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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운드의 진달래 [발취]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14.05.28일 08:28
머리말

도라지꽃, 민들레꽃, 진달래꽃, 함박꽃... 너무나도 수수하고 너무나도 순수한 이미지로 우리들의 가슴에 와 닿는 꽃들, 그러나 이 꽃들을 마주하노라면 금방 별처럼 떠오르는 이름들이 있다.

리화련, 안영실, 장어금, 리미화, 박순애, 손애옥, 리화자...

그렇다! 그들이 바로 우리의 자랑스러운 길림성녀자축구팀 선수들이요, 1983년 전국제2차녀자축구초청경기에서 우승을 따낸 연변의 꽃들이다. 하다면 길림성녀자축구팀의 영광은 구경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되였을가?

물처럼, 구름처럼 흘러가는 세월아래 누렇게 색바래가고 있는 그날의 영광!, 그 기쁨!...

1965년, 길림성남자축구팀이 전국우승을 따낸뒤를 이어 18년만에 또 한번 축구에서 전국우승의 영예를 기록했던 길림성녀자축구팀 선수들...

자, 이제 우리 함께 그날의 영광을 찾아 려행을 떠나보도록 하자!

예고없는 불행

1983년 8월 2일.

한여름 더위가 맹위를 떨치고 있는 화룡현인민체육장.

언제나 그랬듯이 오후 두시경이면 늘 한산해있던 체육장이 이왕과는 달리 부산하다.

《하나 둘!, 하나 둘!...》

《슛!》

《받아라!》

《빨리, 빨리...》

함뿍 이슬을 머금은 아침풀잎같은 처녀애들의 함성에 여지껏 기승을 부리고 있던 더위가 깜짝이야 주춤한다. 말짱 단발머리를 한 고만고만한 처녀애들이 희한하게도 흰줄이 간 푸른색마라톤바지차림에 헐렁한 흰색상의를 바쳐입고 메주덩이같은 축구공들을 다루느라 여념이 없다. 그 무렵 남자들한테서나 볼 수 있는 진풍경이 한패의 처녀애들한테서 펼쳐지고 있다니! 그것이 신기했던 모양 어느새 체육장주위에는 부채에 쪽걸상을 곁들인 구경군들이 하나둘 어슬렁거리기 시작했고 진작 전망 좋은 곳을 찾아 가늘게 두눈을 쪼프린채 손차양을 하고 있는 체육장동네 풍신좋은 할아버지들의 얼굴에는 흐믓한 미소가 넘실거린다.

《허허, 쟤가 순복이라고 했던가?》

《누구?》

《저기 저 3번 말이우.》

《아니여. 걔는 중앙공격수여. 연길서 온 아이라던데, 들을라니까 리화랑(리화련)이라 불리는것 같데. 아마, 저기 저 6번이 순복이 맞을걸.》

《오, 갸가 2월달에 냅네하는 섬서팀에다 선꼴은 넣었다는 아인가?》

《옳수다. 광주서 있은 전국선수권경기서 섬서팀에다 꼴을 넣은 아이지우. 방지도가 말하는게 그때 우리 팀이 3등을 했다만 실은 걔들보다 고배는 더 잘 찼다데유.》

《건데 영실이는 왜 안 보이지?》

《우리 현의 안영실이 그러시우?》

《거 투도2중서 왔다는 16번 중간빼기 말이우. 언제 보니까 푸리끼(프리킥)는 아주 전담이던데.》

《어허? 글쎄... 거〈군대말〉이 오늘 왜 보이지를 않지?...》

《수상타...》

안영실.

1983년 전국 제2차녀자축구초청경기 우승을 한 길림성녀자축구팀.

제1대 길림성녀자축구팀의 수비선 절대 주력이자 후날 제1대 중국녀자축구팀의 절대 주력으로도 활약했던 방년 19세의《군마》-안영실은 그 마적 때 아닌 불행과 조우, 전반 감독진을 긴장속에 빠뜨리고있었다. 급성맹장염이라는 난데없는 날벼락이 안영실이한테 떨어진것이다. 더우기 전국제2차녀자축구초청경기의 전초전인 장춘경기구 예선전을 10여일 앞둔 길림성녀자팀에게 있어서 안영실의 변고는 그야말로 청천벽력이나 다름없었다. 눈썹에서 화가 떨어진다고 하더니...

방금전에 있은 일이였다.

점심휴식시간이 끝나자바람 또다시 선수 전원을 대동하여 오후훈련에 나섰던 방정훈(당시 50세. 제1대길림성남자축구팀 주력선수. 제1대길림성녀자축구팀 총감독. 1961년 중국축구운동건장 칭호 수여받음. 1994년 작고.)지도의 이마살이 저도 몰래 찌프려졌다.

아침이면 통상 4000메터를 달리고 전반 훈련이 끝나 맥이 진한 다음에도 2000메터를 달리는 등 자신이 설계해낸 《마귀훈련》을 깨끗이 소화해내던 안영실이가 이상하게도 전렬의 맨 뒤끝에서 지척지척 늑장을 부리고있었던것이다.

《안영실!-》

팔짱을 지른채 엄엄한 눈길로 이윽히 선수들을 빗질하고 있던 방지도의 음성이 화살같이 영실이한테로 날아갔다.

