에 쓰인 것들이다.

세월호 침몰 사고 한달이 되는 16일 팽목항 등대길의 모습. 사진=이하늬 기자

"만지고 싶다. 내 딸"

"엄마가 외박하는 거 싫어하는 거 알면서 이렇게 오래 외박할거야?"

"수빈아, 수빈이가 아빠 품으로 돌아오는 날부터 금주한대"

"세호야 엄마 아들이어서 행복했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유가족과 봉사자들이다. 특히 몇몇 유가족은 실종자 가족을 돌보기 위해 장례를 치른 뒤 다시 진도에서 지내고 있다. 단원고 학부모 임아무개씨는 "사는 게 사는 게 아닐꺼에요"라며 "진도에 내려온 지 2주가 넘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나오는 애들은 상태가 별로 안 좋아요. 얼굴도 못 알아봐요. 그래도 애들이 나와 주기라도 하면 좋을텐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저녁이 되자 자원봉사자들이 조용히 실종자 가족들을 찾아다녔다. 여성 자원봉사자 두 명이 실종자 가족을 껴안아주는 모습도 보였다. 의료자원봉사를 온 한양대병원 정신과 의사는 새벽에도 실종자 가족의 말을 다 들어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고 이튿날부터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이철민씨는 틈나는 대로 가족들과 함께 담배를 태우고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그렇다고 희망까지 버린 건 아니다. 단원고 학부모 A씨는 "지금 한명씩 나오고 있으니까 곧 나올거야. 문제는 곧 대조기 기간이라 잠수부가 많이 못 들어간대"라며 "여기는 태풍이 7-8월이라니 그때까지는 찾겠지"라며 애써 맘을 다잡았다. 세월호 사무장이었던 동생 고 양대환 씨의 시신을 찾은 형 양석환씨는 "발걸음이 안 떨어져요. 정말 무겁네요"라며 "곧 나올거에요. 이제 나올 거 같아"라고 실종자 가족을 위로했다.

안아무개씨 부부는 16일 오전에도 사고 해역으로 떠났다. 안씨는 "가만히 있으면 뭐할거에요"라며 "가서 보기라도 해야지"라고 말했다. 이날 총 11명의 실종자 가족이 수색 작업을 지켜보기 위해 사고해역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오후 늦도록 시신을 수습했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단원고 실종 학생의 삼촌은 "또 가서 마음만 졸이고 오네"라며 "애가 타요. 속이 타 들어가"라고 말했다.

사고 발생 이후 20여일간 진도에 머물렀던 한 인터넷신문 기자는 "처음에는 슬픔, 그리고 분노였다가 이제는 아예 침묵"이라고 말했다. 그는 "처음에 가족들은 '살려달라'고 말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시신 유실을 걱정하고 훼손을 걱정하고. 이제는 아예 조용해졌다"며 "마지막까지 못 찾는 실종자가 있다면 그게 제일 슬플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는 16일 오후 진도를 떠났다.

많은 이들이 떠나고 다시 고요한 섬으로 남은 진도, 하지만 변하지 않은 것이 하나 있다. 사고 발생 한 달이 다 되도록 국가는 이들에게 최소한의 보호조차 해주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구호물품도, 자원봉사도 모두 민간의 몫이었다. 양석환씨는 "그간 여기(진도) 있으면서 점수를 매겼다"라며 "정부는 1점, 언론은 2점, 자원봉사자는 100점. 자원봉사자님들 너무 고마워요"라고 말했다.

한 달 만에 진도를 다시 방문한 사진가 박준수(32)씨는 이를 '방치'라고 표현했다. 그는 "초기에 가족들은 뉴스로 상황을 파악할 정도로 방치돼 있었다"며 "지금은 훨씬 사람이 적은데도 여전히 정부가 가족들을 방치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 상황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자리매김 할지 모르겠지만, 이 사태에서 무언가라도 배우지 않으면 300명의 죽음이 헛되이 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세월호 침몰 한 달, 정부는 과연 무엇을 배웠고, 그로부터 무엇을 실천하고 있는가?

이하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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