《왜, 어디 아퍼?》

피곤에 젖은 목갈린 음성이지만 선수에 대한 사랑이 다분하다.

《배가 좀...》

오른손으로 지그시 배를 누른채 안절부절 못하는 안영실의 얼굴은 흙먼지에 구슬땀으로 어룽어룽하다. 팀의 부주장이자 수비선의 절대주력으로서 일단 훈련이거나 시합에만 들어가면 악착하고 이악스럽다는 단어를 떠올리게 하는 안영실... 얘가 왜? 제자를 바라보는 방지도의 얼굴이 근심으로 굳어지기 시작했다.

《점심때 뭘 먹었는데? 이거 도대체 어찌된 일이야?》

《오전 훈련 뒤끝에 옆구리가 켕기고 배가 아프기에 그저 미시가루만 타먹고...》

신음과 고통으로 반죽이 된 영실이의 목소리가 처음 듣는듯 생경하기만 하다.

《미시가루?》

그 무렵 선수들한테 영양보충제 대용품으로 공급되였던 미시가루...

(이거 혹시 배탈이 난게나 아닐가?)

《넌, 오후 훈련 취소. 대신 숙소에 들어가 약을 먹고 휴식하도록.》

배를 끓어안은채 조심조심 걸어가는 영실이의 등 뒤로 방정훈지도의 안쓰러운 눈길이 이윽하니 쫓아간다.

올 봄 광주에서 펼쳐졌던 전국제1차녀자축구선수권시합에서 5전 4승 1패의 성적으로 B조 1등을 하고 그 뒤 결승전에서 아쉽게도 강호 섬서팀에 1대2로 역전패를 당해 3등(1등 섬서팀, 2등 료녕팀, 4등 산서팀)의 자리에 머물렀던 길림성녀자축구팀... 제1대 길림성남자축구팀 주력선수로, 뛰여난 개인기와 출중한 지도력으로 1961년 동료 지운봉(작고)선수와 더불어 국가축구운동건장 칭호를 수여받았던 방정훈지도의 심정은 시각 그 어떤 이름 모를 불안으로 착잡해지고 있었다. 6월 달부터 실시된 집중훈련이 어언 2개월을 잡아들고 있는 요즘, 대운동량으로 지친 선수들이 그만 더위에 입맛을 잃었는지 식사량들이 턱없이 줄어들고있었던것이다. 훈련을 악착같이 하는 안영실이가 더욱 그러했다. 지난해(1982년) 8월 전국제1차녀자축구초청경기에서 동료 최신옥(9번 공격수)선수와 더불어 전국우수선수의 영예를 따냈던 안영실...

(설마?)

그래 설마였다. 하지만 그 설마가 사람을 죽일줄이야!

체육장으로부터 숙사로 질러가는 소로길을 지척에 두고 간헐적으로 이어지는 통증에 잠시 주춤거리고 섰던 안영실이한테로 귀익은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너 또 뽈에 앵겼나? 배는 왜 부여잡고...》

점심식사를 하자바람 휴식은 뒤로하고 곧바로 고장난 축구공펌프를 수리하던 조리지도 리태권선생이 언제 나타났는지 영실이의 맞은 켠에서 근심스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 채 씻기지 않은 기계기름 때에 두툼한 손등이 거무스름한데 미남형의 너부죽한 얼굴에는 언제 보듯 인자한 미소가 흐르고 있다.

《배가... 아파서요.》

《배가? 허허, 거 봐라. 너 밥도 잘 안 먹는다더니... 기어이 일을 낸다니까, 일을... 자 빨리 숙소에 가서 약 먹고 휴식해라.》

그리고는《쯧쯧》혀를 차며 저만치 걸어가던 리태권지도가 별스레 고개를 기웃기웃하더니 문득 그 자리에 그루박히듯 서버리는것이 아닌가. 뒤미처 홱 돌아서며 다시 걸음을 떼는 영실이를 꽥 불러세웠다.

《안영실, 잠간! 너 그 자리에 움직이지 말고... 섯, 서라니까!》

난데없는 불호령에 깜짝 놀라 엉겁결에 옆에 있는 백양나무를 붙잡는 안영실이한테로 리태권지도가 반달음놓듯 부리나케 다가왔다.

《너 지금, 오른다리를 들어봐. 자, 자, 나처럼 이렇게 무릎우로...》

《오, 오른다리요?... 아얏!》

순간, 오른다리를 들어보이던 안영실의 입가로 비명이 터졌다. 뒤미처 방정훈지도를 찾는 리태권선생의 색다른 고함소리가 체육장을 놀래우기 시작했다.

《방지도, 방지도!- 영실이가 맹, 맹장이 위험한것 같습니다. 빨리요!...》

《뭐요?!》

느닷없는 고함소리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던 방정훈지도의 기색이 순간 하얗게 변했다. 영실이가 모로 쓰러지고 있었던것이다!...

[본 문장은 현재 창작중인 신철국 작 중편실화《그라운드의 진달래》(1983년 길림성녀자축구팀 전국 제2차녀자축구초청경기 우승실록)에서 발취함]

편집/기자: [ 김룡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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